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마라고 하면 필자는 미국의 전설적 기수 스티브 코슨 정도만 떠올리는 문외한이다. 그를 알게 된 것도 1980년 대학 ‘타임반’에서 기사를 읽은 덕분이다. 그는 18세 때인 1978년 최연소로 켄터키 더비를 비롯해 ‘트리플 크라운(3관 경주)’을 석권한 인물이다. 1977년 한해에 600만달러(약 70억원) 이상을 벌어들이기도 했다. 1992년 은퇴해 고향 켄터키에서 종마사육장을 운영하며 편안하게 살고 있다고 한다. 

장면을 바꿔보자. 지난달 2일 서울 광화문광장에는 ‘갑질과 부조리가 만든 타살, 마사회는 경마기수 문중원을 살려내라’는 플래카드가 내걸렸다. 한국마사회 부산경남경마공원 소속 기수인 문중원(40)씨는 지난해 11월 29일 경마공원 숙소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유가족과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관계자들은 문씨의 죽음이 억울하다며 장례를 거부한 채 지금까지 농성을 벌이고 있다.

한국마사회의 부조리한 운영을 비판하며 극단적 선택을 한 문중원 기수의 유족과 시민대책위가 13일 문제해결을 촉구하며 청와대로 행진하고 있다. /연합뉴스

무엇이 억울하다는 것인가. 한마디로 요약할 수 있다. 광화문 플래카드에도 등장한 ‘갑질’이다. 그는 극단적 선택을 하게 된 심정을 A4용지 3장의 유서에 담았다. “요즘에는 등급을 낮춰서 하위군으로 떨어뜨리기 위해 ‘대충 타라’고 작전 지시를 한다. 부당한 지시가 싫어서 마음대로 타면 다음엔 말도 안 태워 준다.” “일부 조교사들은 말 주행 습성에 맞지 않는 부당한 작전 지시를 내린다.” 부정경마 의혹을 제기한 것이다.

한달반째 장례도 거부한 채 농성

현역 기수는 서울 부산경남 제주경마장을 통틀어 125명에 불과할 정도로 희귀한 직업이다. 우리는 간호사 사회의 ‘태움’ 등 악명 높은 직장 내 갑질을 알고 있다. 그런데 기수와 경마 세계에도 심각한 갑질이 횡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갑질은 조교사의 부당한 작전 지시 등 다양하다. 그는 15년 동안 기수로 일하면서 2015년 조교사 면허도 땄다. 조교사는 마주와 계약해 말의 관리와 훈련을 책임지는 개인사업자로, 밑에 기수와 마필 관리사를 두고 있다.

그것도 돌파구가 될 수 없었다. 문씨는 “죽기살기로 조교사 면허를 땄지만, 마방(마구간)을 받지못하면 다 헛일이다. 면허 딴 지 7년이 된 사람도 안주는 마구간을 갓 면허 딴 사람에게 주는 경우도 있다”고 썼다. 조교사는 마사회의 심사를 거쳐 마방을 임대받아야 영업을 할 수 있다. 그런데 그러지 못했다. 마방 임대의 공정성도 문제라는 주장이다.

그는 경마를 사랑하는 기수였다. 23기 동기생 가운데 가장 먼저 100승을 올렸다. 2008년엔 6개월 동안 호주 연수도 다녀왔다. 2012년 한 인터뷰에서 ‘기수라는 직업 선택에 후회는 없나’란 질문에 이렇게 대답한다. “안 했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같이 동고동락했던 마필이 결승선을 통과할 때 이런 시름은 일순간에 눈 녹듯 사라진다.”

서울경마공원에서 펼쳐지고 있는 야간 경마경기. 열기가 뜨겁다.

그랬던 그가 “앞이 보이지 않는 미래에 답답하고 불안해서 살 수가 없다”는 글을 남기고 떠났다. 유족과 공공운수노조는 마사회 내부 상황에 대한 진상 규명, 갑질 당사자에 대한 처벌과 불평등한 계약관계 등 개선, 마사회의 공식 사과를 요구하고 있다. 문씨는 2005년 개장한 부산경남경마공원 원년 멤버였다. 이곳에선 그동안 그를 포함해 기수·마필 관리사 7명이 극단적 선택을 했다. 이번에도 진상 규명이 안 된다면 불행한 일은 재발할 개연성이 높다.

경마계 부조리는 한국사회 축소판

문씨가 숨진 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는 전국 기수 125명 가운데 75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다. 응답자의 58.5%가 ‘조교사로부터 부당한 지시를 받은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고작 125명이 뛰는 직종에서 벌어지는 갑질이라고 외면할 수 없는 것은 그것이 갑질이 만연한 한국 사회의 축도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산업적 측면에서 경마는 무시못할 존재다. 공기업인 한국마사회의 2018년 매출은 7조5753억원, 당기순이익은 1827억원이었다. 마사회는 2012년 법인세 납세실적이 삼성전자와 현대차에 이어 세번째로 많은 1조4650억원을 기록하기도 했다.

한 기수가 죽음으로써 경마 세계의 부조리를 고발했다. 경찰은 철저하게 수사하고 관련 부처는 치밀한 대책을 세울 일이다. 이 바닥에 어떤 갑질이 온존하고 있는지 확인하고 뿌리뽑아야 한다. 2020-01-15 13:01:30

Posted by 김철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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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담이란 건 ‘나누어서 맡는다’는 뜻이다. 그러나 미국이 한국에 요구하는 방위비 분담금 수준은 분담이 아니라 숫제 ‘전담’하라는 것이나 다름없다.

“한국과 미국은 지난 4일 워싱턴에서 열린 제11차 한·미 방위비분담특별협정(SMA) 체결을 위한 4차 회의를 마무리했다” 이 보도 문장에 겹따옴표를 씌운 이유는 설명이 필요해서다. 한·미는 주한미군 주둔 비용 분담에 관한 협상을 벌이고 있는데, 올해 협상은 유별나다. 미국이 터무니없이 많은 분담금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얼마나 많길래 그러나. 내년도 분담금으로 올해 분담금(1조389억원)의 5배가 넘는 50억달러(약 5조9천억원)를 요구 중이다. 두말할 것 없이 ‘거래의 달인’이라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작품이다.

양국은 1991년부터 2~5년 간격으로 방위비분담특별협정을 맺어왔다. 올 3월 체결된 제10차 협정에서는 분담금이 처음으로 1조원을 넘었다. 협정 유효기간도 처음으로 다년 계약이 아닌 1년으로 짧아져, 9월부터 다시 협상에 들어갔다. 지난달 서울에서 열린 3차 회의는 미국 협상팀이 일방적으로 자리를 박차고 나가는 바람에 결렬됐다. 이번에도 미국 측은 완강했다. 이달 중순 서울에서 5차 회의가 열린다.

‘터무니없이 많은’ 분담금이란 말은 맞나. 관측통들은 거의 이구동성으로 그렇다고 말한다. 뉴욕타임스는 지난 달 21일자 사설에서 트럼프가 ‘outrageous demand’를 한다고 비판했다. 번역하면 ‘터무니없는 요구’다. 신문은 트럼프의 과도한 방위비 요구가 동맹국을 모욕하고 해외 주둔 미군을 용병으로 격하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방위비분담금 인상 강요 미국 규탄 결의대회│11월 30일 서울 중구 미국대사관저 인근에서 열린 한미동맹 파기, 방위비 분담금 강요 미국 규탄 민중당 결의대회 민중당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윤동진 기자 

분담이 아니라 숫제 ‘전담’하라는 것

미국 내 한반도 전문가들도 비판 의견을 쏟아냈다. 프랭크 엄 미국평화연구소 선임연구원은 “분담금 산정을 위한 포뮬러(공식)에 대한 상호 양해도 없이 금액을 제시하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지적했다. 로버트 매닝 애틀랜틱카운슬 선임연구원은 “트럼프는 동맹을 부동산 거래처럼 본다. 모든 게 마피아 같은 거래관계다”라고 비판했다.

안규백 국회 국방위원장은 “미국 협상단도 자신들의 요구가 말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국방부가 3월 의회에 보고한 자료에 따르면 주한미군 전체 운영 유지비는 22억2000만여달러다. 주둔 비용을 절반씩 부담한다 손쳐도 우리는 11억달러(약 1조2875억원)만 내면 된다. 참고로 얼마 전 조정된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운영예산은 25억달러였다. 미국이 요구하는 50억달러는 나토 30개국이 공동 부담하는 액수의 2배나 된다.

우리 편도 성찰할 부분이 있다. 특히 주한미군 철수 가능성으로 인한 불안심리가 문제다. 리영희 교수는 생전에 “지난 수십년 간 남한은 주한미군의 존재 없이는 목숨을 부지할 수 없을 것이라는 자기최면에 빠져있었다”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한·미관계에 불협화음이 일 때마다 미국 측에서 ‘미군 철수’라고 한마디 외우기만 하면 한국 정부와 대중은 경기(驚氣)라도 하는 모습을 보였다는 것이다.

리 교수 이야기를 좀 더 하겠다. 미군 철수 논쟁이 그만큼 오래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는 주한미군과 한국의 안보는 한국의 국익이 아니라 미국의 국익에 따른 것이라고 단언했다. 여기서 국익이란 한반도 전쟁 억제를 통한 동북아 지역 안보·패권 유지란 사실은 미국 정부 당국자들도 공언해 온 바다. 이 정세분석은 지금도 유효하다.

미군 철수나 감축에 대해 의연한 모습

시대가 바뀐 걸까, 과거와 달리 여론은 미군 철수나 감축에 대해 의연한 모습이다. 지난 달 말 리얼미터 여론조사에서 국민의 66.8%가 ‘미군이 감축된다고 해도 미국의 방위비 대폭 인상 요구를 수용해서는 안 된다’고 응답했다. MBC는 여론조사 결과 주한미군은 미국이 필요해 주둔시킨 것이라 감축해도 상관없다는 답이 55.2%였다고 보도했다.

이봉수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교수는 한 칼럼에 이렇게 썼다. “연애든 협상이든 매달리는 쪽이 불리해진다. 두 나라가 협상할 때 국민의 반대가 큰 쪽이 협상력도 커진다. 국민의 반대 목소리를 내세우면 상대방의 양보를 더 받아낼 수 있다는 논리다” 요컨대 협상 준비는 치밀하게 하되, 임하는 자세는 느긋할 필요가 있다. 바로 호시우행(虎視牛行)의 전략이다. 2019-12-10 10:00:00 게재

Posted by 김철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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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대 대선을 1년 앞둔 2006년 11월 한국사회여론연구소가 여론조사를 했다. 후보로 거론되던 정치인 9명에 대해 “정치적 이념 성향에서 진보와 보수 중 어느 쪽에 가깝다고 보는지” 물었다. 가장 진보적인 대선주자로 꼽힌 인물은 누구였을까. 놀라지 마시라. 이명박이었다. 응답자의 54.7%가 그를 진보정치인이라고 간주했다. 응답자들은 김근태, 강금실, 정동영, 손학규, 한명숙보다 이명박이 더 진보적이라고 믿었다(좌우파사전·위즈덤하우스). 나중에 4대강 사업으로 이름만 바꾼 한반도 대운하 사업, 부자 감세, 복지축소를 주요 공약으로 내건 그를 가장 진보적 정치인이라고 평가한 것이다.

이 얘기를 꺼낸 것은 여론조사의 부정확성을 주장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상식과 사회적 통념으로 받아들이는 것들이 크고 작은 오해의 소산일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해 보기 위해서다. 그런 것으로 과거사에 대한 인식을 꼽고자 한다. 이것은 역사의식의 문제이기도 하다.

4·16 세월호참사 가족협의회와 시민들이 지난 2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 북측광장에서 세월호참사 전면재수사, 책임자·처벌, 검찰개혁, 적폐청산 위한 ‘국민 고소·고발인 대회’를 열고 있다. 4·16세월호참사 가족협의회 소속 어머니들이 촛불을 들고 있다. 한겨레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우리는 흔히 ‘나쁜 과거사는 잊어버리는 게 상책’이라거나, ‘미래가 중요한데 언제까지 과거사에 매달릴 거냐’ ‘현재에 만족하지 못한다면 미래에서 희망을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진보적 인사들 가운데도 이런 이들이 많다. 이 생각은 절반만 맞다. 나쁜 기억은 잊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다. 문제는 그럴 수 있느냐다. 과거의 나쁜 기억을 잊어버릴 수 있는가. 사람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대체로 어려운 일이다. 특히 사회·정치적 의미가 엄청난 비극적 사건을 기억에서 싹 지워버린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다 잊어버리자”고 강요하는 것은 또 다른 폭력이 될 수 있다.

‘기억하자’와 ‘잊어버리자’ 사이의 싸움

미국 작가 윌리엄 포크너는 소설 ‘어느 수녀를 위한 진혼곡’(1951)에서 명언을 남겼다. “과거는 죽지 않는다. 실은 아직 지나간 것도 아니다(The past is never dead. In fact, it’s not even past).” 이 말은 2008년 미국 대선 때 버락 오바마 후보가 인종문제를 제기하면서 인용해 더욱 유명해졌다. 스토리는 미국 남부가정의 고용주 백인 여성 템플과 흑인 유모 낸시 사이에 벌어지는 사건이다. 두 여자는 과거 창녀 생활을 한 공통점이 있다. 둘은 그런 과거의 끔찍한 환영에 시달리던 중 낸시가 템플의 갓난아이를 질식사시키는 범죄를 저지른다….

검찰이 ‘세월호참사 특별수사단’을 구성해 전면 재수사를 시작하자 언론 반응이 두 갈래다. 하나는 ‘유족들의 눈은 5년 7개월 전 그날에 멈춰져 있다. 꼬리 자르기로 일관했던 수사를 넘어 그간 제기된 의혹을 낱낱이 파헤쳐라’고 주문하는 흐름이다. 다른 하나는 ‘그간 검찰, 국회 국정조사, 세월호 특조위, 감사원 등 5개 기관을 거친 사건에 대한 6번째 수사다. 더 이상 무엇이 필요한가’라고 묻는다. 수사를 할 만큼 했고 처벌도 충분히 했다는 것이다.

돌이켜보면 세월호 참사 수습과정은 발생 초기부터 지금까지 ‘기억하자’는 쪽과 ‘잊어버리자’는 쪽 사이의 싸움이었다. 이 논란이 검찰 특수단 구성으로 재연되는 형국이다. 그러나 검경의 초동수사는 지금까지 부실·외압·축소 의혹에 쌓여 있는 것이 사실이다. 특조위(1·2기)-선체조사위-사회적참사특조위는 입을 닫거나 책임을 떠넘기는 관계자들 때문에 한계를 절감했다.

병원 이송까지 4시간 41분이나 지체

참사 당일 맥박이 뛰는 학생을 발견하고도 현장에 있던 헬기가 아닌 배로 옮기는 바람에 병원 이송까지 4시간 41분이나 지체됐고 결국 사망 처리됐다는 사실이 사회적참사특조위에서 최근 밝혀졌다. 아직도 밝혀야 할 진상이나 가려야 할 책임 소재가 많이 남아있다는 얘기다.

세월호 유족 ‘예은아빠’ 유경근씨는 “핵심은 참사 당일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제대로 밝히는 것”이라며 “핵심과제를 수사하면 나머지는 자연스레 따라오게 돼 있다”고 말한다. 대검 관계자가 했다는 말대로 “더 이상 규명이 필요하지 않을 때까지” 수사할 필요가 있다.

오늘도 일본 우익들은 잘못된 과거사에 대한 반성은커녕 그것을 부정하고 미화하고 정당화하는데 여념이 없다. 그들 위로 ‘아직도 지겨운 세월호 얘기냐’는 사람들이 겹쳐 보이는 건 어째서일까. 
2019-11-13 10:00:00 게재

 

Posted by 김철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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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법무부 장관이 사퇴했음에도 불구하고 검찰개혁을 위해 갈 길은 멀어 보인다. 지난 주말 많은 시민들이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다시 촛불을 들고 “이제 국회가 검찰개혁 법안 통과를 위해 힘써야 할 때”라고 입을 모았다. 반면 광화문 광장에서 대규모 장외 집회를 연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는 “잘하고 있는 검찰을 두고 ‘옥상옥’인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를 만들겠다는 의도는 제멋대로 법을 주무르겠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검찰개혁이 시대적 과제로 떠오른 것은 오래된 일이나 번번이 좌절했다. 1998년 국민의 정부 이후 20년 간 이루지 못한 역대 정권의 숙제였다. 노무현정부 때도 강금실 법무부 장관이 ‘공직자부패수사처’를 신설하려 했으나 당시 송광수 검찰총장이 “검찰의 권한 약화를 노린 것”이라며 반대해 무산됐다.

특기할 것은 이명박정부 시절 정권 핵심인 이재오 새누리당 의원이 공수처법을 발의한 적이 있다는 점이다. 지금도 현역인 심재철·김성태·김영우 한국당 의원 등이 동참했다. ‘정치 검찰’을 개혁하기 위해 공수처 설치가 필요하다는 데 여야, 보수·진보를 떠나 공감대가 형성돼온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14일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생각에 잠겨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윤석열 검찰총장이 17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대검찰청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질의에 답하고 있다. 강창광 한겨레 선임기자 chang@hani.co.kr

공수처 설치는 검찰개혁의 핵심이다. 각종 여론조사에서도 시민 다수가 지지하고 있다. 지난달 30일 발표된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조사에서도 공수처 설치법안 처리는 찬성 응답이 79.6%였다. 이 때문에 시민들이 패스트트랙에 올라 있는 공수처 설치법과 검경 수사권 조정법안을 신속하게 처리하라며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으로 몰려간 것이다. 그런데 한국당은 공수처가 ‘장기집권 사령부’(나경원 원내대표)라며 절대 불가를 외치고 있다.

대검 개혁방안은 국민 기대에 못미쳐

그러나 이 칼럼의 주제는 야당의 변덕과 몽니가 아니라, 공수처를 권력기관 개혁 1호 대선 공약으로 내걸었던 문재인 대통령의 인식에 대한 비판이다. 문 대통령이 검찰개혁을 너무 쉽게 생각한 듯 보인다는 말이다. 문 대통령은 조 장관이 사퇴 의사를 밝힌 뒤 “저는 조국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의 환상적인 조합에 의한 검찰개혁을 희망했다”며 “꿈같은 희망이 되고 말았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또 “검찰개혁 방안의 결정 과정에 검찰이 참여함으로써 검찰이 개혁 대상에 머물지 않고 개혁 주체가 된 점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고도 했다. 이 말은 지난달 30일 당시 조 장관으로부터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국민으로부터 신뢰받는 권력기관이 될 수 있는 방안을 조속히 마련해 제시해 주길 바란다”고 검찰총장에게 지시한 것의 연장선에 있다. ‘개혁 대상이 만드는 개혁안’? 당시에도 이 지시가 이상하게 여겨졌다. 그런데 어찌된 까닭인지 검찰에 대한 신뢰를 거두지 않은 것이다.

이 지시에 따라 이튿날 대검이 내놓은 개혁방안은 역시 국민 기대에 크게 못미치는 것이었다. 서울중앙지검 등 3개 검찰청을 제외한 전국 모든 검찰청에 설치된 특수부를 폐지하고, 외부 파견검사를 전원 복귀시켜 형사·공판부에 투입하겠다는 것 정도였다.

2013년 국가정보원의 정치 개입 사건이 터지자 박근혜 전 대통령이 “국정원은 개혁에 박차를 가하고 개혁안을 스스로 마련해주기 바란다”고 지시한 일로 아연했던 적이 있다. 당시 국정원 사건과 지금 검찰개혁을 평면적으로 비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한 가지만은 차이가 없다. 권력기관이 스스로를 개혁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이다.

보수·진보 어느 쪽도 아닌 ‘검찰주의자’

윤 총장의 인물론도 논란거리다. 알려진 대로 검찰은 조 장관 가족에 대해 두 달 가까이 먼지털이식 수사, 11시간의 압수수색, 웅동학원에 대한 별건수사 등을 무차별적으로 펼쳤다. ‘조국 사태’에 대해 김동춘 성공회대 교수는 “검찰·언론이라는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 ‘선출된 권력’을 제압하려 한 사건”이라고 보았다. 그 말에 동의하면서 나는 대쪽검사로 알려진 그의 실체가 ‘법은 곧 정의’라는 신념을 체화한 ‘레미제라블’의 자베르 경감을 닮았다고 생각한다. 그 점에서 그는 보수·진보 어느 쪽도 아닌 ‘검찰주의자’이다. 그가 과거에 했다는 “저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 조직을 사랑한다”는 말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된다. 그는 겉으로는 검찰개혁에 긍정적이지만 속마음은 개혁 반대쪽일 개연성이 있다.

2019-10-21 10:00:00 게재

Posted by 김철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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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이모부가 별세해 조문을 다녀왔다. 공무원으로 퇴직한 고인은 슬하에 2남2녀를 두었다. 내게는 동생들인 넷의 학력과 사회적 지위는 시쳇말로 짱짱하다. 셋은 서울대, 하나는 연세대 출신이고 현재 셋은 교수, 하나는 변호사다. 부의금도 받지 않았다. 필자가 느낀 것은 엉뚱하게도 ‘계층이란 게 있구나’였다.

그런 느낌은 요즘 유행어로 떠오른 ‘강남좌파’ 논란 탓이었는지도 모른다. 강남좌파는 몸은 상류층이지만 의식은 프롤레타리아적인 계층이다. 10여년전 강준만 교수가 386세대 인사들의 자기 모순적 행태를 비꼬는 말로 쓰기 시작했는데, 조국 법무부 장관 기용을 계기로 다시 회자되는 말이 됐다.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지난 6일 오전 열린 국회 법사위 인사청문회에서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제는 본말이 전도됐다는 것이다. 장관 후보자로 지명됐으면 우선 장관직을 잘 수행할 능력이 있는지 살피는 것이 순서다. 특히 관심은 문재인정부 핵심 공약인 검찰개혁에 성공할 수 있을 것인지에 쏠려야 했다. 조국 장관도 취임 후 첫 간부회의에서 “수사권 조정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 등 개혁 법안이 국회에서 입법화되도록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가족의 사모펀드 투자에 후보자가 영향력을 미쳤는지 여부, 딸의 대학교 및 대학원 관련 비리를 밝히는 건 그 다음 순서다. 그런데 관심은 ‘강남좌파’ 조국에만 비정상적일 정도로 쏠렸다. 가족 비리 연루에 대해서는 지금 검찰의 성역 없는 수사가 진행되고 있다. 물론 가족 비리 혐의가 장관직 수행과 전혀 상관없는 것은 아니다. 국민정서도 고려해야 한다. 그러나 본질과 지엽은 구분해야 한다.

미국에는 ‘리무진 진보주의자’

조 장관은 후보자 때 기자간담회에서 자신에 대해 “통상적 기준으로 금수저 맞다. 강남좌파라고 부르는 것도 맞다”고 인정했다. “금수저이고 강남에 살아도 우리 사회와 제도가 보다 공평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수 있다. 내가 흙수저인 사람의 고통을 얼마나 알겠냐. 그게 제 한계이지만, 할 수 있는 걸 해보려고 한다”고 덧붙였다.

2011년 한 인터뷰에선 “강남에 사니까 보수적이려니 하는 것은 기계론적 접근이다. 우리 사회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강남좌파, 영남좌파가 더 많아져야 한다”고도 했다.

강준만 교수는 “모든 정치인은 강남좌파가 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정치엘리트가 되기 위해선 우선 사회적 성공을 거두어야 하기에 권력을 잡은 모든 좌파는 ‘강남좌파’가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계층은 먼 곳에서 온 특별한 존재가 아니다. 한국에 ‘강남좌파’가 있듯 미국에는 ‘리무진 진보주의자(limousine liberals)’가 있다. 이들은 명문대학을 나오고 유복하게 사는 중상류층이다. 그러면서도 사회적 약자나 소수세력의 대변자를 자임한다.

그럼에도 야당과 언론의 행태는 볼 만하다. 자유한국당은 황교안 대표가 삭발한데 이어 전·현직 의원들이 릴레이 삭발을 이어가고 있다. 이들이 ‘자유 대한민국은 죽었습니다’는 팻말을 들고 삭발하는 것을 보면 비장미마저 느껴진다. 왜인가.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가 지난주 최고위원회의에서 한 말로 대신하겠다. “이미 국민의 심판을 받은 세력이 문재인 정권을 단죄한다는 것도 말이 되지 않는다” 자유한국당이 제안한 ‘반 조국 연대’에 대한 답변이 그러했다.

검찰개혁 방해 요소 곳곳에 도사려

보수 언론들은 추측성 기사 등을 쏟아낸다. 조국 장관에 대한 보도가 후보자 지명 이후 한 달 간 무려 118만 건에 달했다고 한다. 상당수가 신상 털기 등 부정적인 내용인 것은 물론이다. 그렇지 않아도 위태로운 수구 기득권을 잃을까 걱정하던 보수세력의 저항이 표출된 것이라고 해석도 나온다.

나는 조 장관이 검찰개혁을 이뤄내기 기대한다.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역사적 경험을 통해 알기 때문이다. 정인진 변호사는 “사법개혁과 검찰개혁은 과거의 정부에서도 추진했던 과제였는데 크게 달라진 것이 없었다. 왜 이것이 그렇게도 어려울까”라고 묻는다. 그 이유로 그는 판사, 검사, 변호사 등 이른바 법조 삼륜이 체질적으로 개혁에 친숙하지 않다는 사정이 있다고 보았다. 임명 과정의 어려움은 약과다. 앞으로도 검찰개혁을 방해하는 요소는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훨씬 큰 난관을 각오해야 한다.  2019-09-20 14:22:52 

 

Posted by 김철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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