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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여적] 파업과 보복


노조가 근로조건 개선을 요구하며 파업을 한다. 사측은 이에 맞서 손해배상 소송과 함께 가압류 신청을 한다. 가압류는 원래 돈 받을 게 있는데 채무자가 돈을 주지 않을 때 채권자가 취하는 조치다. 가압류가 결정되면 월급은 물론 부동산 등 재산을 사용할 수 없다. 노동자 개인에 대한 압박강도가 매우 크다. 회사 측은 노조를 파괴하거나 파업을 깨뜨리기 위해 손배소와 동시에 가압류를 신청한다. 실제로 2003년 1월 두산중공업 노동자 배달호씨가 손해배상·가압류의 부담을 이기지 못하고 분신자살했다. 배씨가 숨진 후 월급통장을 보니 한 달 월급으로 2만5000원이 들어와 있었다고 한다. 이런 일이 이어지자 노·사·정은 생존권을 말살하는 가압류를 자제하자는 합의에 이르기도 했다.

MBC가 파업 중인 노조와 집행부 16명 전원을 상대로 신청한 가압류 내용이 공개됐다. 노조엔 22억5000만원, 집행부 개인의 동산과 부동산에 대해서는 11억2900만원이다. MBC 노조는 파업에 대한 손배소도 한국언론 사상 처음이지만 가압류 신청 역시 전무후무한 일이라고 밝혔다. 2008년 YTN 노조가 300일 넘는 파업을 할 때도 회사 측이 노조원들에 대해 가압류를 신청하진 않았다.


<서울 여의도 공원에서 16일 열린 MBC·KBS·YTN 등 3개 방송사 공동파업 콘서트에 참가한 수만명의 시민들이 비를 맞으며 공연을 보고 있다.    김정근 기자>


공영방송사에서 일반 사업장도 자제한다는 가압류 신청까지 취해졌다 함은 MBC 김재철 사장의 결기가 어느 정도인지를 웅변한다. 그것은 자리 유지와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 그는 방송문화진흥회에 출석한 자리에서 “(사장 자리를) 지키는 것이 명예”란 점을 분명히 한 바 있다. 총파업에 책임을 지고 사퇴할 의사가 없냐는 질문에 그렇게 답했다. 회사 임원회에선 “관에 들어가지 않는 한 물러나지 않겠다”고도 했다.

새삼 궁금해지는 건 그 단호한 결의의 정체다. 그의 방송관은 무엇이고 불타는 사명감의 원동력은 또 뭔가. 노조가 낙하산 사장 물러나라는데 기분은 나쁠 것이다. 그건 이해한다. 문제는 공정방송을 하고 싶다는 후배들의 열망을 이렇게 짓밟으면서까지, 회사 전 부문에서 공채를 없애고 계약직으로 전환해서라도 지키겠다는 게 대체 무엇인가다. 공정방송이 아닌 건 분명한데, 알 수가 없다. 언젠가 시사 프로그램을 폐지하며 “시청률부터 올리고 난 뒤 공영성을 생각해야 한다”고 했다는데 그건가. 아니면 “노조가 권력화된 MBC 문화를 바꾸겠다”는 말을 실천한다는 것이 이런 식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