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여적

[여적] 죄와 벌 천재작가 도스토예프스키의 은 심오한 소설이지만 주제의식을 단순화하면 인과응보(因果應報)요, 사필귀정(事必歸正)이다. 주인공 라스콜리니코프는 작가만큼이나 병적, 정신분열적 인간이다. 이름 자체에 ‘분열하다’란 뜻이 숨어 있다. 이 가난한 대학생 무신론자는 골방에서 선과 악에 대한 나름의 논리를 정립한다. “선택된 강자는 인류를 위해 도덕률을 넘어설 권리가 있다. 따라서 이 사회의 기생충에 불과한 저 전당포 노파를 죽여도 된다.” 그는 이 생각을 용감하게 실천했지만 그를 기다린 건 뜻밖에도 극심한 죄의식이었다. 소설이 말하려 한 게 ‘누구든 죄를 지으면 벌을 받아야 한다’ 또는 ‘죄 짓고는 못 산다’인지도 모르겠다. 인양된 천안함 선체. 처참하다. 소설 아닌 현실에서도 우리는 자주 죄와 벌을 말하고 법치를 .. 더보기
[여적] ‘몸통·깃털 사건’의 공식 2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민간인 불법사찰과 증거인멸을 지시한 의혹을 받고 있는 이영호 전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이 엊그제 “(지원관실 컴퓨터에 보관된) 자료 삭제에 관한 모든 문제는 바로 내가 몸통”이라며 “모든 책임을 지겠다”고 밝혔다. 증거인멸 지시를 폭로한 장진수 전 윤리지원관실 주무관은 이 말을 듣고 “소가 웃을 일”이라고 말했다. 우리말엔 ‘지나가는 소가 웃을 일’이란 표현이 있는데, 웬만한 일에는 꿈쩍도 않고 묵묵한 소가 듣고 웃을 정도로 어이가 없다는 뜻이다. 왜 그는 이런 반응을 보였을까. 이영호 전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이 20일 프레스센터에서 청와대 민간인 불법사찰 의혹에 대해 자신이 이 사건의 '몸통'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김영민 기자 다른 건 둘째치고 몸통을 자처하는 기자회견치곤 내.. 더보기
[여적] 파업과 보복 노조가 근로조건 개선을 요구하며 파업을 한다. 사측은 이에 맞서 손해배상 소송과 함께 가압류 신청을 한다. 가압류는 원래 돈 받을 게 있는데 채무자가 돈을 주지 않을 때 채권자가 취하는 조치다. 가압류가 결정되면 월급은 물론 부동산 등 재산을 사용할 수 없다. 노동자 개인에 대한 압박강도가 매우 크다. 회사 측은 노조를 파괴하거나 파업을 깨뜨리기 위해 손배소와 동시에 가압류를 신청한다. 실제로 2003년 1월 두산중공업 노동자 배달호씨가 손해배상·가압류의 부담을 이기지 못하고 분신자살했다. 배씨가 숨진 후 월급통장을 보니 한 달 월급으로 2만5000원이 들어와 있었다고 한다. 이런 일이 이어지자 노·사·정은 생존권을 말살하는 가압류를 자제하자는 합의에 이르기도 했다. MBC가 파업 중인 노조와 집행부 1.. 더보기
[여적] 프랑스 의사와 카뮈의 ‘페스트’ 프랑스인 외과의사가 시리아 반정부군 거점지역인 홈스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죽어가는 사람들을 치료하다 탈출한 사연이 뉴욕타임스에 엊그제 소개됐다. ‘국경없는 의사회’ 창립회원인 자크 베레는 지난달 홈스의 격전지 인근에 임시병원을 차려놓고 부상자들을 치료했다. 서방 의사로는 처음 홈스에 들어간 그는 2주밖에 머물 수 없었지만 무려 89명에게 수술을 했다. 그러나 생존자는 겨우 9명에 불과했다. 어떤 사람은 철철 흐르는 피를 간신히 지혈하는 수술이 끝난 지 3시간 만에 퇴원해야 했다. 수술대는 1개, 침대는 3개밖에 없었던 것이다. 신문은 그가 ‘안락한 파리 생활’을 떠나 의료장비 가방만 들고 홈스에 잠입한 과정을 자세히 전했지만 왜 이런 일을 하는지에 대해서는 별 설명이 없다. 다만 71살이나 되는 그가 40.. 더보기
[여적] 비례대표 후보 박노자 왜 정치를 하려고들 하나. 선거의 해에 던져봄직한 질문이다. 정답은 없다고 본다. 물론 모범답안은 있다. 부국강병, 사회정의 구현, 행복한 사회 건설 같은 것이겠지만 너무 구태의연하다. 정치 지망자 가운데는 권력을 누리기 위해서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렇게 솔직했다간 100% 떨어진다. 그보단 어떤 사람이 정치를 할 수 있는가가 더 의미있는 질문이다. 막스 베버는 책 에서 정치인이 갖추어야 할 세가지 자질로 열정, 책임감, 균형적 판단을 들었다. 이 정치 지망자 대열에 박노자 오슬로 대학 교수(39)가 합류했다. 4월 총선에 진보신당 비례대표 후보로 출마하게 된 것이다. 홍세화 진보신당 대표는 박 교수가 “한국사회의 순혈주의 안에서 다문화의 상징이자 국제주의적 연대를 표상하는 인물”이라고 말했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