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격적인 시 한 수를 소개한다. “‘김일성 만세’/ 한국의 언론자유의 출발은 이것을/ 인정하는 데 있는데/ 이것만 인정하면 되는데/ 이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한국/ 언론의 자유라고 조지훈이란/ 시인이 우겨대니/ 나는 잠이 올 수밖에/ ‘김일성 만세’/ 한국의 언론자유의 출발은 이것을/ 인정하는 데 있는데 / 이것만 인정하면 되는데/ 이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한국/ 정치의 자유라고 장면이란 관리가 우겨대니/ 나는 잠이 깰 수밖에”
김수영의 미발표 시 ‘김일성 만세’ 전문이다. 1960년 10월6일이란 날짜가 붙은 시가 쓰여진 시점은 4월혁명 직후다. 김수영은 이 시를 써 경향신문과 동아일보에 보냈지만 빛을 못 보았다. 내용이 너무 도발적이기 때문이었을 거다. 그래서 부인 김현경씨가 보관해오다 몇 해 전에야 ‘창작과 비평’을 통해 공개됐다. 철학자 강신주는 최근 낸 김수영 비평서 <김수영을 위하여>에서 “아마 ‘김일성 만세’를 발표했다면, 그는 1968년 교통사고로 죽기 전에 권력에 의해 교살되었을 것이다”라고 썼다.
김수영은 4월혁명 직후 '김일성 만세'란 시를 썼다. 그런 말이 허용되는 것이 진정한 언론자유라는 생각을 담았다. 그러나 이 시가 쓰여진 뒤 50년이 지나도록 색깔론은 강고해 그것이 한국인의 이념적 DNA로 자리잡았다는 견해까지 나온다.
강신주는 예화를 하나 든다. 2011년 한 대학에서 인문학 강의 요청을 받은 그는 강연을 대뜸 이 시 낭독으로 시작했다. 청중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당혹스러웠기 때문이다. 시는 혁명 후 등장한 장면 정권이 이승만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자유를 부정하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한 것이었다. 민주당도 반공을 국시로 삼고 있었기 때문이다. 강신주는 청중의 반응을 보며 김수영이 시를 쓴 지 50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 내면은 달라진 게 별로 없다는 사실에 허탈해졌다고 했다. 국가보안법이 시퍼렇게 살아 있고, 북한과 김일성에 관한 얘기가 불편한 건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란 사실을 확인한 것이다.
2년 전 개성공단 업체에서 일하던 안모씨가 공단 근처 김일성 동상을 참배했다가 적발돼 재판을 받았다. 검찰은 동상 참배가 김일성 우상화 및 체제 선전에 동조하는 것으로 국가보안법 위반이라고 주장했다. 1·2심은 이 주장을 받아들였지만 대법원은 “동상 앞에서 수초간 참배했다고 해서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실질적 해악이 크지 않다”며 이 부분에 대해 무죄라고 밝혔다. 하지만 문제의 본질은 유·무죄 여부가 아닌 듯하다. 어느새 마녀사냥적 색깔론이 우리 안에 DNA처럼 내면화한 게 아니냐는 황망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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