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산 쇠고기 수입 중단을 촉구하는 촛불집회가 서울 청계광장에서 엊그제부터 열리고 있다. 미국에서 광우병 소가 나온 탓에 4년 만에 재개된 이 집회엔 그 때 ‘촛불소녀’로 나왔다가 어느 새 ‘촛불숙녀’로 성장한 사람도 있다고 한다. 그런데 정부의 태도는 “남들은 조용한데 왜 이리들 호들갑이냐”고 윽박지르는 것 같다.
농림수산식품부가 며칠 전 내놓은 ‘미국 광우병 발병 이후 세계 주요국 조치 동향’에 따르면 이집트, 과테말라, 인도네시아 등 세 나라가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부분적으로 중단했다. 반면 캐나다, 멕시코, 일본 등 17개 나라는 별도 조치 없이 수입을 계속하고 있다. 이걸 보면 한국 사람들이 유난히 과민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정말 그런가. 저들은 대범한데 한국인들만 유난히 의심이 많은 건가.
2일 열린 촛불집회에 참가한 김자연씨(20). 충남 계룡에 사는 그는 중학교 3년생이던 4년 전에도 아버지와 함께 왔는데 이번엔 혼자 왔다고 했다.
그게 아닌 이유를 말하겠다. 첫째, 수입되는 쇠고기가 다르다. 일본의 경우 20개월 미만만 수입된다. 머리뼈·뇌·눈은 수입금지된다. 특정위험물질(SRM)도 전면 수입금지된다. 한국은 민간자율로 한시적으로 30개월 미만이 수입되며, 30개월 이하 머리뼈·뇌·눈도 허용된다. 일본은 분쇄육 수입이 금지돼 있지만 한국은 허용된다. 단적으로 일본은 한국에 비해 이미 월등하게 정교한 안전장치를 구축해 놓고 있는 셈이다. 둘째, 이건 더 본질적인 문제인데, 다른 것도 아닌 먹거리는 문화란 관점에서 봐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에겐 먹는 것에 대한 나름의 기준이 있다. 가령 남들이 먹는 것의 안전성에 대범한 자세를 보인다고 해도 그게 우리가 따라야 할 모범이 되는 건 아니다. 게다가 가뜩이나 먹거리 안전성 문제로 시달려온 국민들을 소심하다고 탓해선 안된다.
그런데도 정부는 “안전성에 전혀 문제가 없어 수입 제한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언론은 무비판적으로 이를 전달한다. “어떤 나라도 이번 사건을 빌미로 수입중단을 하지 않는다. 우리보다 수입량이 많은 캐나다, 멕시코, 일본은 미국의 발표를 신뢰한다”고 감탄에 가까운 반응을 보인다. 이런 태도엔 남, 특히 선진국과의 비교를 통해 존재를 확인하려는 심리가 깔려 있는 듯하다. 그렇게 비교할 거면 과거 유럽의 유전자변형식품(GMO) 수입을 반대 하는 시위대가 배에까지 쳐들어가 화물을 바다에 던져버린 사례도 볼 줄 알아야 한다. 균형을 잃은 일방적 비교는 나쁜 비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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