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일요일 서울 광화문광장 이순신 동상 앞에 청소년 20여명이 모여 성명서를 낭독했다. “얼마나 더 죽어야 중단하시겠습니까!”로 시작되는 성명이었다. 성명은 지난주 중학생 2명과 카이스트 학생이 목숨을 끊었지만 사회는 피지도 못하고 떨어져버린 친구들의 죽음에 관심도 없고 눈물 흘리지도 않는다고 했다. 이 시간에도 학생들은 입시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죽도록 공부하라고 강요받고 있다고 호소했다. 성명은 “정부가 지금이라도 ‘입시경쟁교육’이 이번 죽음의 본질임을 인정하고 죽음의 입시경쟁교육을 즉각 중단하기를 촉구한다. 또 보여주기 위한 대책이 아닌, 본질적인 대책을 제시하길 바란다”고 밝혔다.
비바람이 불어 아이들이 든 국화와 손팻말을 타고 빗물이 흘러내렸다. 희망의 우리학교만들기 모임에 속한 아이들은 이튿날부터 ‘입시교육이 대한민국 미래를 죽이고 있다’는 손팻말을 들고 무기한 1인 릴레이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들의 성명은 몇몇 언론에 간략하게 보도됐을 뿐,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세상은 가령 어린 학생이 공부 스트레스를 견디다 못해 투신했을 때나 반짝 관심을 쏟을 뿐이다. 따라서 이 성명은 곧 잊혀질 것이다. 그러나 나는 청소년들이 아주 중요하고 의미 있는 행동을 했다고 평가한다. 세상을 향해 잘못된 교육, 비인간적 교육에 항의하는 용기를 보였다는 점에서다. 이들은 친구들의 죽음을 과도한 입시경쟁교육에 의한 명백한 ‘타살’이라고 규정했다. 1980년대 후반 한 여중생이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란 유서를 남기고 세상을 버린 이래 수많은 아이들이 그 뒤를 따랐다. 언제부턴가 한국 청소년 자살률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1위라거나 학생들이 매일 1명꼴로 자살한다는 사실은 그렇고 그런 통계수치로만 간주되고 있다.
22일 오후 2시 봄비가 내리는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청소년들이 죽음의 입시경쟁교육 중단을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하고 있다.
그러나 청소년들은 그런 현실을 체념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거부하고 성명을 통해 적극적으로 항의하고 나섰다. 죽음의 입시경쟁교육을 중단하라고 분명한 의사표시를 했다. 미성년으로서 이만한 일을 하는 데는 용기가 필요했을 것이다. 한편으론 이들이 얼마나 절박하게 입시교육의 질곡에서 벗어나기를 바라고 있는지를 헤아려보게 된다. 이들의 행동을 내놓고 칭찬하고 격려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지만 사회적 진보의 증거일 수 있다는 생각도 든다.
아이들이 그렇게 애절한 호소를 했으면 마땅히 어른들이 응답할 차례다. 혹여 어른들 가운데는 입시교육을 중단하란 주장을 극히 적은 청소년들의 목소리로 치부해버릴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이 어렵게 용기를 낸 이번 행동은 많은 아이들의 심정을 대변한 것으로 봐야 한다.
애들의 주장이 아직 철이 안 들어 하는 말이라며 경쟁 없이는 발전이 없다거나, 세상은 적자생존이며 약한 자는 도태될 수밖에 없다는 논리를 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는 한국교육을 지배해 온 이런 단순 논리와 인식이 오늘의 비극적 상황을 초래한 근인이 됐다고 생각한다. 그런 부분적 진실로 문제의 본질을 가려서는 안된다. 한국교육 문제의 본질은 지옥으로 불리는 입시경쟁이다. 공교육 붕괴나 학교폭력 만연도 크게는 성적 경쟁 위주의 입시제도에서 파생된 것이다. 그런데 이런 입시경쟁을 지속가능케 하는 것은 그 뒤에 도사린 학벌주의라는 거대한 괴물이다. 따라서 입시경쟁교육을 중단하라는 청소년들의 요구는 학벌주의 청산 문제를 건드린다는 점에서 단순하게 생각할 것이 아니다.
문제를 학벌주의 청산으로 넓히면 이른바 학벌 기득권 세력이 최대의 걸림돌로 떠오른다. 문제를 해결하려면 가령 국회와 정부에 위원회도 만들어 매달려야 하는데 그게 안되는 결정적 이유는 정부와 국회를 끌어가는 관료, 의원들의 대다수가 학벌 기득권 세력이기 때문이란 분석이 나온다. 이미 좋은 학벌의 혜택을 누려온 사람들이 그것을 포기하기는 쉽지 않다. 겉으로는 학벌주의를 개탄해도 내 자식만큼은 좋은 대학 나와 기득적 삶을 누려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기 십상이다. 부의 대물림과 함께 학벌 대물림 현상이 심화하는 이유다.
이렇게 볼 때 필요한 건 교육체제의 혁명적 변화이며, 이를 위한 획기적 발상 전환이다. 아이들에게는 미안하지만 또 정치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는 교육체제 개혁을 넘어 노동시장과 산업정책을 바꾸는 문제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이런 폭넓은 개혁이 있어야 학력만으로 인생이 결정되는 불합리한 구조가 극복될 수 있다. 이 문제에 있어 새누리당은 서열화된 대학사회를 구조조정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적이 한번도 없다. 새누리당에 학벌세습 체제 타파를 기대하기 어려운 이유다. 민주통합당도 이 문제에 의미 있는 해법을 내놓지 못했다. 통합진보당만이 대학 서열화와 학벌주의 극복을 위한 전면적 교육개혁 공약을 제시하고 있다. 문제해결의 궁극적 전망은 정권교체에서 찾을 수 있다는 말이 된다. 이에 앞서 당장 어른들이 할 일은 이 문제를 중대한 사회적 과제로 인식하고 행동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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