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월드컵 때 거리는 태극기 패션으로 넘쳤다. 태극기는 더 이상 ‘국기에 대한 맹세’와 부동자세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었다. 여인들의 치마폭도 되고 앙증맞은 얼굴 스티커, 스카프가 되기도 했다. 1882년 수신사 박영효가 일본땅에서 태극기를 내건 이래 120년 ‘태극기사’에서 이런 일은 처음이었다. 태극기가 애국가 속에 펄럭이는 엄숙한 이미지를 벗어나 친근하고 사랑스러운 대상으로 변신한 것이다. 그때 태극기가 거리의 패션으로 전락했다고, 그래서 존엄성을 모독당했다고 시비 거는 사람은 없었다.
이번엔 그 반대 경우다. 2003년 8월 대구 유니버시아드 대회를 앞두고 우익단체들이 연 ‘반핵·반김대회’에서 인공기를 찢는 일이 벌어지자 북한은 불참의사를 강하게 시사했다. 닫힌 북한 사회가 국기 훼손을 곧바로 체제 모독으로 간주한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까지 나서 겨우 북한을 달랬다. 한데 국기에 대한 집착으로 치면 북한과 난형난제인 것이 남한 우익들이다. 당시 이들이 연 무슨 ‘규탄대회’에서 한 경찰이 인공기 절단 행위를 막으려다 참가자들에게 집단구타를 당해 피투성이가 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빨갱이 잡아라” “죽여라”라는 고함이 난무했다. 북이나 남쪽 우익들이나 공통점은 국기에 과도한 의미와 신성성을 부여한 것이 사달이라는 점이다.
노무현 대통령까지 나서 겨우 북한을 달랬다. 한데 국기에 대한 집착으로 치면 북한과 난형난제인 것이 남한 우익들이다. 당시 이들이 연 무슨 ‘규탄대회’에서 한 경찰이 인공기 절단 행위를 막으려다 참가자들에게 집단구타를 당해 피투성이가 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빨갱이 잡아라” “죽여라”라는 고함이 난무했다. 북이나 남쪽 우익들이나 공통점은 국기에 과도한 의미와 신성성을 부여한 것이 사달이라는 점이다.
며칠 전 이색적 국기 모독 사건이 뉴스가 됐다. 지난달 한명숙 전 총리가 서울 대한문 앞 노무현 전 대통령 2주기 추도식에서 태극기를 밟고 헌화했다고 우익단체들이 검찰에 고발한 것이다. 국기모독죄란 거다. 한 전 총리 측은 대형 태극기가 깔린 바닥에 노 전 대통령의 비석이 서 있어 신을 벗고 올라가 헌화했을 뿐 태극기 모욕 의도는 없었다고 밝혔다.
이 일은 법리를 따지기조차 민망하다. 국기모독죄는 목적법이다. 형법 105조는 ‘대한민국을 모욕할 목적으로’라고 국기 모독 성립 요건을 명시하고 있다. 국기를 밟는 일이 없었더라면 더 좋았겠지만, 그가 국기를 모욕하려는 의도를 갖고 그러지 않았음은 분명해 보인다.
따라서 짚어봐야 할 건 법리보다는 그들이 갖고 있는 분노의 실체다. 그리고 그걸 수사하겠다고 밝힌 검찰과 “용납할 수 없는 행위”란 논평을 낸 한나라당이다. 대체 이들을 화나게 한 건 뭘까. 답이 떠오르는 대신 입맛만 씁쓸하다. 이 사회가 뒤로 질주하고 있다는 것 하나는 확실한 것 같다.
따라서 짚어봐야 할 건 법리보다는 그들이 갖고 있는 분노의 실체다. 그리고 그걸 수사하겠다고 밝힌 검찰과 “용납할 수 없는 행위”란 논평을 낸 한나라당이다. 대체 이들을 화나게 한 건 뭘까. 답이 떠오르는 대신 입맛만 씁쓸하다. 이 사회가 뒤로 질주하고 있다는 것 하나는 확실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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