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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신문 칼럼

[신문로] 북핵, 제재 강화 말고는 해법 없나

초등학교 때 책상 위에 금을 그어 놓고 옆 짝과 티격태격한 기억이 있다. "이 금 넘으면 혼 날 줄 알아." 그래놓고 연필이 금을 넘어오면 '내 거'라고 우기기도 했다.

북한이 핵실험을 하자 다시 '레드라인' 논란이 불거졌다. 북한이 마침내 레드라인을 넘었으므로 대북정책을 강경 기조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 많다. 이런 상황에서 문득 떠오른 게 책상에 금 긋기이다. 국가적 중대 사태를 희화화한다거나 안보불감증이라고 개탄하지는 말기 바란다. 국가 행태도 개인 행태와 비슷할 때가 있다. 정치·사회 분석에 종종 사용되는 게임이론이나 '죄수의 딜레마' 이론도 개인 심리 분석이 바탕에 깔려 있다.

레드라인과 책상에 금 긋기가 닮은 것은 그 으름장이라는 측면이다. 레드라인을 넘으면 즉각 강경 조치를 취하겠다는 것이나, 금을 넘어오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것이나 협박인 점은 같다. 그러나 이번 경우 닮은 건 여기까지다. 북한이 '금'을 넘은 것 같아 보이자 정부는 신중 모드다.

 

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9월3일 6차 핵실험 실시에 앞서 핵무기연구소를 방문, 이번에 실험했다는 수소탄 모형을 살펴보고 있다. 연합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북한 스스로도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완성단계 진입을 위해 핵실험을 했다고 표현한 것을 보면 아직도 가야 할 길은 남아 있다"고 말한다. 마치 셋까지만 세겠다면서 '하나, 둘, 둘반…' 하는 것 같다.

이것이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 딜레마다. 문 대통령은 지난 광복절 "한반도에서 다시 전쟁은 안 된다"고 천명한 상태다. 정부는 북한과 대화를 통해 모든 문제를 해결한다는 원칙을 버리지 않고 있다. 그런데 레드라인을 넘어섰다고 판단한다면 대화 노력을 포기하고 강경책을 선택해야 할 차례다.

한미 미사일지침 개정 합의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수도 없다. 문 대통령은 북한 핵실험 직후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소집해 "국제사회와 함께 강력한 응징 방안을 강구하라"고 지시했다. 군은 북한 풍계리 핵실험장을 가상 목표로 미사일 발사훈련을 실시했다. 미군도 대북 응징 무력시위에 동참할 예정이다. 한국과 미국은 한국 미사일 탄두 중량과 사거리 제한을 해제하도록 38년 만에 미사일지침을 개정키로 했다.

부산하고 긴박한 대응들이다. 하지만 이를 보면서 감정이 착잡한 것은 필자만이 아닐 것이다. 후련한 것과는 거리가 먼 무력감·공허함이다. 그렇게 해도 김정은과 북한이 바뀔 것 같지 않다는 예감 때문이다.

유엔 대북 제재결의는 지금까지 5개 이상 시행됐다. 그럼에도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은 계속 고도화됐다. 트럼프 미국 정부 출범 뒤 북한은 13차례나 미사일을 발사했다. 미사일 탄두의 소형화, 경량화, 다종화를 이룬 다음 사거리를 늘리는 일에 열중하고 있다. 조만간 완성된 ICBM 발사나 7차 핵실험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

이 무력감과 불안감을 해소할 방안은 없을까? 우리도 핵무장을 하거나 미국 전술핵을 다시 도입하는 방안이 있다. 손쉽고 명쾌해 보이지만 비현실적이다. 핵보유가 전쟁을 막아주는 보장이 되지 못하며, 과정상 난점도 크다. 그렇다면 이 시점에서 숙고할 필요가 있는 것은 중국과 러시아가 꾸준히 제시하고 있는 '쌍중단' 방안이다. 한·미 연합군사훈련과 북한 핵·미사일 실험을 동시 중단하자는 것이다.

정책 프레임 바꾸는 고민도 해봐야

중국과 러시아는 북한이 핵에 관한 한 요지부동이라고 관측한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며칠 전 브릭스 정상회의에서 이렇게 말했다. "(대북) 제재 체제는 이미 한계선에 도달했다. 북한은 안전하다고 느끼지 못하면 풀을 먹으면서도 핵 프로그램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중국도 북한이 핵개발을 하는 것은 자국 안보 우려 때문이라고 본다.

북한은 2015년 초 '쌍중단'과 비슷한 제안을 했지만 미국은 이를 즉각 거절했다. 북한에 대해 쌓인 불신 때문이다. 이번에도 니키 헤일리 유엔주재 미국 대사는 중·러의 쌍중단 제안에 대해 "모욕적"이라고 일축했다.

안보 위기 상황에서는 핵무장론 같은 강경론이 힘을 얻는 반면 온건론은 유약해 보인다. 그러나 인기를 얻기 어려운 정책일지라도 옳다고 판단하면 뚝심 있게 밀고 나가야 한다. 이번에도 그렇다. 제재와 압박의 수위를 높이는 것만으로 한계가 분명하다면 정책 프레임을 바꾸는 고민도 해봐야 한다.

2017-09-08 11:26:59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