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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여적] 드골의 그림자

올랑드와 사르코지가 격돌한 프랑스 대선이 미테랑과 드골의 대리전 양상을 보인다는 관측이 나온 바 있다. 올랑드 사회당 후보는 유세 때 두 주먹을 높이 치켜들고 약간 쉰 듯한 목소리를 내는 등 미테랑 전 대통령을 연상시키는 몸짓을 자주 해왔다. 르몽드는 올랑드가 1981년 대선 때 미테랑이 썼던 단어와 문장, 이를테면 프랑스 재건과 단합 같은 말을 자주 사용했다고 분석했다. 사르코지 대통령은 전후 프랑스 재건을 위해 국민에게 애국심을 호소했던 드골 장군처럼 자신을 경제위기를 헤쳐나갈 수 있는 위기의 지도자로 부각시키려 애써왔다.

이렇게 흘러간 지도자를 부각시켜 선거전에 이용하는 것은 흔한 일이다. 이명박 대통령도 서울시장 시절 대선을 위해 박정희 향수를 이용한다는 말을 들었다. 이에 대해 그는 “검은 안경을 꼈더니 그런 것 같다”고 받아넘겼지만 청계천 복원사업을 밀어붙인 것이나, 집권 후 경부고속도로를 예로 들면서 4대강 속도전을 강행한 것을 보면 영락없는 ‘박정희 과’인 것 같다. 이인제 의원도 1997년 대선에서 머리 스타일 등 박정희의 이미지를 많이 빌려 쓴 바 있다.

 

 

    군복을 입은 샤를 드골. 좌우파를 막론하고 프랑스 정치에는 드골주의적 전통이 짙게 배어있다.

 



그런데 이번 프랑스 대선에서 후보들의 이미지 차용을 들여다보면 역설적인 현상이 발견된다. 승리가 확실해 보이는 좌파 지도자 올랑드에게서 우파 민족주의자 드골의 면모가 언뜻 비친다는 점이다. 이건 우파 사르코지가 선거용으로 드골주의적 애국심에 호소한 것과 다른 차원의 얘기다. 가장 두드러진 것은 올랑드가 사르코지가 매달려온 긴축정책을 대폭 수정할 것이 확실하다는 점이다. 그는 당선되면 각국의 재정적자를 엄격하게 통제하는 유럽 신재정협약의 재협상에 나서겠다고 밝히고 있다. 이것은 사르코지가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함께 긴밀하게 추진해온 유로존의 긴축 흐름에서 프랑스가 이탈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점이 드골의 독자적 외교노선을 연상시킨다.

드골은 냉전 체제에서 미국이나 소련의 영향에서 벗어난 비동맹 외교정책을 썼다. 나토 군사동맹에서 탈퇴하고 마오쩌둥의 중국을 승인했다. 그는 “프랑스는 좌파도 아니고 우파도 아니다. 나는 어느 편이 아니라 바로 프랑스다”란 유명한 말을 남겼다. 이런 드골의 그림자가 오늘의 프랑스 정치에도 짙게 드리워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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