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뉴스 앵커 하면 미국의 전설적 앵커 월터 크롱카이트가 떠오른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뉴스 진행자로서 최초로 앵커맨으로 불린 이가 크롱카이트다. 그가 1952년 CBS에서 민주·공화당 전당대회를 중계할 때 이 방송 프로듀서가 그를 지칭해 앵커맨이란 신조어를 사용했다고 한다. 1962년부터 CBS의 간판 뉴스 프로그램인 <이브닝뉴스> 진행을 19년 동안 맡았다. 그를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독특한 클로징 코멘트다. 뉴스를 마무리하면서 “And that’s the way it is”란 말을 즐겨 썼다. “세상일이란 다 그렇고 그런 것이다”란 뜻이다. 그는 이 말이 “자신이 본 대로 사실을 보도한다는 기자 최고의 이상을 요약한다”고 설명한 바 있다.
월터 크롱카이트(1916~2009). 공정하고 신뢰를 주는 뉴스 진행으로 '앵커의 전설'이 되었다. 우리는 그런 믿음직스럽고 인간미 넘치는 앵커를 가질 수 없을까.
뉴스 진행자란 직책에 앵커란 이름이 붙은 데는 자못 의미심장한 구석이 있다. 앵커는 닻이다. 앵커는 수많은 기사들을 전달하는 데 있어 닻의 역할을 해야 한다. 기자와 시청자 사이에서 중심을 잡고 뉴스 선택, 제작, 진행 등 전 과정에 깊숙이 관여한다. 당연히 상당한 수준의 자질과 덕목이 요구된다. 크롱카이트는 그런 것으로 정직·성실·신뢰·프로정신 4가지를 꼽았다. 이 밖에도 판단력, 언어 구사력, 순발력 등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 으뜸은 신뢰감 아닌가 한다. 청산유수 언변은 못되고 조금은 어눌하더라도 인간미가 풍기고 전하는 뉴스가 믿음직해야 한다. ‘월터 아저씨’로 불린 크롱카이트가 1968년 베트남 전선을 취재하고 돌아와 “미국이 베트남에서 수렁에 빠졌다”고 논평하자 존슨 대통령은 재선 출마를 포기했다. 반전여론이 불붙었다. 이것이 앵커의 신뢰성이요, 영향력이다.
권재홍 MBC <뉴스데스크> 앵커가 엊그제 방송에 복귀했다고 한다. “노조원들에게 신체 일부에 충격을 입었다”는 이유로 뉴스 진행을 중단한 지 12일 만이다. 지난 17일 <뉴스데스크>는 임시 앵커가 톱뉴스로 이 사실을 전하면서 노조원들이 폭력을 행사했다는 인상을 풍겼다. 노조가 사실무근이라고 항변하자 회사 측은 정신적 충격이라고 말을 바꿨다. 권 앵커도 “정신적 충격도 폭력”이라며 가세했다. 노조는 그가 사실과 객관성이 생명인 앵커 자격이 없다고 비판했다. 미국과 방송 환경, 문화 등에서 차이가 많으므로 단순 비교할 일은 아니겠으나, 한숨이 나온다. 우리에게 인간미 넘치는 앵커는 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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