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여적] 조하르 두다예프의 기억 보스턴 테러가 터진 후 필자의 눈길을 끈 것은 조하르란 이름이었다. 범인으로 지목된 차르나예프 형제 중 형 이름이 타멜란(26·사망), 동생이 조하르(19)다. 이 이름은 나를 체첸 대통령 조하르 두다예프(1944~1996)의 기억으로 이끌었다. 구소련에서 체첸이 배출한 유일한 공군장성(소장)인 그는 소련이 붕괴하자 체첸 독립운동에 나섰다. 1994년엔 러시아가 침공하자 처절한 민족해방 전쟁을 벌였다. 그는 사생관이 뚜렷한 지도자였다. 러시아는 그를 제거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그는 이따금씩 기자회견을 했다. 1995년 초 한 신문이 “기자를 가장한 러시아 비밀정보원의 접근이 두렵지 않냐”고 묻자, 돌아온 대답은 “나의 생명은 정보원이나 러시아 정부가 아니라 신에게 속해 있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대담.. 더보기
[여적] 말의 개념 “그 사람 개념이 없다”고 하면 상식을 벗어난 행동, 태도가 거슬린다는 뜻이다. 이런 특수한 용례도 있지만 어떤 사물과 현상의 개념을 올바르게 안다는 건 매우 중요하다. 개와 고양이의 개념이나, 춥다와 덥다의 개념 같은 게 사람마다 헷갈린다면 세상은 정상적 소통을 포기해야 할 거다. 원시인들의 말에는 ‘추상(抽象)’이 없었다고 한다. 그들은 예를 들어 ‘걷다’란 일반적 개념의 동사 대신 ‘어슬렁어슬렁 걷다’ ‘허겁지겁 걷다’와 같이 구체적인 행동에 따라 다른 동사를 사용했다고 한다. 밤하늘의 달도 최초에는 ‘초승달’ ‘반달’ ‘보름달’처럼 별개의 명사로 불렸다는 설이 있다. 그러다 인간 사유와 추상능력이 발달하면서 추상성을 가진 언어가 생겨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언어의 추상성은 양날의 칼 같은 존재다... 더보기
굿바이 티나 20년 전 필자의 러시아 여행에 대한 회상으로 시작하자. 모스크바대 연수 중 훌쩍 떠나온 크림반도 심페로폴의 카페에서 귀에 익은 팝송이 흘러 나왔다. 메리 홉킨의 ‘도즈 워 더 데이즈(Those Were The Days)’였는데, 보컬 그룹이 러시아어로 부르고 있었다. 동행한 러시아 친구에게 “팝송을 러시아어로 부르네”라고 했다가 면박을 당했다. 이 곡은 원래 러시아 노래 ‘다로고이 들린노유(머나먼 길)’였다. 메리 홉킨이 1968년 번안해 불러 유명해진 것이다. 원곡도 애절한 사랑의 추억에 관한 것이었지만, 번안한 가사도 썩 훌륭하다. 18세 웨일스 시골뜨기 소녀를 일약 세계적 스타로 만든 것은 청아하고 호소력 짙은 목소리와 함께 가슴에 절절하게 와닿는 노랫말일 것이다. 결코 끝날 것 같지 않던 행복한..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