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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철웅 칼럼

이명박과 박근혜의 정치적 DNA

가령 새누리당이 다음주 총선에서 승리하고 내쳐 12월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가 당선된다면 새누리당 정권은 연속성을 갖게 된다. 즉 대망의 정권 재창출에 성공하는 것이다. 그리 되면 “좌파 재집권 야욕을 막고…” 등 벅찬 수사도 동원될 터이다. 한데 새누리당의 정권 연속성·재창출론엔 묘한 구석이 있다. 자꾸 과거와의 단절, 차별을 얘기한다는 것이다.

박근혜 새누리당 선거대책위원장은 지난 2월 라디오 연설에서 “저와 새누리당은 잘못된 과거와는 깨끗이 단절하고 미래로 나아가겠다”고 말했다. 친박 쪽 핵심 관계자는 이를 “이명박 대통령의 잘못된 리더십, 돈봉투 등 구태, 거수기 정치, 공천 학살, 약속을 뒤집는 관행 등과의 단절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니까 박근혜가 말한 과거와의 단절은 이명박과의 단절로 보아도 되겠다. 동시에 야당의 이명박 정권 심판론을 차단한다는 양수겸장의 노림수였다.

각종 변수의 선거 유불리를 따지고, 표계산을 해야 하는 정치공학적 차원에서 이는 불가피한 선택이었으리라. 온갖 부정적 여론의 구심점인 이명박과의 단절은 새누리당과 박근혜의 정치적 성패가 걸린 문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명박 정권이 정의를 모르고, 부도덕하면서도 도덕적으로 완벽하다고 착각하고 있는 정권인 건 세상이 안다. 박 위원장도 단절을 말할 때 분명 이 점을 염두에 두었을 것이다. 그러면 이 단절과 차별화는 성공할까. 외부적 조건, 주체적 역량 두 측면에서 모두 아닌 듯하다. 일본이 잘 보여주듯 과거사로부터의 단절이든 그 청산이든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다.

이명박과 박근혜. 2011. 6 청와대 I 출처:경향DB

과거와의 단절을 말해 온 박근혜의 의도와는 정반대로, 이번 민간인 불법사찰 파문은 초록(草綠)이 동색(同色)임을 확인케 했다. 여기서 초록은 이명박과 박근혜이며, 한나라당과 새누리당이다. 이명박의 한나라당과 박근혜의 새누리당이 단절됐다는 주장이 허구임이 분명하게 드러났다는 뜻이다.

왜 그런가. 그 단절이란 게 통렬한 반성 없이 립 서비스로 이뤄졌기 때문이다. 새누리당은 선거가 임박해 터진 불법사찰 파문에 대해 깊은 반성부터 했어야 했다. 그러나 그러지 않았다. 철저한 반성이 생략되니 그 다음 행태는 좌충우돌, 지리멸렬일 수밖에 없다. 처음엔 당 대변인이 “민간인 사찰은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범죄행위”란 묵직한 논평을 내놓았다. 그러나 하루 만에 태도가 돌변했다. 청와대가 “사찰문건의 80%가 노무현 정권 때의 것”이라고 발뺌하자, 박 위원장은 “정권을 막론하고 불법사찰이 벌어졌다. 나도 사찰당했다”며 양비론으로 말을 바꿨다.

권력은 재임 중, 집권하고 있을 때가 가장 중요하다. 여든 야든 “왕년에 어쨌다”는 말은 별로 힘이 없다. 현 정권의 불법사찰과 은폐·조작 증거가 엄연히 드러났는데도, 전 정권도 그랬다며 물타기를 하는 것은 졸렬하다. 자신의 과오에 대해 책임질 줄 모르는 정당임을 만천하에 광고하는 짓이다. 굳이 전 정권과 현 정권의 사찰 내용이 달랐음을 지적할 것도 없이 그렇다. 그럼에도 새누리당 이혜훈 선대위 상황실장은 어제도 단절론을 꺼냈다. “새누리당은 이미 한나라당으로부터 달라진 모습, 달라진 이름으로 국민들에게 변화와 쇄신의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에 ‘이명박 정부=새누리당’ 이렇게 말하는 것이야말로 정치공세다.” 숫제 이명박은 새누리당과 관계 없는 사람이라고 우기는 꼴이다. 국민을 너무 우습게 여기는 게 아닌가.

이로써 얻는 결론은 이렇다. ‘오십보 백보, 그 밥에 그 나물, 호박에 줄긋기, 개꼬리 3년 묻어 황모 안된다.’ 새누리당이 일부 야당 후보들에 대해 열심히 색깔론을 펴다 자제하는 것 같아 뭔가 달라졌나 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어느 결에 한나라당의 구태로 돌아온 것이다.

정치와 정당엔 유기체적 성격도 있다고들 한다. 그 점에서 나는 새누리당의 이런 구태 회귀 행태를 생명공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본다. 한나라당과 새누리당의 단절론이 기본적으로 성립되기 어려운 이유는 둘의 정치적 유전자와 유전자 구성물질, 즉 DNA가 같기 때문이다. 생명이란 자기를 복제하는 시스템이다. 그리고 유전자와 DNA가 같기 때문에 새누리당은 한나라당의 복제일 뿐이다. 새누리당이 한나라당과의 단절을 표방하면서 복제, 곧 정권을 재창출한다는 것은 커다란 딜레마적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이명박의 4대강 속도전, 성장주의, 친재벌, 민간인 사찰, 색깔론에 기대는 성향에는 원조가 있다. 박정희다. 개발독재와 정보통치 등 박정희의 유전자가 이 시대에 되살아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박근혜는 “아버지가 가진 역사관, 안보관, 세계관을 들으면서 배웠다”며 자신의 정치철학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인물로 주저없이 아버지를 꼽는다. 생물학적으로 뼛속까지 박정희의 분신인 것은 물론 정치적 DNA 역시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라고 봐야 한다. 이런 저런 이유에서 이명박과 박근혜 둘의 관계는 운명이다. 무턱대고 단절한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