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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신문 칼럼

[신문로] 평창 올림픽이 일깨운 분단 현실

오지 여행가, 긴급구호 활동가 한비야는 '중국견문록'(2001)에서 이렇게 말한다.

"외국에서 낯선 사람끼리 만나면 맨 처음 물어보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가. 이름일까? 천만에. 바로 어느 나라 사람이냐다. 국제회의에서 모르는 참가자들끼리 만날 때에도 명찰에 써 있는 국적이 이름보다 훨씬 궁금하다."

그는 국적을 알면 공통화제를 찾기 쉽다며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나를 확인시키는 첫 번째 창은 한비야가 아니라 '한국인'이었다고 밝혔다.

다양한 나라 사람들과 소통하며 살아온 그에게서 이런 얘기를 듣는 것은 다소 뜻밖이다. 그럼에도 국적이 이 글로벌 시대에도 여전히 인간 정체성을 규정하는 중대한 요소란 사실임을 깨닫게 된다. 한비야에 따르면 "내가 한국사람임을 확실히 드러내는 것이 바로 세계시민의 일원이 되는 지름길"이라는 것이다.

필자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 모스크바 특파원으로 있을 때 "까레야(한국)에서 왔다"고 밝히면 이어지는 질문은 대개 "유즈나야(남한)냐, 세베르나야(북한)냐"였다. 우선 궁금해 한 건 남·북한 중 어디에서 왔냐는 거였다.

나도 개인의 이익보다 국가의 이익이 우선이라고 생각하는 국가주의자는 아니다. 그러나 가끔은 그런 정서가 고개를 드는 때가 있다. 바로 지금이 그렇다. 평창 동계올림픽 때문이다. 

 

평창 동계올림픽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단일팀과 일본의 경기가 14일 오후 강릉 관동하키센터에서 열렸다. 단일팀의 첫골. /스포츠조선

 

세계 92개 나라에서 3000명에 가까운 선수들이 혼신의 힘을 쏟고 있다. 이를 관전하는 태도는 두 종류다. 첫째는 전문가적 식견을 갖고 선수 개개인에 대한 분석까지 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소수다. 나머지 대부분은 어느 선수나 팀을 응원할 때 최우선적으로 국적을 고려한다. 어느 나라 선수인가부터 본다.

국적이 개인 이름보다 훨씬 중요해

다른 측면에서도 국적은 중요하다. 개최국이 어디냐라는 문제다. 평창이 세번째 도전 끝에 어렵사리 올림픽 유치에 성공했다는 것을 말하는 게 아니다.

이 올림픽이 바로 분단국가에서 열리는 것이란 사실을 다시 한 번 상기시키고 싶어서다. 한국은 사실상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다.(현재 분단국가로는 중국과 대만, 키프로스와 북키프로스도 있으나 첨예한 대립 상황은 우리에 비할 바가 못 된다.)

우리는 이미 1988년 서울 올림픽을 경험했고, 남북 분단도 올해로 70년째라 분단 현실에 대해 만성이 돼 있는 듯하다. 그러나 개최국 코리아가 다른 나라와 구별되는 중대한 요소는 이것이다. 분단국가라는 사실·상황은 기억하든 말든 우리를 옥죄고 있는 숙명이며 우리만의 '정체성'이다.

당연하게도 이 올림픽은 분단 상황을 타개하는 데 일말의 보탬이라도 돼야 한다. 서울 올림픽 때도 남북 단일팀 구성 등을 논의하기 위해 남북체육회담이 열렸지만 입장 차를 좁히지 못해 결국 북한은 올림픽에 불참했다.

이번에도 불과 한두 달 전까지만 해도 세계는 평창 올림픽의 안전을 걱정했다. 북한의 참가와 남북 단일팀 구성은 불가능한 상상이었다. 그러나 '평화 올림픽'을 위한 여건은 일사천리로 조성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를 "염려는 사라졌고 상상은 현실이 됐다"고 표현했다.

그러나 지나친 낙관은 오히려 해롭다. 천리길도 한걸음부터라고 했다.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너는 태도가 필요하다. 문 대통령도 그런 것 같다. 그는 "(평창 올림픽을 계기로) 남북정상회담에 대해 많은 기대를 하지만 마음이 급한 것 같다"며 "우리 속담으로 하면 우물가에서 숭늉 찾는 격"이라고 말했다. 며칠 전 평창 메인 프레스센터를 방문해 내·외신 취재진과 약식 간담회를 한 자리에서다.

분단상황 타개에 보탬이 될 수 있도록

평창 올림픽은 우리가 분단국가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절실하게 인식하게 되는 계기가 됐다. 만약 아직 아니라면 그런 계기가 되면 좋겠다. 하지만 야당들은 그런 자세와는 거리가 먼 것 같다. 한국당 장제원 수석대변인은 "북핵 폐기가 전제되지 않은 그 어떤 대화도 이적행위"라고 했고, 국민의당 신용현 수석대변인은 "비핵화를 전제로 한 남북정상회담만 가능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평창 올림픽을 민족 화합의 무대로, 전쟁 위협을 줄이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국제사회의 인식과는 동떨어진, 대북 적대에 몰입해 있는 일부 기득권 세력의 고집이랄까.

2018-02-19 11:43:56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