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주의 예산 반대.' 지난 6일 심야에 새해 예산안에 반대하며 자유한국당이 국회에 내건 손팻말 시위 문구다. '밀실야합 예산'이란 구호도 등장했지만 그 '약발'은 역시 불그죽죽한 사회주의 딱지를 붙이는 것만 못하다고 주최측은 판단했음직하다.
이어 열린 한국당 최고위원회의에서 홍준표 대표도 "통과된 사회주의식 예산은 앞으로 대한민국 경제에 아주 나쁜 선례를 남기게 되고, 일자리나 경제 성장이나 국민복지에 어려운 환경을 초래할 것"이라고 말했다. 예산안이 뭐가 문제였기에 이 당은 '사회주의 예산'이란 낙인을 찍은 걸까?
별 게 아니다. 아동수당 도입과 기초노령연금 인상 등을 대표 사례로 지목했다고 한다. 이상한 일이다. 이 예산들은 여야 협상 과정에서 한국당도 내년 9월부터 지급키로 합의했던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당이 6월 지방선거에 악용될 거라고 우려해 시행이 늦춰졌을 뿐이다. 논란이 됐던 공무원 증원건도 그렇다.
여야는 인력 충원이 시급했던 소방관, 경찰, 사회복지사, 집배원 등 민생 공무원을 9475명 늘리는 것으로 합의했다. 일반 행정직은 증원 대상이 아니었다. 그러나 제1 야당인 한국당은 '퍼주기 예산'이라며 반대했다.
5일 국회에서 2018년도 예산에 대한 표결이 진행되자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밀실야합 예산', '사회주의 예산 반대' 손피켓을 들어 보이며 항의하고 있다. /아이뉴스
야당이 정부 예산안에 반대하는 것은 항용 있기 마련이다. 단, 이치를 따져 판단한다는 조건 아래서다.
가령 정부 여당이 내년 지방선거에서의 유·불리만 따져 아동수당 도입 등을 하려 했다면 그것은 준엄히 비판할 일이다.
그러나 앞뒤 안 가리고 '사회주의 예산'이라며 색깔론을 들고 나오는 것은 터무니없다. 이른바 논리적 정합성(整合性)은 진보·보수 사이 논쟁 이전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설마 한국당 의원들이 그런 사정을 모르고 이러는 것은 아닐 거라고 본다.
여야합의한 아동수당이 사회주의예산?
예를 들어, 홍준표 대표는 한나라당 의원 시절인 2010년 6·2 지방선거 수도권 선대위원장으로서 이런 말을 했다.
"좌파라고 하니까 나쁜 것으로 아는데 좌파가 나쁜 것 아니에요. 유럽 좌파 정권인 사람들이 다 나쁜 사람입니까? 아닙니다. 정책 노선의 차이일 뿐입니다."
지극히 상식적이고 이성적인 말이었다. 그러나 여기서 끝나지 않은 게 문제다. 이듬해 당 대표가 된 그는 정반대로 돌아선다. 서울시장 선거 전날인 10월 25일 무지막지한 '색깔론' 공세를 편다.
그는 야권단일 후보인 박원순 후보가 당선될 경우 "광화문 광장이 반미집회 아지트가 될 것"이며 "휴전선(으로부터) 30㎞ 떨어진 서울 안보가 무너지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과 박원순이 "서로 말하진 않지만 뜻이 통하기 때문에 그런 것 아닐까"라고까지 했다.
이처럼 멀쩡하다가도 갑자기 색깔론으로 돌아서는 경우가 도리어 '확신범'보다 위험할 수 있다. 그런 사람일수록 시류에 영합하며 자신의 정치적 이해와 당리당략을 최우선 가치로 생각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한국 정치와 선거에서 색깔론은 무시 못할 위력을 발휘해온 것이 사실이다. 그 위력이 현저히 수그러든 것은 지난해 4·13 총선이 기점이었다. 색깔론이 한물 간 것이다.
그 원인이야 여러 가지겠지만, 뭉뚱그려 말하면 시대정신이 변화한 탓이라고 본다. 다수 국민들은 더 이상 호들갑스런 색깔론에 넘어가지 않는다. 그게 견강부회임을 유권자들이 먼저 알아채기 때문이다.
상대방 '빨갱이'로 몰았던 달콤한 추억
그럼에도 한국의 우파 정당·세력이 중요한 시점마다 이미 먼지 쌓인 색깔론을 꺼내드는 것은 어째서일까?
습관 버릇 탓으로 설명할 수밖에 없다. 지난 수십년 동안 색깔론 장사의 혜택을 누리면서 의존 습관이 거의 병적으로 깊어진 탓이다. "당신 빨갱이지?"란 질문 한마디로 상대방을 무력하게 만들었던, 일종의 달콤한 추억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습관적으로 색깔론에 의존하는 것은 게으르다는 것을 의미한다.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는 세상의 이치가 말해주듯 건강하고 강력한 보수세력·정당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려면 보수의 가치 재정립과 새로운 비전 제시가 필수적인데 한국당에게 이걸 기대하기는 쉽지 않은 것 같다. 옛적부터 전가의 보도처럼 휘둘러온 색깔론 의존증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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