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며칠 사이 북한에선 김정은에 대한 3대 세습절차가 마무리됐다. 그가 노동당 대표자회에서 제1비서로 추대된 데 이어, 최고인민회의에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으로 추대된 것이다. 이에 따라 김정은의 ‘명함’엔 지난해 말 김정일 장례 후 얻은 최고사령관, 당 제1비서, 국방위 제1위원장, 당 중앙군사위원장 등 당·정·군의 최고 직위가 모두 실리게 됐다. 눈길을 끄는 것은 ‘영원한’이란 수식어가 붙은 직함의 등장이다. 김정은의 아버지 김정일에게 ‘영원한 총비서’와 ‘영원한 국방위원장’이란 공식 직함이 부여된 것이다. 김정은은 아버지를 위해 ‘영원한’ 최고위직 타이틀 2개를 비워두는 대신 1자가 붙은 새 직위를 받은 셈이다.
김일성은 '영원한 주석'으로, 김정일은 ‘영원한 총비서’와 ‘영원한 국방위원장’으로 공식 추대돼 있다.
이건 참 특이하다. 이를 두고 김정은이 아직 확실한 지도력을 인정받지 못한 탓이라는 해석도 있다지만, ‘영원한 무엇’이란 직함은 일반 국가에선 좀처럼 보기 힘든 게 아닐 수 없다. 북한에는 선례가 있긴 하다. 1997년 김정일이 당 총비서에 추대되면서 김일성 주석이 ‘영원한 주석’으로 추대됐고 국가주석제는 폐지됐다. 이는 프로야구 등 스포츠 세계의 영구결번을 연상시키는 구석도 있다. 영구결번은 은퇴한 단체경기 유명 선수의 등번호를 영구히 사용하지 않는 관습이다. 최근에는 은퇴한 프로야구 기아 타이거즈의 이종범이 등번호 7번을 영구결번으로 받았다. 이런 영구결번은 크나큰 영예다.
새삼스러운 얘기지만 인간은 영원한 것을 추구한다. 유한한 존재이기에 더 그렇다. 따라서 북한이 떠받드는 ‘위대한 지도자’들에게 ‘영원한’이란 이름이 붙은 직함을 부여하건, 어떤 자리를 영구결번으로 남겨 놓건 뭐랄 수는 없는 일이라고 본다. 구원의 가치를 추구하는 것에 좌우 구분이 있을 수 없다. 다만 이런 의문은 고개를 든다. 북한이 좌파적 가치를 좇는 국가가 아니란 증거는 기왕에도 많았지만 이번 것도 추가적 사례가 아닌가 하는 것이다.
어느 편이냐 하면 북한 지도부는 다분히 우파적 가치를 따르는 것 같다. 북한의 목하 강성대국, 선군정치 구호는 사실 국가주의와 민족주의 등 보수우익적 정치사상을 닮았다. 주체사상은 “인민대중은 당과 수령의 올바른 영도를 받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 또한 우파적 가치인 가부장주의를 연상시킨다. 이들이 영원을 갈구하는 듯한 모습이 낯설고 또 안쓰러운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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