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트라베이스는 참 독특한 악기다. 현악기 가운데 덩치가 가장 크고 낮은 소리를 낸다. 키가 2m나 돼 오케스트라 오른쪽 가장자리에 위치하는 콘트라베이스 연주자들은 높은 의자에 앉아야 한다. 음질은 어둡고 분명치가 않지만 앙상블에서는 묵직한 하모니를 형성하는 불가결한 음원이다.
이런 판에 박힌 설명보다는 독일 작가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모노드라마 <콘트라베이스>가 이해를 돕는다. 그걸 보면 단박에 콘트라베이스의 세계에 빠져들게 된다. 쥐스킨트는 놀라울 정도로 깊은 음악적 조예를 바탕으로 이 악기에 대해 설명한다. 또 주인공을 통해 이 악기에 대한 애증의 교차 심리를 풀어놓는다. 서른다섯살 먹은 주인공은 국립 오케스트라 콘트라베이스 주자다. “지휘자는 없어도 되지만, 콘트라베이스만은 빼놓을 수 없다는 것을 음악을 하시는 분이라면 인정할 겁니다. … 오케스트라에서 콘트라베이스가 빠졌다면 어떻게 될지 상상할 수 없습니다. 제1 바이올린, 관악기, 북, 트럼펫, 그밖에 다른 악기가 갖춰지지 않은 오케스트라는 있습니다. 하지만 베이스가 없는 경우는 절대로 없습니다.”
콘트라베이스
그러나 극이 진행되면서 이런 자부심은 미움으로 변해간다. 이런 심리 변화는 20대 중반의 오페라단 소프라노 세라를 향한 짝사랑과 연결돼 있다. “콘트라베이스는 악기라기보다는 거추장스러운 물건 같은 것입니다. … 질질 끌고 다녀야만 하는데 넘어지기라도 하면 함께 나뒹굴 수밖에 없습니다. … 지난 2년 동안 단 한 명의 여자도 사귀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오로지 이 악기 때문이었습니다!” 마침내 그는 카를로 마리아 줄리니가 지휘하는 바그너 곡 ‘라인의 황금’ 연주회장의 콘트라베이스 자리에서 세라를 외쳐 부르기로 결심한다. 모노드라마는 여기서 끝난다. 슈베르트가 제2 바이올린 대신 콘트라베이스를 넣어 저음부를 강화한 피아노5중주 ‘송어’ 1악장이 흐른다.
엊그제 음대 입시생들에게 불법 레슨을 해주고 부정입학시킨 한국예술종합학교 이모 교수에 대해 구속영장이 신청됐다고 한다. 그는 학생에게 빌려준 악기를 1억8000만원에 사게 하고 합격 사례비로 8000만원을 챙기기도 했다. 내 시선을 끈 건 그가 콘트라베이스 연주자라는 사실이었다. 그가 혹시 <콘트라베이스> 주인공처럼 콘트라베이스에 대한 애증 교차 비슷한 심리를 겪고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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