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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로] 평창 올림픽이 일깨운 분단 현실 오지 여행가, 긴급구호 활동가 한비야는 '중국견문록'(2001)에서 이렇게 말한다. "외국에서 낯선 사람끼리 만나면 맨 처음 물어보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가. 이름일까? 천만에. 바로 어느 나라 사람이냐다. 국제회의에서 모르는 참가자들끼리 만날 때에도 명찰에 써 있는 국적이 이름보다 훨씬 궁금하다." 그는 국적을 알면 공통화제를 찾기 쉽다며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나를 확인시키는 첫 번째 창은 한비야가 아니라 '한국인'이었다고 밝혔다. 다양한 나라 사람들과 소통하며 살아온 그에게서 이런 얘기를 듣는 것은 다소 뜻밖이다. 그럼에도 국적이 이 글로벌 시대에도 여전히 인간 정체성을 규정하는 중대한 요소란 사실임을 깨닫게 된다. 한비야에 따르면 "내가 한국사람임을 확실히 드러내는 것이 바로 세계시민의 일원이 되는 .. 더보기
[논객닷컴]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낯선 사람을 부를 때 난감했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필자가 특파원을 지낸 러시아도 그렇다. 호칭에 적지 않은 변화를 겪었는데, 거기엔 정치·사회적 격변이 반영돼 있다. 소련 시절에는 그 방식이 아주 간단했다. 적어도 이론상 모든 인민이 평등하다는 공산주의 이념에 따라 ‘타바리시(동무)’란 호칭이 통용됐다. 최고권력자인 공산당 서기장을 부를 때도 타바리시 브레즈네프, 타바리시 안드로포프라고 하면 그만이었다. 이름을 모르는 낯선 사람은 그냥 ‘타바리시’라고 불렀다. 1991년 소련이 붕괴하면서 호칭에 혼란이 일어났다. ‘타바리시’를 대체할만한 적당한 호칭을 찾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타바리시는 군대 내에서나 명목을 유지하고 있다. 사진=스마트이미지 제공 그래서 나온 호칭이 ‘가스파진(시민)’이다. 이는 사회.. 더보기
[신문로] '대표선수'가 중요한 까닭 일본의 반응은 예상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 것이었다. 자국이 저지른 역사적 과오에 대한 일본 정부의 태도 말이다.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에 중대한 흠결이 있었다고 문재인정부가 밝히자, 일본은 아베 신조 총리, 고노 다로 외무상 등이 일제히 나서 '변경 불가'를 외치고 나섰다. 아베 총리는 "(기존 합의에서) 1㎜도 움직이지 않는다"고까지 말했다고 한다. 이런 '단호함'은 곧잘 독일과 비교된다. 그것을 입증하는 역사적 장면이 있다. 1970년 12월 7일 폴란드 바르샤바 유태인 희생자 위령탑 앞에 선 빌리 브란트 서독 총리가 헌화 중 털썩 무릎을 꿇었다. 비에 젖은 차가운 바닥에 꿇어앉은 채 묵념했다. 나치에 희생된 폴란드 유태인에게 보낸 진심어린 사죄였다. 그는 훗날 이 돌발행동에 대해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