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여적

[여적] 독선적 신앙의 끝 팔레스타인 시인 다르위시(1941~2008)에게 희망은 ‘치유할 수 없는 질병’이었다. 그는 죽을 때까지 팔레스타인 해방과 독립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그런데 어떤 사람에겐 종교적 독선이 치유하기 힘든 질병이다. 미국 플로리다주 시골 마을의 목사 테리 존스의 행태를 보면 그가 그런 불치병을 앓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그는 지난달 20일 이슬람 경전 코란을 피고로 모의재판을 벌인 뒤 이를 불태웠다. 코란 소각 장면을 인터넷으로 공개했다. ‘화형식’을 거행한 이유는 코란이 폭력을 부채질한다는 것이었다. 존스 목사가 코란을 갖고 소각 소동을 벌인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작년 9·11테러 9주년 때도 코란을 불태우는 행사를 예고했다가 오바마 대통령까지 나서 말리자 실행을 중단했다. 그러나 계획을 .. 더보기
[여적] 중산층 표심 손학규 민주당 대표가 좀체 안 할 것 같은 일을 벌였다. 경기 분당을 보궐선거에 출마했다. 분당은 한나라당 절대 강세지역이다. 역대 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에게 많은 표를 줘 민주당으로선 당선을 꿈꾸기 어려웠다. 탄핵 역풍으로 한나라당이 고전한 2004년 총선 때도 분당을은 꿋꿋하게 한나라당을 지지했다. 측근들은 “분당은 사지(死地)”라며 출마를 만류해 왔다고 한다. 그럼에도 손 대표는 ‘결사항전’을 다지며 정치생명을 건 승부수를 던졌다. 근사하다. 정치란 게 안전빵으로만 가면 재미가 없다. 필요할 땐 건곤일척의 결전도 벌이고 장렬하게 산화하기도 하는 거다. 속으로 그는 사즉생(死卽生)을 생각할 것 같다. 출마 선언 후 찾은 시장의 상인에게 “불구덩이로 가는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식의.. 더보기
[여적] 결사항전  한국인만큼 ‘결사(決死)’, 곧 ‘목숨 내놓고’란 말에 익숙한 국민도 없을 거란 생각이 든다. 툭하면 결사반대요, 결사저지다. 시위현장에 가 보면 안다. 농민들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결사반대하고 중소상인들은 동네에 대형마트가 들어오는 것을 결사반대한다. 제주도민들은 해군기지 건설을 결사저지하겠다고 시위를 벌인다. 정치판엔 또 결사 반대하고 저지하는 게 얼마나 많나. 심지어 해병대 훈련병 현빈의 연평도 자대 배치 가능성에 팬들이 결사반대를 외치고 있다고도 한다. 이렇게 우리에게 결사란 말은 일상적 레토릭이 됐지만 본뜻을 생각하면 그리 쉽게 쓸 게 아니다. 죽기를 각오하고 있는 힘을 다해 반대하는 데는 대단한 각오와 결의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사반대를 외치다 금세 조용해지는 여러 사례들을.. 더보기
[여적] 리비아 ‘내전’  리비아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내전’이란 말이 심심치 않게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리비아 유혈 사태를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는 해결책 모색과도 통한다는 점에서 우리가 내전이란 용어를 제대로 쓰고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리비아 사태는 42년에 걸친 카다피의 철권통치에 저항하는 시위로 촉발되었다. 이 점에서는 튀니지, 이집트 등에서 일어난 민주화 운동과 같다. 그런데 전개 양상이 다르다. 이웃 나라들은 비교적 순탄하게 ‘아랍 시민혁명’을 쟁취했지만 리비아는 극심한 유혈 사태에 빠져들었다. 무한한 권력집착가인 카다피가 군 장악력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지금 리비아에서 벌어지는 상황이 내전과 비슷해 보이는 것이다. 그럴 만한 요소들이 있다. 사람들이 매일같이 죽어가고 있다. 외신은 이를 두고 피바.. 더보기
[여적] 체 게바라의 추억 1951년 12월 아르헨티나의 젊은이 두 명이 모터사이클 여행에 오른다. 23세인 체 게바라와 6년 연장인 알베르토 그라나도를 실은 낡은 오토바이는 ‘포데로사(힘센 녀석)’로 명명됐다. 컴백이란 강아지도 동승했다. 두 사람은 8개월 동안 칠레, 페루, 콜롬비아, 베네수엘라를 거치며 남미 대륙을 북상한다. 무일푼 여행으로 때론 아마존강에 ‘맘보탱고’란 뗏목을 띄우고 낭만에도 젖었으나 이들에게 다가온 건 헐벗은 남미의 비참한 현실이었다. 페루 산파블로 나환자촌에 2주간 머물면서 값싸고 기본적인 의료혜택도 못 받는 원주민들의 박탈당한 삶을 목격했다. 의학도와 생화학도인 이들은 환자들을 돌보고 가난한 서민들의 삶을 체험하며 미래의 소명(召命)을 깨닫는다. 체는 혁명가로서, 알베르토는 자연과학도로서. 이 여행 이..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