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여적

[여적] 죄와 벌


천재작가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은 심오한 소설이지만 주제의식을 단순화하면 인과응보(因果應報)요, 사필귀정(事必歸正)이다. 주인공 라스콜리니코프는 작가만큼이나 병적, 정신분열적 인간이다. 이름 자체에 ‘분열하다’란 뜻이 숨어 있다. 이 가난한 대학생 무신론자는 골방에서 선과 악에 대한 나름의 논리를 정립한다. “선택된 강자는 인류를 위해 도덕률을 넘어설 권리가 있다. 따라서 이 사회의 기생충에 불과한 저 전당포 노파를 죽여도 된다.” 그는 이 생각을 용감하게 실천했지만 그를 기다린 건 뜻밖에도 극심한 죄의식이었다. 소설이 말하려 한 게 ‘누구든 죄를 지으면 벌을 받아야 한다’ 또는 ‘죄 짓고는 못 산다’인지도 모르겠다.

 

양된 천안함 선체. 처참하다.

 

소설 아닌 현실에서도 우리는 자주 죄와 벌을 말하고 법치를 입에 올린다. 특히 지도층이나 권력의 곁불이라도 쬐는 사람들이 이런 말을 강조하는 듯하다. 추상같은 법치주의가 ‘구현’된 예로 3년 전 발생한 용산참사가 있다. 용산참사는 불법적인 점거농성 때문에 일어났다. 이 사건으로 구속된 5명의 혐의는 특수공무집행방해 치사, 건조물 침입, 업무방해 등이었다. 그러나 그게 죽을 죄는 아니었다. 경찰 특공대가 무모한 작전을 펴는 바람에 철거민 5명과 경찰 1명이 불에 타 숨졌다. 법치의 이름으로 자행된 이 사건에서 죄와 벌 사이의 형평성 같은 건 찾을 수 없었다.

이는 엄정한 법치 수행 과정에서 일어난 예기치 않은 불상사였나. 법은 만인에게 공평한가. 아닌 것 같다. 어제 천안함 사건 2주기를 맞아 군 지휘계통에 대한 징계 처리 결과를 보니 제대로 책임진 사람이 하나도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고 한다. 감사원은 장성 13명을 포함해 25명을 징계하라고 통보했으나 국방부는 6명만 징계했다. 그 중 해군 2함대 사령관만 정직 3개월로 유일하게 중징계를 받은 뒤 복무 중이고 징계를 받은 장성 3명도 문제 없이 군을 마치거나 진급도 했다고 한다. 군 검찰은 당시 4명을 군형법상 전투준비 태만과 허위 보고 혐의로 입건했으나 최종적으로 기소된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군형법에는 “지휘관으로서 그 임무를 수행함에 있어 적과의 교전이 예측되는 경우에 전투준비를 태만히 한 자는 무기 또는 1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35조 1항) 등 처벌 조항이 있다. 뒷수습을 이렇게 엉성하게 해놓고 “천안함을 기억하라”는 건 앞뒤가 안 맞는다는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