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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여적] 박정희 기념관의 정명

지난 7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박정희기념·도서관 앞에서 시민단체 회원들이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이 만든 단체는 이름이 좀 길다. ‘박정희기념·도서관 명칭 변경과 공공성 회복을 위한 마포·은평·서대문구 시민회의’다. 이름대로 이들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이름이 들어간 기념관을 반대한다. 그것이 친일과 독재를 미화하는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따라서 주민들의 의견을 모아 공공도서관에 걸맞은, 가령 마포·상암도서관 같은 것으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다. 시민회의는 이날부터 10만인 서명운동에 들어갔다.

이들의 주장엔 일리가 있다. 박정희기념·도서관은 국고 208억원이 투입되고 서울시 토지를 무상 임차해 건립된 것인 만큼 마땅히 공공성을 갖춰야 한다. 그런데 이름에 박정희를 넣음으로써 공공성은 사라지고 오로지 박 전 대통령을 찬양, 미화하기 위한 시설이 돼버렸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그런 이름을 붙이는 것은 정명(正名)이 아니라는 뜻이다.


 

시민단체 회원들이 7일 오전 마포구 상암동 박정희기념·도서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름을 ‘시립도서관’으로 바꿀 것을 촉구하는 10만인 서명운동에 나서겠다고 밝히고 있다. 한겨레신문

 


그 옛날 공자가 말한 정명은 이 경우에도 매우 중요한 요소인 듯하다. 만약 지난 2월 개관한 기념관(1, 2층)에 이어 올여름 개관하는 도서관(2, 3층)에도 똑같은 이름이 붙는다면 이 시설은 명실상부하게 박정희를 기리는 곳이 된다. 박정희기념사업회 측은 “이곳은 국공립 도서관과 성격이 다른 박정희를 연구하는 사람들을 위한 시설”이란 입장을 밝힌 반면 서울시는 공립도서관으로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시설의 성격이 대중을 위한 도서관이냐 아니면 박정희 전문 도서관이냐가 이름에 따라 갈리게 되는 셈이다.

그렇다면 시민들 의견을 수렴하는 게 중요한데도 공청회 같은 건 한 번도 없었다고 한다. 시민들 의견은 박정희 관련 자료만 있다면 굳이 이용할 것 같지 않다는 쪽이 많지만, 박정희 전문 도서관의 개관을 반기는 사람도 더러 있다고 한다. 이건 무슨 주민투표로 결정할 일은 아닌 것 같다. 어떻게 해야 할까. 박정희는 아무리 좋게 보아도 논쟁적 인물이라는 게 필자 생각이다. 근대화에 기여한 바 크다지만 그렇다고 철권통치로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인권을 유린한 전력은 지워지지 않는다. 이는 우리가 일본에 문제삼는 과거사와 비슷한 것이다. 그걸 외면하고 끝내 박정희 기념관을 관철한다면 이 또한 과거 역주행 추가 사례가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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