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이 ‘교육감 선거 당시 후보 단일화를 이룬 상대 후보에게 2억원을 건넨 사건’(곽노현 사건)이 터진 지 시간이 꽤 흘렀다. 그가 돈 준 사실을 밝힌 것이 지난해 8월28일이니까 만 다섯달이 지났다. 지난 19일 열린 1심 판결에서 곽 교육감은 벌금형을 선고받고 풀려나 직무에 복귀했다. 보수단체들은 그가 첫 공식 출근한 30일부터 사퇴를 요구하며 출근저지 투쟁을 벌이고 있다. 재판이 2·3심을 남겨둔 데다, 곽 교육감이 복귀하자마자 서울학생인권조례를 공포해 논란이 가열되는 등 ‘곽노현 사건’은 진행형이다.
먼저 밝힐 것이 있다. 첫째, 나를 억누르고 있는 무언가 불편함, 답답함을 털어버리고 싶은 마음에 이 칼럼을 쓴다. 둘째, 사설이 그 신문의 입장과 논조를 분명히 하는 공식적 문건이라면, 칼럼은 개인 의견을 자유롭게 개진하는 성격이 강하다. 이 얘기를 하는 이유는 경향신문이 사설에서 ‘곽노현 사건’과 관련해 밝혀온 공식 견해와 이 칼럼 내용 사이에 일치하지 않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곽노현 교육감이 지난해 8월28일 기자회견을 열고 "박명기 교수에게 선의로 2억원을 줬다"고 밝히고 있다.
경향신문은 지난해 곽 교육감이 돈 준 사실을 시인했을 때 ‘곽 교육감은 2억원 전달 책임지고 사퇴해야’란 사설을 통해 “선의에 입각해 지원했다고 말했지만 구차한 변명일 뿐”이라면서 “대가 약속이 없었다고 해서 2억원이라는 거액을 전달한 사실이 문제가 안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못박았다. 얼마 전 1심 판결 뒤엔 “1심 판결로도 교육감으로서의 도덕성과 리더십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었다고 할 수밖에 없다”며 “진정한 교육혁신의 길이 무엇인지 심사숙고해 용단을 내리기 바란다”고 썼다. 이 사설 내용들을 조율하고 합의에 이르기 위해 논설위원들은 긴 난상토론을 벌였다. 사건 성격상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 점에서 이 칼럼은 재판으로 치면 소수의견이자 ‘못다한 얘기’ 정도로 보아도 되겠다.
우선 곽 교육감의 ‘죄와 벌’을 논함에 있어 도덕성에 대한 중대한 오해가 있다. 그것은 진보는 도덕적으로 깨끗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사건이 발생하자 한나라당은 즉각 곽 교육감이 ‘부패진보’와 ‘위선진보’의 상징이 됐다고 비난했다. 보수언론도 마찬가지였다. 이들이 이런 건 당연했다. 문제는 진보진영 내부에서 나온 ‘진보의 도덕적 타락’ 비판이다. 가령 문화비평가 진중권은 “이마에 ‘진보’ 딱지 붙인 수많은 교수와 논객들이 곽 교육감을 옹호한답시고 저마다 궤변을 늘어놓으면서, 문제는 졸지에 진보진영 전체의 도덕적 스캔들로 비화했다”며 진보의 곽 교육감 옹호를 문제삼았다. 그가 아니라도 많은 진보 인사들이 진보의 유일한 무기인 도덕성이 큰 상처를 입었으므로 법적 책임에 앞서 도덕적 책임을 져야 한다는 쪽으로 기운 게 사실이다.
그러나 논리적으로 볼 때 진보 교육감의 부도덕성이 더욱 비난받아야 한다는 주장은 맞지 않는다. 진보와 보수로 성향을 분류해 죄의 경중을 따지는 것 자체가 이상하다. 그렇다면 도리어 보수적 가치를 지키는 교육감이 부도덕해선 안된다는 주장이 가능하다. 정희준 교수는 “도덕성은 원래 보수의 덕목이다. ‘진보=도덕성’이란 공식은 논리모순”이라며 “도덕성은 보수에게 던져버려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한국에서 유난히 진보의 도덕적 타락에 대한 거부감이 심한 것은 그만큼 보수가 일그러져 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은 보수라고 하면 부패하고 생각이 다른 사람과 대화하기보다는 ‘빨갱이’ ‘친북좌파’로 모는 데 익숙한 군상들을 먼저 떠올린다. 이것이 ‘건전 보수’란 단어가 형용모순이 되는 까닭이다. 만약 ‘건전 보수’가 형용모순이 아니라면 ‘부패한 진보’ 또한 그러하다.
세상사엔 ‘모 아니면 도’만 있는 게 아니다. 엄주웅 언론광장 운영위원은 곽 교육감 사건 관련 경향신문 옴부즈만 칼럼에서 “수구언론들처럼 고착된 좌우, 진보·보수 프레임에 갇히게 되면 양극단의 입장만 남아 그 사이의 다양하고 중간적인 지점들은 상대에게 밀릴 수 없는 ‘낙동강 전선’이 되고, 대안은 힘의 논리밖에 남지 않게 된다”고 말했다. 나는 곽 교육감의 경우 무슨 ‘부패한 진보’를 용인하자는 게 아니라, 재판이 진행 중이므로 무죄추정의 원칙을 인정하고 지켜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교육감이 법을 어겼다는 것을 문제삼기도 한다. 논리 비약이라고 할지 모르나 용산참사 때 희생된 사람을 생각하게 된다. 희생자들이 법을 위반한 건 분명하다. 하지만 법을 어겼다고 해도 그게 죽을 죄는 아니었다. 경찰특공대가 무모한 작전을 감행하는 바람에 철거민 5명과 경찰 1명이 불에 타 죽은 것은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다. 죄와 벌에는 형평성이 있어야 한다.
또 하나 중요한 오해는 진보적 교육감이 얼마든지 있으리란 생각이다. 그렇지 않다. “서울 교육을 웬 듣보잡이 말아먹는 바람에 말이 아니다”란 댓글에 동의한다. 교육개혁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곽 교육감은 삼성의 변칙 상속을 파헤쳐 에버랜드 유죄 판결을 이끌어낸 주역이자 국가인권위 사무총장 출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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