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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철웅 칼럼

한·미 FTA, 제주 해군기지는 전 정권 책임?


엊그제 제주도 서귀포 해군기지 건설현장에서는 구럼비 해안 너럭바위에 대한 발파작업이 재개됐다. 인근 화약 보관창고 앞에선 평화활동가들이 화약 운반을 막으려다 10명이 경찰에 연행됐다. 이날 발파작업의 전격 재개로 해군기지 사업은 속도전으로 치닫고 있다고 제주일보는 보도했다. 속도전이란 말은 이 정권에서 진부한 일상어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이명박 정권은 4대강 사업을 되돌릴 수 없도록 하겠다며 밤낮없이 속도전을 벌였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안을 날치기 통과시킨 데 이어 제주 해군기지도 속도전이다.


<제주 해군기지 건설에 반대하는 종교인과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20일 서귀포시 강정마을 앞 구럼비 해안에서 ‘해군기지 결사반대’라고 적힌 깃발을 세우고 농성을 벌이고 있다.>


이 정권은 이 2개 속도전을 노무현 정권 책임론과 연결짓고 있다. 전 정권에서 시작한 일이란 것이다. 새누리당은 이 두 국가적 아젠다에 민주통합당이 반대하는 것은 무책임한 말바꾸기라고 공격하고 있다.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은 “노무현 정부 당시 국익과 안보를 위해 꼭 필요한 일이라면서 자신들이 앞장서서 추진한 것을 당리당략 때문에 반대하는 것은 무책임한 일”이라는 발언을 여러 차례 했다. 이런 일에 여당 때와 야당 때 입장이 다르다면 책임 있는 공당의 모습이 아니라고도 했다. 한 입 가지고 두 말 말라는 것인데, 명분 싸움에서 야당이 당해내기 어려운 논리인 듯하다.

야당이 이렇게 된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첫 단추를 잘못 채운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잘못 채운 단추를 제대로 풀지 못한 것이다. 미국과의 FTA는 자유무역에 대한 노무현식 미망의 소산이었다. 그것은 진보세력들이 노 대통령을 ‘변절자’로 낙인찍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이들은 한·미 FTA를 김대중 정부 때부터 이어진 신자유주의 정책의 결정체로 간주했다.

노 대통령은 제주 해군기지에 대해서도 “평화의 땅에도 비무장은 없다”며 건설이 불가피하다는 논리를 폈다. 이것도 미국, 중국과의 관계 등을 고려한 종합적·균형적 판단이었다고 보기 어렵다. 잘라 말해 한·미 FTA와 제주 해군기지는 노 정권의 판단착오였다. 현재의 민주통합당은 이것을 진솔하게 인정하고 사과했어야 옳다. 그런데 그러지 않았다. 이 공식적 사과 절차가 생략된 것이 두고두고 민주당의 발목을 잡고 있다. 민주당 내에는 정동영·천정배 의원처럼 한·미 FTA에 대해 국민에게 분명하게 사과하고 이해를 구해야 한다는 사람도 있으나 당 차원에서 그런 일은 없었다. 그런 어정쩡한 상태에서 이명박 정권의 재협상으로 이익균형이 깨졌다는 등 부분적 진실만을 되뇌니 논리가 꼬인다.

이 약점을 틀어쥔 새누리당은 민주당의 일관성 문제를 갖고 계속 노래를 불러대고 있다. 그러나 이 또한 책임있는 집권당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전 정권이 시작했다는 사실 하나가 곧 속도전 강행을 정당화하는 논리의 전부가 될 수는 없다. 민주당이 일관성을 잃었다는 문제와 한·미 FTA 및 제주 해군기지를 강행한다는 문제는 별개의 것이다. 즉 두 사안의 본질적 부분이라고 할 수 없다. 도리어 신뢰성에 문제가 있는 민주당이 벌인 일을 새누리당이 완수하지 못해 안달하는 이상한 모양새가 된다.

우리는 이명박 정권 초기부터 ABR(Anything But Roh) 정서가 강하게 작용했던 것을 기억한다. 풀이하자면 ‘노무현이 하던 것만 빼곤 뭐든지’라는 뜻이다. 미국 부시 정권이 들어선 뒤 전임 클린턴 대통령과 차별되는 정책을 ‘ABC’, 즉 ‘클린턴이 하던 것만 빼곤 뭐든지(Anything But Clinton)’라고 했던 걸 빗대 누군가 만든 말이다. 이 원칙은 특히 외교·안보 정책에 철저히 적용됐다. 부시가 클린턴의 유화적인 대북정책들을 찢어버렸듯 이명박 정권도 전 정권의 통일, 외교, 교육, 경제 등 거의 모든 정책들을 흔들어버렸다. 그리고 종국에는 그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정권 아니던가. 그런 정권이 ABR에 선택적 예외를 두는 것은 ‘당리당략’ 아닌가.

아무리 훌륭한 정치적 선택, 결정, 정책이라도 지고지선, 만고불변의 것은 없다. 지켜온 이념을 바꾸는 것은 변절이라고 하지만 과거의 정치적 선택을 바꾸는 것 자체를 변절과 동일시할 수는 없다. 흔히 “정치는 살아 움직이는 생물과 같다”고 하는데, 이 말엔 정치적 행위가 상황 변화에 조응한다는 뜻도 담겨 있다. 정치·정치인이 일관성을 유지한다는 건 중요한 덕목이지만 그게 철칙은 아니다. 정치인도 약속과 말을 바꿀 수 있다. 중대한 사정변경이 있을 때나 판단착오가 있었음이 밝혀졌을 때는 정책 방향도 수정하고 법도 개정할 수 있다. 이 대통령도 말을 수없이 바꿨다.

상황 변화에 따라 시각과 정견을 수정하는 것은 변절이 아니라 용기다. 처음 잘못 판단한 게 칭찬할 일은 못될지언정 미국이 원하니, 또는 전 정권이 했으니 끝까지 가야 한다는 논리보다는 백배 낫다. 정치·이념적으로 그런 독선을 일컬어 수구 꼴통짓이라고 한다. 새누리당이 ‘노무현의 등에 업혀’ 한·미 FTA와 제주 해군기지를 관철하려는 모습은 자신이 “뼛속까지” 친미적이며 태생적으로 수구적 성격임을 드러내는 것이 아닌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