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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여적] 자유함대와 희망버스 가끔 복수의 운동들이 비슷하게 펼쳐지는 것을 본다. 그 정신과 지향점, 난관을 극복하겠다는 의지에 공통점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목하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벌어지는 ‘자유함대’ 운동과 부산 한진중공업에서 벌어지는 ‘희망버스’ 운동에서 그런 공통점이 발견된다. 세부적 내용은 차이 나지만 둘은 자발적 시민운동인 점, 어려운 이웃에 대한 강력한 연대의 정신을 보여준다는 점이 매우 닮았다. 심지어 이를 막으려는 ‘권력’의 논리마저 놀랄 정도로 비슷하다.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국경마을에서 한 여성이 팔레스타인 국기를 들고 걷고 있다. | AP연합뉴스 | 경향신문 DB 자유함대는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봉쇄 해제를 요구하는 국제적 시민운동이다. 현재 이들은 배에 구호품을 싣고 그리스를 출발해 이스라엘의 봉쇄를 뚫고 가.. 더보기
[여적] 아버지 잊을 만하면 무슨 계기를 통해 새삼 그 의미를 곱씹게 만드는 이름이 있으니, 아버지다. 옛날의 아버지는 강하고 힘셌다. 굳이 아버지의 의미를 찾고 어쩌고 할 이유가 없었다. 아버지의 존재 이유는 그저 아버지란 사실 하나로 족했다. 언제부터인지 아버지가 작아지기 시작했다. 1996년 나온 김정현의 소설 는 어깨 위에 얹힌 삶의 무게로 힘겨워하는 이 시대 아버지들의 이야기다. 그 이야기를 자신들의 이야기로 받아들인 아버지와 아내, 자식들이 이 소설을 찾는 바람에 300만부나 팔렸다. 소설 속 아버지는 작고 초라하다. “내 무엇이 그렇게 비난받고 경멸당할 거리던가. 내 아무리 초라하고 무능했어도 아버지였고 남편이었어. 그런데 왜 날 무시하고 경원해. 나의 삶이 성공적이지 못해 그토록 부끄럽고 싫었나. 하지만 .. 더보기
[여적] 지도자의 탄식  때로는 국가 지도자도 탄식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누항(陋巷)의 장삼이사(張三李四)들이 내뱉는 탄식과는 다르다. 달라야 하며 다를 수밖에 없다. 가장 결정적으로 다른 것은 책임감이다. 가령 평범한 집안의 가장이 자녀를 꾸짖고 벌 주는 것은 항용 있을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그가 만약 가정사가 잘못된 것을 개탄하며 ‘콩가루 집안’ 같은 표현을 썼다면 문제가 좀 다르다. 가장은 가정사를 직간접적으로 책임져야 할 사람인데 ‘콩가루 집안’이란 탄식엔 그런 책임의식이 빠져있기 때문이다. 하물며 국정의 최고 책임자인 대통령이 하는 탄식이라면 격이 달라야 한다. 탄식에 무슨 격이냐 하겠지만 책임감과 자기성찰이 묻어나야 한다는 뜻에서다. 이명박 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식에서 경축사를 하고 있다.| 경향신문 DB 이명.. 더보기
[여적] 마지막 판자촌 서울에 판자촌이 등장한 것은 한국전쟁 이후의 일이다. 생계거리를 찾아 서울로 올라온 사람들이 청계천변에 판잣집을 짓기 시작해 천변을 따라 긴 판자촌이 형성됐다. 맑은 물이 흐르는 천변은 가난한 사람들이 집을 뚝딱 짓고 살기에 제격이었다. 판자촌엔 잡화점, 연탄가게, 만화가게 따위가 들어섰다. 1950년대 말 청계천 복개공사가 시작된 후 박정희 정권은 이곳 판자촌을 대거 철거하고 69년 경기도 광주(지금의 성남)로 철거민들을 강제이주시켰다. 판자촌은 청계천변에만 있었던 게 아니다. 필자가 60년대 초등학교를 다닌 서울 서대문에도 있었다. 한번은 선생님을 따라 가정방문을 간 곳이 우리 옆동네 판자촌이었다. 필자의 집도 누옥이긴 했지만 그렇게 누추한 집은 처음 보았다. 때는 달동네란 말도 없던 시절이었는데.. 더보기
[여적] 국기 모독에 대한 분노 2002년 월드컵 때 거리는 태극기 패션으로 넘쳤다. 태극기는 더 이상 ‘국기에 대한 맹세’와 부동자세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었다. 여인들의 치마폭도 되고 앙증맞은 얼굴 스티커, 스카프가 되기도 했다. 1882년 수신사 박영효가 일본땅에서 태극기를 내건 이래 120년 ‘태극기사’에서 이런 일은 처음이었다. 태극기가 애국가 속에 펄럭이는 엄숙한 이미지를 벗어나 친근하고 사랑스러운 대상으로 변신한 것이다. 그때 태극기가 거리의 패션으로 전락했다고, 그래서 존엄성을 모독당했다고 시비 거는 사람은 없었다. 이번엔 그 반대 경우다. 2003년 8월 대구 유니버시아드 대회를 앞두고 우익단체들이 연 ‘반핵·반김대회’에서 인공기를 찢는 일이 벌어지자 북한은 불참의사를 강하게 시사했다. 닫힌 북한 사회가 국기 훼손을 곧바..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