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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철웅 칼럼

비판하라 ‘가공할 만한 천재’란 찬사를 듣는 슬라보예 지젝이 이런 걸쭉한 농담을 했다. 15세기 몽골 지배 러시아에서 한 농군과 아내가 흙먼지 날리는 시골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말을 타고 오던 몽골 전사가 농군에게 그 아낙을 강간하겠다고 이르고는 이렇게 덧붙였다. “땅에 흙먼지가 많으니 내가 일을 치르는 동안 네가 내 고환을 받치고 있어야겠다. 거기가 더러워지면 안되니까.” 몽골인이 일을 마친 후 가버리자 농군은 기뻐서 깡충깡충 뛰기 시작했다. 아내가 놀라 까닭을 묻자 농군이 답했다. “그 놈한테 한방 먹였다고! 그놈 불알이 먼지로 뒤덮였단 말이야!” 사상가 슬라보예 지젝 | 경향신문 DB 이것은 옛날 사회주의권 반체제 인사들 사이에서 회자된 농담으로, 그들의 항거가 얼마나 무기력한 것이었는지 보여주기 위한 것이.. 더보기
‘친기업 반노동’ 보도 유감 1987년 7월 울산 현대중공업 등에서 노사분규가 잇따라 터졌을 때 도하 신문·방송들은 이곳으로 몰려들어 대대적인 보도를 했다. 때는 6월항쟁을 거치며 정치적으로 각성된 노동자들이 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시절이었다. 현대엔진에 현대 계열사 최초로 노조가 생긴 뒤 노조 결성과 파업 등 쟁의가 전국적으로 들불처럼 번져갔다. 이것이 훗날 1987년 노동자대투쟁으로 명명된 노사분규의 대분출이었다. 이상한 것은 언론의 보도태도였다. 6월항쟁 때 시민 쪽으로 돌아섰던 언론은 이 쟁의의 실상과 본질을 왜곡해 노동자들을 여론으로부터 고립시켰다. 이런 식이었다. ‘무법·광란, 울산시청 수라장…술 마시고 부수고 노래하고’ ‘현대중 300여명 차고 방화 등 난동 1시간’ ‘사장 등 맨바닥 앉히고 폭언’…. 6월항쟁 | 경.. 더보기
아버지의 유산 아버지의 유산이 든든한 정치적 자산인 두 여성 정치인 얘기를 하고자 한다. 한 사람은 박근혜 의원이고, 또 한 사람은 프랑스의 극우정치인 장 마리 르펜의 딸 마린 르펜이다. 두 사람을 불러낸 것은 공통점도 있고 비교되는 것도 있어 흥미롭기 때문이다. 마린 르펜 국민전선 당수(42)는 내년 5월 프랑스 대선을 앞두고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신예 정치인이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지지율이 대중운동연합의 사르코지 대통령을 제쳐 다음 대선에서 파란을 예고하고 있다. 더욱이 며칠 전 사회당의 유력 후보 도미니크 스트로스 칸 IMF 총재가 성폭행 사건에 휘말린 것은 그에게 뜻밖의 호재일 거다. 마린 르펜 프랑스 국민전선 대표 | 경향신문 DB 신예라곤 해도 마린이 부친의 후광 덕택에 거저 현재에 이른 건 아니다. 세.. 더보기
원전이 정답 아닌 100가지 이유 2001년 발생한 9·11테러는 ‘묵시록적 사건’으로 묘사되곤 했지만 지난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묵시록적 성격이 그보다 더하다고 생각한다. 9·11 며칠 후 나는 한 칼럼에 “사람들이 쌍둥이 빌딩에서 솟아오르는 거대한 화염 속에서 악마의 얼굴을 보았다는 입소문은 이 사건의 묵시록적 성격을 암시하는 것 같았다”고 썼다. 세기초였지만 세계무역센터의 드라마틱한 붕괴 광경이 던진 충격은 세기말 묵시록의 한 장면을 연상케 할 만큼 컸다. 테러 후 세계는 2개의 전쟁에 휘말려들었다. 학자들이 9·11 이전과 이후로 시대구분하는 용어를 쓸 만큼 파장은 심대했다. 그러나 10년 후 일본에서 터진 원전 사고는 묵시록적 사건에 대한 통념을 깨는 것이었다. 이런 게 진짜 묵시록적 암시 아닌가…. 그럴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 더보기
예속이냐 폭로냐 스피노자가 에서 미신을 비판하며 던진 “다중은 왜 예속을 욕망하는가”란 질문은 현대에 와 파시즘에 대한 대중의 자발적 예속을 비판할 때 원용되곤 한다. 그렇다. 민중의 자발적 동의가 파시즘의 주요 자양분이다. 이 자발성이 현대의 권위주의 체제에서 발견되는 파시즘 현상의 동력이 된다. 그러나 자발적 예속과 정반대인 흐름도 존재한다. 조직 내부의 파시즘을 거부하고 불의를 고발·폭로하는 경우다. 그런 사례들도 꽤 있다. 1990년 보안사의 민간인 불법사찰 기록을 공개한 윤석양 이병, 감사원과 재벌의 유착 비리를 고발한 이문옥 감사관, 1992년 군 부재자 투표 부정을 고발한 이지문 중위, 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여당이 단체장을 통해 선거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제기한 한준수 연기군수, 2000년 인천 국제공항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