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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여적] 국민 무시 데자뷰

미국에서 6년 만에 광우병 소가 발견됐다. 심각한 사태이긴 하지만 어쩌겠는가. 광우병 통제체제가 허술한 미국에서는 언제라도 터질 일이 터진 셈이다. 문제는 그 다음 우리나라에서 벌어진 일이다. 정부는 “미국에서 광우병이 발견되면 즉각 (쇠고기) 수입을 중단하겠다”고 약속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가 범국민적 촛불시위로 번지던 2008년 5월8일 일간지에 광고를 그렇게 냈다. 국민들은 당연히 정부가 이 약속을 지킬 것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4년 만에 ‘실제상황’이 발생하자 정부는 말을 바꿨다. 즉각 수입 중단은커녕 검역 중단조차 이뤄지지 않았다. 대신 검역 강화를 하겠다고 한다. 수입위생조건이 어떻다느니 핑계만 잔뜩 늘어놓을 뿐이다. 수입조건을 보면 수입 중단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는 것이다. 캐나다와의 협약에는 명시적 조항이 있는데, 한·미 간에는 그게 없어서 곧바로 수입 금지가 안된다고 했다. 이상하다. 그럴 거면 국민을 향해 철석같은 약속은 왜 했을까. 구체적 내용이 없다는 건 도리어 우리가 수입 중단 사유를 포괄적으로 해석할 여지가 생긴 것 아닌가.

 

 

 

 

미국에서 광우병 소가 발견됐으나 정부는 즉각 쇠고기 수입을 중단하겠다던 당초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있다. 반면 일부 마트 등은 자발적으로  미국산 쇠고기 판매를 중단키로 했다.

 


 

 

그게 아니라고 한다. 우희종 서울대 교수는 우리에게 수입을 중지할 권리가 전혀 없음에도 있는 것처럼 국민을 속이고 있다고 설명한다. 수입하는 측에서 위험성을 입증해야 하는데 한국은 광우병 발생 시 현지조사 등 그럴 권리를 다 포기했다. 이쯤 되면 말바꾸기 정도가 아니라 먹는 것 가지고 벌인 대국민 사기라고 봐야 한다.

이 정권은 촛불시위 때 겉으론 후회니 반성이니 했어도 속마음은 그게 절대 아니었다. 이명박 대통령이 이태 후 “촛불을 반성하는 이가 없다”고 돌변한 것이 증거다. 촛불이 무서우니까 일단 둘러대놓고 나중에 민간인 사찰이나 하고 약속을 어기고 한 것이 다 들통나고 있다. 안일한 자세로 광우병의 심각성을 축소하거나, 미국 입장을 두둔하는 듯한 모습은 그때나 지금이나 변한 게 없다.

역사는 반복된다는 말이 있다. 그래서 처음 본 걸 이미 본 것처럼 느끼게 되는 데자뷰를 경험하나 보다. 지금 우리가 겪는 것은 정권의 국민 무시란 데자뷰가 아닌가 한다. 마르크스는 역사가 ‘처음에는 비극적으로, 다음에는 희극적으로’ 반복된다고 했건만 이런 데자뷰는 그저 서글프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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