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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신문 칼럼

[신문로] 신분사회를 유지하는 길, 학벌주의

문재인정권이 들어선 뒤 많은 것이 바뀌고 있다. 물론 한반도 문제 같은 경우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나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충동적인 기질로 인한 불안 요인도 상존한다. 하지만 정권이 교체된 지 이제 계절이 두번 바뀌었을 뿐이다. 한반도를 둘러싼 현재의 교착상태가 앞으로 잘 풀리기를 기대한다. 우리가 기대한 방향으로든 아니든 말이다.

이 칼럼에서는 이와는 다른 문제를 제기하고 싶다. 관점에 따라서는 구태의연한 문제일 수도 있다. 그것은 청년실업 문제, 특히 공공기관과 준(準)공기업들에서 최근 불거진 채용비리 문제다. 며칠 전 문재인 대통령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다시 이 문제를 끄집어냈다. 그는 "일부 공공기관에서 드러난 채용비리를 보면 어쩌다가 발생하는 예외적인 사건이 아니라 일상화된 비리가 아닌지 의심이 될 정도"라며 "전체 공공기관에 대한 전수조사를 해서라도 진상을 철저히 규명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있는 듯하다. 공기업·공공기관 채용비리가 터진 건 청년 실업체감률이 21.5%로 관련 통계 집계 후 최고 수준인 와중이었다. 해당기업은 강원랜드 한국서부발전 대한석탄공사 우리은행 수서고속철도 등이다. 강원랜드는 2년 전 내부 감사에서 신입사원 518명의 95%를 부정청탁을 받아 채용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당시 검찰은 전직 사장과 인사팀장을 불구속 기소하는 선에서 사건을 마무리한 사실이 드러났다.

 

 

 서울대학교 정문

 

 

우리은행은 지난해 신입사원 공채에서 국가정보원과 금융감독원 임직원 및 VIP 고객 등의 자녀와 친인척 16명을 특혜 채용한 의혹을 받고 있다. 청년실업이 심각한 상황에서 공공기관 등의 이 같은 '뒷문 채용' 소식은 수많은 취업 준비생들에게 큰 좌절감을 안겨주었을 것이다.

취준생 좌절감 안겨준 '채용비리'

그러나 대통령이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했다는 것은 사태 해결의 출발일 뿐이다. 넘어야 할 수많은 고비가 있다. 먼저 생각해 봐야 할 것은 부패에 대한 후리 우리 사회의 인식이다. 한국사회가 부패 문제를 얼마나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느냐다. 문 대통령이 "공기업 채용비리가 일상화된 비리가 아닌가 의심한다"고 말한 것도 이 점을 염두에 둔 것 아닌가 한다.

이 문제에 대해서 속 시원한 답변은 못하겠다. 다만 관련성 있는 기사를 발견할 수 있다. 얼마 전 나간 경향신문 창간 기획이다. '지금, 행복하십니까?'란 제목의 이 기사에 따르면 한국인은 경제성장만큼 행복을 못 누리며 살고 있다. 청렴도·공동체의식·자유도가 낮은 탓으로 분석됐다.

'부모 직업 보며 학생 뽑는 대학들'이란 기사도 눈길을 끌었다. 서울대·연세대 등 11개 주요 대학이 학생부종합전형(학종) 심사에서 학부모 직업을 그대로 노출해 평가자들이 알 수 있게 했다는 것이다. 서울대는 1차 서류전형에서 지원자가 어느 고등학교 출신인지 블라인드 처리하지 않았다. 고등학교들이 외고·특목고·자사고 위주로 서열화된 현실에서 지원자들의 출신고교를 알 수 있게 한 것이다.

7년 전 신문사 논설위원으로 있을 때 '학벌이란 노비문서'란 다소 과격한 제목으로 칼럼을 쓴 적이 있다. 이런 대목이 있다.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옛날 노비문서 또는 공명첩(空名帖) 구실을 하는 것이 대학 졸업장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좋은 대학 졸업장을 따기 위해 어려서부터 안간힘을 써야 한다. 안 그러면 평생 낙오자란 인식이 넓게 퍼져 있다. 좋은 졸업장이 좋은 직장을 보장한다고 믿는다. 이게 내 대에서 끝나는 문제도 아니다. 개천에서 용 난다는 건 옛말이다. 부와 학력의 대물림 현상이 갈수록 뚜렷하다. 이만큼 확실하게 한국이 전근대적 신분사회에 머물러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도 없다."

'부모 직업' 보며 학생 선발하는 대학들

그때와 비교해 학벌주의는 완화됐을까. 그새 입시제도가 다소 바뀌었지만 그런 것 같지 않다. 뿐더러 앞으로도 학벌주의를 깨기란 어려울 것 같다. 7년 전 칼럼에서 그 근거에 대해 이렇게 썼다. "학벌주의가 더욱 강고하게 사회를, 젊은이들을 옭아맬 것임을 예감하기 때문이다. 학벌주의로 기득권을 차지한 자들이 수월성이니 뭐니 말을 늘어놓지만 그것은 결국 기득권 유지 장치 강화와 차별을 위한 궁리임을 알기 때문이다."  2017-10-25 11:19:33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