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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여적] 죄와 벌

천재작가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Преступление и наказание, 1866>은 심오한 소설이지만 주제의식을 단순화하면 인과응보(因果應報)요, 사필귀정(事必歸正)이다.

주인공 라스콜리니코프는 작가만큼이나 병적, 정신분열적 인간이다. 이름 자체에 ‘분열하다’란 뜻이 숨어 있다. 이 가난한 대학생 무신론자는 골방에서 선과 악에 대한 나름의 논리를 정립한다.

“선택된 강자는 인류를 위해 도덕률을 넘어설 권리가 있다. 따라서 이 사회의 기생충에 불과한 저 전당포 노파를 죽여도 된다.” 그는 이 생각을 용감하게 실천했지만 그를 기다린 건 뜻밖에도 극심한 죄의식이었다. 소설이 말하려 한 게 ‘누구든 죄를 지으면 벌을 받아야 한다’ 또는 ‘죄 짓고는 못 산다’인지도 모르겠다.

#인양된 천안함 선체. 처참하다.

소설 아닌 현실에서도 우리는 자주 죄와 벌을 말하고 법치를 입에 올린다. 특히 지도층이나 권력의 곁불이라도 쬐는 사람들이 이런 말을 강조하는 듯하다. 추상같은 법치주의가 ‘구현’된 예로 3년 전 발생한 용산참사가 있다.

용산참사는 불법적인 점거농성 때문에 일어났다. 이 사건으로 구속된 5명의 혐의는 특수공무집행방해 치사, 건조물 침입, 업무방해 등이었다. 그러나 그게 죽을 죄는 아니었다. 경찰 특공대가 무모한 작전을 펴는 바람에 철거민 5명과 경찰 1명이 불에 타 숨졌다. 법치의 이름으로 자행된 이 사건에서 죄와 벌 사이의 형평성 같은 건 찾을 수 없었다.


이는 엄정한 법치 수행 과정에서 일어난 예기치 않은 불상사였나. 법은 만인에게 공평한가. 아닌 것 같다.
어제 천안함 사건 2주기를 맞아 군 지휘계통에 대한 징계 처리 결과를 보니 제대로 책임진 사람이 하나도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고 한다. 감사원은 장성 13명을 포함해 25명을 징계하라고 통보했으나 국방부는 6명만 징계했다.
그 중 해군 2함대 사령관만 정직 3개월로 유일하게 중징계를 받은 뒤 복무 중이고 징계를 받은 장성 3명도 문제 없이 군을 마치거나 진급도 했다고 한다. 군 검찰은 당시 4명을 군형법상 전투준비 태만과 허위 보고 혐의로 입건했으나 최종적으로 기소된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군형법에는 “지휘관으로서 그 임무를 수행함에 있어 적과의 교전이 예측되는 경우에 전투준비를 태만히 한 자는 무기 또는 1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35조 1항) 등 처벌 조항이 있다. 뒷수습을 이렇게 엉성하게 해놓고 “천안함을 기억하라”는 건 앞뒤가 안 맞는다는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