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대 대선을 1년 앞둔 2006년 11월 한국사회여론연구소가 여론조사를 했다. 후보로 거론되던 정치인 9명에 대해 “정치적 이념 성향에서 진보와 보수 중 어느 쪽에 가깝다고 보는지” 물었다. 가장 진보적인 대선주자로 꼽힌 인물은 누구였을까. 놀라지 마시라. 이명박이었다. 응답자의 54.7%가 그를 진보정치인이라고 간주했다. 응답자들은 김근태, 강금실, 정동영, 손학규, 한명숙보다 이명박이 더 진보적이라고 믿었다(좌우파사전·위즈덤하우스). 나중에 4대강 사업으로 이름만 바꾼 한반도 대운하 사업, 부자 감세, 복지축소를 주요 공약으로 내건 그를 가장 진보적 정치인이라고 평가한 것이다.

이 얘기를 꺼낸 것은 여론조사의 부정확성을 주장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상식과 사회적 통념으로 받아들이는 것들이 크고 작은 오해의 소산일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해 보기 위해서다. 그런 것으로 과거사에 대한 인식을 꼽고자 한다. 이것은 역사의식의 문제이기도 하다.

4·16 세월호참사 가족협의회와 시민들이 지난 2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 북측광장에서 세월호참사 전면재수사, 책임자·처벌, 검찰개혁, 적폐청산 위한 ‘국민 고소·고발인 대회’를 열고 있다. 4·16세월호참사 가족협의회 소속 어머니들이 촛불을 들고 있다. 한겨레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우리는 흔히 ‘나쁜 과거사는 잊어버리는 게 상책’이라거나, ‘미래가 중요한데 언제까지 과거사에 매달릴 거냐’ ‘현재에 만족하지 못한다면 미래에서 희망을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진보적 인사들 가운데도 이런 이들이 많다. 이 생각은 절반만 맞다. 나쁜 기억은 잊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다. 문제는 그럴 수 있느냐다. 과거의 나쁜 기억을 잊어버릴 수 있는가. 사람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대체로 어려운 일이다. 특히 사회·정치적 의미가 엄청난 비극적 사건을 기억에서 싹 지워버린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다 잊어버리자”고 강요하는 것은 또 다른 폭력이 될 수 있다.

‘기억하자’와 ‘잊어버리자’ 사이의 싸움

미국 작가 윌리엄 포크너는 소설 ‘어느 수녀를 위한 진혼곡’(1951)에서 명언을 남겼다. “과거는 죽지 않는다. 실은 아직 지나간 것도 아니다(The past is never dead. In fact, it’s not even past).” 이 말은 2008년 미국 대선 때 버락 오바마 후보가 인종문제를 제기하면서 인용해 더욱 유명해졌다. 스토리는 미국 남부가정의 고용주 백인 여성 템플과 흑인 유모 낸시 사이에 벌어지는 사건이다. 두 여자는 과거 창녀 생활을 한 공통점이 있다. 둘은 그런 과거의 끔찍한 환영에 시달리던 중 낸시가 템플의 갓난아이를 질식사시키는 범죄를 저지른다….

검찰이 ‘세월호참사 특별수사단’을 구성해 전면 재수사를 시작하자 언론 반응이 두 갈래다. 하나는 ‘유족들의 눈은 5년 7개월 전 그날에 멈춰져 있다. 꼬리 자르기로 일관했던 수사를 넘어 그간 제기된 의혹을 낱낱이 파헤쳐라’고 주문하는 흐름이다. 다른 하나는 ‘그간 검찰, 국회 국정조사, 세월호 특조위, 감사원 등 5개 기관을 거친 사건에 대한 6번째 수사다. 더 이상 무엇이 필요한가’라고 묻는다. 수사를 할 만큼 했고 처벌도 충분히 했다는 것이다.

돌이켜보면 세월호 참사 수습과정은 발생 초기부터 지금까지 ‘기억하자’는 쪽과 ‘잊어버리자’는 쪽 사이의 싸움이었다. 이 논란이 검찰 특수단 구성으로 재연되는 형국이다. 그러나 검경의 초동수사는 지금까지 부실·외압·축소 의혹에 쌓여 있는 것이 사실이다. 특조위(1·2기)-선체조사위-사회적참사특조위는 입을 닫거나 책임을 떠넘기는 관계자들 때문에 한계를 절감했다.

병원 이송까지 4시간 41분이나 지체

참사 당일 맥박이 뛰는 학생을 발견하고도 현장에 있던 헬기가 아닌 배로 옮기는 바람에 병원 이송까지 4시간 41분이나 지체됐고 결국 사망 처리됐다는 사실이 사회적참사특조위에서 최근 밝혀졌다. 아직도 밝혀야 할 진상이나 가려야 할 책임 소재가 많이 남아있다는 얘기다.

세월호 유족 ‘예은아빠’ 유경근씨는 “핵심은 참사 당일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제대로 밝히는 것”이라며 “핵심과제를 수사하면 나머지는 자연스레 따라오게 돼 있다”고 말한다. 대검 관계자가 했다는 말대로 “더 이상 규명이 필요하지 않을 때까지” 수사할 필요가 있다.

오늘도 일본 우익들은 잘못된 과거사에 대한 반성은커녕 그것을 부정하고 미화하고 정당화하는데 여념이 없다. 그들 위로 ‘아직도 지겨운 세월호 얘기냐’는 사람들이 겹쳐 보이는 건 어째서일까. 
2019-11-13 10:00:00 게재

 

Posted by 김철웅

댓글을 달아 주세요

조국 법무부 장관이 사퇴했음에도 불구하고 검찰개혁을 위해 갈 길은 멀어 보인다. 지난 주말 많은 시민들이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다시 촛불을 들고 “이제 국회가 검찰개혁 법안 통과를 위해 힘써야 할 때”라고 입을 모았다. 반면 광화문 광장에서 대규모 장외 집회를 연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는 “잘하고 있는 검찰을 두고 ‘옥상옥’인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를 만들겠다는 의도는 제멋대로 법을 주무르겠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검찰개혁이 시대적 과제로 떠오른 것은 오래된 일이나 번번이 좌절했다. 1998년 국민의 정부 이후 20년 간 이루지 못한 역대 정권의 숙제였다. 노무현정부 때도 강금실 법무부 장관이 ‘공직자부패수사처’를 신설하려 했으나 당시 송광수 검찰총장이 “검찰의 권한 약화를 노린 것”이라며 반대해 무산됐다.

특기할 것은 이명박정부 시절 정권 핵심인 이재오 새누리당 의원이 공수처법을 발의한 적이 있다는 점이다. 지금도 현역인 심재철·김성태·김영우 한국당 의원 등이 동참했다. ‘정치 검찰’을 개혁하기 위해 공수처 설치가 필요하다는 데 여야, 보수·진보를 떠나 공감대가 형성돼온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14일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생각에 잠겨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윤석열 검찰총장이 17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대검찰청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질의에 답하고 있다. 강창광 한겨레 선임기자 chang@hani.co.kr

공수처 설치는 검찰개혁의 핵심이다. 각종 여론조사에서도 시민 다수가 지지하고 있다. 지난달 30일 발표된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조사에서도 공수처 설치법안 처리는 찬성 응답이 79.6%였다. 이 때문에 시민들이 패스트트랙에 올라 있는 공수처 설치법과 검경 수사권 조정법안을 신속하게 처리하라며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으로 몰려간 것이다. 그런데 한국당은 공수처가 ‘장기집권 사령부’(나경원 원내대표)라며 절대 불가를 외치고 있다.

대검 개혁방안은 국민 기대에 못미쳐

그러나 이 칼럼의 주제는 야당의 변덕과 몽니가 아니라, 공수처를 권력기관 개혁 1호 대선 공약으로 내걸었던 문재인 대통령의 인식에 대한 비판이다. 문 대통령이 검찰개혁을 너무 쉽게 생각한 듯 보인다는 말이다. 문 대통령은 조 장관이 사퇴 의사를 밝힌 뒤 “저는 조국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의 환상적인 조합에 의한 검찰개혁을 희망했다”며 “꿈같은 희망이 되고 말았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또 “검찰개혁 방안의 결정 과정에 검찰이 참여함으로써 검찰이 개혁 대상에 머물지 않고 개혁 주체가 된 점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고도 했다. 이 말은 지난달 30일 당시 조 장관으로부터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국민으로부터 신뢰받는 권력기관이 될 수 있는 방안을 조속히 마련해 제시해 주길 바란다”고 검찰총장에게 지시한 것의 연장선에 있다. ‘개혁 대상이 만드는 개혁안’? 당시에도 이 지시가 이상하게 여겨졌다. 그런데 어찌된 까닭인지 검찰에 대한 신뢰를 거두지 않은 것이다.

이 지시에 따라 이튿날 대검이 내놓은 개혁방안은 역시 국민 기대에 크게 못미치는 것이었다. 서울중앙지검 등 3개 검찰청을 제외한 전국 모든 검찰청에 설치된 특수부를 폐지하고, 외부 파견검사를 전원 복귀시켜 형사·공판부에 투입하겠다는 것 정도였다.

2013년 국가정보원의 정치 개입 사건이 터지자 박근혜 전 대통령이 “국정원은 개혁에 박차를 가하고 개혁안을 스스로 마련해주기 바란다”고 지시한 일로 아연했던 적이 있다. 당시 국정원 사건과 지금 검찰개혁을 평면적으로 비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한 가지만은 차이가 없다. 권력기관이 스스로를 개혁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이다.

보수·진보 어느 쪽도 아닌 ‘검찰주의자’

윤 총장의 인물론도 논란거리다. 알려진 대로 검찰은 조 장관 가족에 대해 두 달 가까이 먼지털이식 수사, 11시간의 압수수색, 웅동학원에 대한 별건수사 등을 무차별적으로 펼쳤다. ‘조국 사태’에 대해 김동춘 성공회대 교수는 “검찰·언론이라는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 ‘선출된 권력’을 제압하려 한 사건”이라고 보았다. 그 말에 동의하면서 나는 대쪽검사로 알려진 그의 실체가 ‘법은 곧 정의’라는 신념을 체화한 ‘레미제라블’의 자베르 경감을 닮았다고 생각한다. 그 점에서 그는 보수·진보 어느 쪽도 아닌 ‘검찰주의자’이다. 그가 과거에 했다는 “저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 조직을 사랑한다”는 말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된다. 그는 겉으로는 검찰개혁에 긍정적이지만 속마음은 개혁 반대쪽일 개연성이 있다.

2019-10-21 10:00:00 게재

Posted by 김철웅

댓글을 달아 주세요

얼마 전 이모부가 별세해 조문을 다녀왔다. 공무원으로 퇴직한 고인은 슬하에 2남2녀를 두었다. 내게는 동생들인 넷의 학력과 사회적 지위는 시쳇말로 짱짱하다. 셋은 서울대, 하나는 연세대 출신이고 현재 셋은 교수, 하나는 변호사다. 부의금도 받지 않았다. 필자가 느낀 것은 엉뚱하게도 ‘계층이란 게 있구나’였다.

그런 느낌은 요즘 유행어로 떠오른 ‘강남좌파’ 논란 탓이었는지도 모른다. 강남좌파는 몸은 상류층이지만 의식은 프롤레타리아적인 계층이다. 10여년전 강준만 교수가 386세대 인사들의 자기 모순적 행태를 비꼬는 말로 쓰기 시작했는데, 조국 법무부 장관 기용을 계기로 다시 회자되는 말이 됐다.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지난 6일 오전 열린 국회 법사위 인사청문회에서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제는 본말이 전도됐다는 것이다. 장관 후보자로 지명됐으면 우선 장관직을 잘 수행할 능력이 있는지 살피는 것이 순서다. 특히 관심은 문재인정부 핵심 공약인 검찰개혁에 성공할 수 있을 것인지에 쏠려야 했다. 조국 장관도 취임 후 첫 간부회의에서 “수사권 조정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 등 개혁 법안이 국회에서 입법화되도록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가족의 사모펀드 투자에 후보자가 영향력을 미쳤는지 여부, 딸의 대학교 및 대학원 관련 비리를 밝히는 건 그 다음 순서다. 그런데 관심은 ‘강남좌파’ 조국에만 비정상적일 정도로 쏠렸다. 가족 비리 연루에 대해서는 지금 검찰의 성역 없는 수사가 진행되고 있다. 물론 가족 비리 혐의가 장관직 수행과 전혀 상관없는 것은 아니다. 국민정서도 고려해야 한다. 그러나 본질과 지엽은 구분해야 한다.

미국에는 ‘리무진 진보주의자’

조 장관은 후보자 때 기자간담회에서 자신에 대해 “통상적 기준으로 금수저 맞다. 강남좌파라고 부르는 것도 맞다”고 인정했다. “금수저이고 강남에 살아도 우리 사회와 제도가 보다 공평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수 있다. 내가 흙수저인 사람의 고통을 얼마나 알겠냐. 그게 제 한계이지만, 할 수 있는 걸 해보려고 한다”고 덧붙였다.

2011년 한 인터뷰에선 “강남에 사니까 보수적이려니 하는 것은 기계론적 접근이다. 우리 사회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강남좌파, 영남좌파가 더 많아져야 한다”고도 했다.

강준만 교수는 “모든 정치인은 강남좌파가 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정치엘리트가 되기 위해선 우선 사회적 성공을 거두어야 하기에 권력을 잡은 모든 좌파는 ‘강남좌파’가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계층은 먼 곳에서 온 특별한 존재가 아니다. 한국에 ‘강남좌파’가 있듯 미국에는 ‘리무진 진보주의자(limousine liberals)’가 있다. 이들은 명문대학을 나오고 유복하게 사는 중상류층이다. 그러면서도 사회적 약자나 소수세력의 대변자를 자임한다.

그럼에도 야당과 언론의 행태는 볼 만하다. 자유한국당은 황교안 대표가 삭발한데 이어 전·현직 의원들이 릴레이 삭발을 이어가고 있다. 이들이 ‘자유 대한민국은 죽었습니다’는 팻말을 들고 삭발하는 것을 보면 비장미마저 느껴진다. 왜인가.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가 지난주 최고위원회의에서 한 말로 대신하겠다. “이미 국민의 심판을 받은 세력이 문재인 정권을 단죄한다는 것도 말이 되지 않는다” 자유한국당이 제안한 ‘반 조국 연대’에 대한 답변이 그러했다.

검찰개혁 방해 요소 곳곳에 도사려

보수 언론들은 추측성 기사 등을 쏟아낸다. 조국 장관에 대한 보도가 후보자 지명 이후 한 달 간 무려 118만 건에 달했다고 한다. 상당수가 신상 털기 등 부정적인 내용인 것은 물론이다. 그렇지 않아도 위태로운 수구 기득권을 잃을까 걱정하던 보수세력의 저항이 표출된 것이라고 해석도 나온다.

나는 조 장관이 검찰개혁을 이뤄내기 기대한다.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역사적 경험을 통해 알기 때문이다. 정인진 변호사는 “사법개혁과 검찰개혁은 과거의 정부에서도 추진했던 과제였는데 크게 달라진 것이 없었다. 왜 이것이 그렇게도 어려울까”라고 묻는다. 그 이유로 그는 판사, 검사, 변호사 등 이른바 법조 삼륜이 체질적으로 개혁에 친숙하지 않다는 사정이 있다고 보았다. 임명 과정의 어려움은 약과다. 앞으로도 검찰개혁을 방해하는 요소는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훨씬 큰 난관을 각오해야 한다.  2019-09-20 14:22:52 

 

Posted by 김철웅

댓글을 달아 주세요

공약은 지켜야 한다. 이 말이 새삼스러운 이유는 안 지켜지는 공약이 워낙 많기 때문이다. 올해 초 청와대는 대선 공약사항인 광화문 대통령 집무실 이전을 보류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경호와 의전이 복잡하고 어렵다는 게 이유였다.

최저임금 공약도 파기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7월 수석·보좌관회의에서 “2020년까지 최저임금(시급) 1만원을 이룬다는 목표는 사실상 어려워졌다”면서 “대선 공약을 지키지 못하게 된 것을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내년도 최저임금이 8590원으로 결정됐을 때도 다시 사과했다.

공약은 지키는 게 당연하지만 예산 문제나 사정 변경 등으로 우선순위에서 밀려나기도 한다. 문재인 대선 후보도 2017년 4월 더불어민주당 정책공약집 ‘나라를 나라답게’를 내놓았다. 387쪽 분량에 4대 비전과 12대 약속, 201개의 실천약속을 담았다. 이를 ‘세부약속’으로 나누면 888개에 이른다고 한다. 그중 상당수는 잊힐 공산이 크다.

그럼에도 정권의 명운을 걸고 지켜야 할 공약은 따로 있다고 생각한다. 공약집 발간사에 언급된 ‘촛불민심’을 구현하는 공약들 말이다. 최저임금 공약은 사소해 보일 정도로 중요하고 포괄적 의미를 담은 공약이 있다. 바로 ‘비정규직 감축 및 처우개선’ 공약이다.

광화문 광장서 전국노동자대회…5만3000명 참석 7월 3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공공부문 비정규노동자 총파업 전국노동자대회’ 참가자들이 비정규직 철폐, 차별 해소, 처우 개선 등을 촉구하는 손팻말을 들어올리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날 집회에는 민주노총 추산 5만3000명이 참가했다. 김정근 선임기자

문 대통령은 취임 사흘째인 2017년 5월 12일 첫 외부일정으로 인천공항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만났다. 그는 “우선 공공부문부터 임기 내에 ‘비정규직 제로 시대’를 열겠다”고 약속했다. 당시 인천공항공사는 비정규직 비율이 85.7%로 공공기관 가운데 가장 높았다. 문제는 실현 가능성이다. 구체적 각론으로 들어가면 그렇게 간단치 않다.

월급쟁이 3명 중 1명은 비정규직

인천공항공사와 노사는 그 뒤 협력사 비정규직 1만명 가운데 보안·검색 인원 등 3000명을 직접 고용하고 나머지 비정규직 7000여명은 자회사 2곳 소속으로 정규직 전환을 하는 데 합의했다. 그러나 노조는 ‘비정규직 제로시대’는 아직 오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자회사 정규직이 됐을 뿐 사실상 간접고용 노동자 신분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른바 ‘무늬만 정규직화’다.

공약집엔 이렇게 쓰여 있다. “상시·지속적 업무 정규직 고용원칙 정착으로 비정규직 규모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수준으로 감축하겠습니다” OECD는 ‘임시 노동자’란 개념을 쓰고 있는데, 2017년 기준 한국의 임시 노동자 비중은 20.6%로 OECD 국가 평균보다 2배가량 높다.

또 함부로 비정규직 노동자를 늘릴 수 없도록 하는 ‘사용사유 제한 제도’를 도입하겠다고 공약했으나 진전이 없다. 며칠 전 정의당 이정미 의원이 ‘사용사유 제한 4법’을 발의했을 뿐이다. ‘비정규직 차별금지 특별법’을 제정해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적용한다고 했으나 관련된 법제도 개선안도 소식이 없다.

비정규직 문제가 개선되지 않은 것은 수치로도 증명된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비정규직은 661만4000명으로 전년보다 3만6000명 늘었다. 2008년(544만5000명)과 비교하면 10년 사이 110만명 이상 증가했다. 비정규직 비율도 2014년 32.2%에서 꾸준히 소폭 올라 지난해 33%였다. 월급쟁이 3명 중 1명은 비정규직인 셈이다. 지난해 임금노동자의 월평균 급여는 정규직이 300만9000원, 비정규직이 164만4000원이었다. 정규직 대비 비정규직 월 급여는 2010년 이래 54%~56%로 정규직의 절반을 조금 넘는다.

한국사회가 회피해서는 안되는 문제

이렇게 차별받는 게 일상인데다 정규직화 또한 더디고 이름뿐이다. 이런 상황이 큰 규모의 파업을 불러온 것은 필연이었다. 지난달 초 급식실에서 일하는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를 비롯한 공공무문 비정규직 종사자들이 사흘 동안 역대 최대 규모로 총파업을 벌였다. 비정규직들은 “학교 안은 카스트처럼 계급이 나눠져 있다”, “우리는 ‘급식실 이모님’으로 불린다”며 처지를 개선해 달라고 호소했다.

비정규직 해결, 쉽지 않은 문제다. 하지만 동시에 한국사회가 절대로 회피해서는 안 되는 문제다. 정부는 이 공약 이행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두려운 것은 무능 좌파정권이라며 장외투쟁을 일삼는 한국당이 아니다. 비정규직이 넘치는 현실이다. 2019-08-21 05:00:16 게재

Posted by 김철웅

댓글을 달아 주세요

지난주 러시아 군용기가 독도 영공을 침범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23일 중국과의 합동훈련 과정에서 러시아 A-50 조기경보통제기가 두 차례 걸쳐 7분간 독도 영공을 침범했다. 우리 공군 전투기는 경고사격으로 360여발을 쐈다. 외국 군용기가 우리 영공을 침범한 것은 한국전쟁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며칠이 지나 잠잠해지고 있지만 우발적으로 벌어진 일회성 사건으로 돌리기엔 석연치 않은 점들이 있다.

우선 한국과 러시아의 주장이 판이하게 다르다. 이튿날 윤도한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러시아 정부가 기기 오작동으로 계획되지 않은 지역에 진입한 데 대해 깊은 유감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전날 주한 러시아 대사관 차석무관(대령)이 우리 국방부에 이런 입장을 전달했다고 전한 것이다. 많은 시민들은 그렇게 알게 됐다.

그러나 이 발표는 몇 시간 뒤 뒤집혔다. 러시아 정부가 “러시아 군용기가 한국 영공을 침범하지 않았고 오히려 한국 전투기가 비행 항로를 방해하는 위협적인 기동을 했다”는 전문을 우리 국방부에 보낸 사실이 공개된 것이다.

어쩌다 이런 혼선이 빚어졌나. 러시아 전문 사이트 바이러시아 이진희 대표 생각은 이렇다. 신문사 모스크바 특파원을 지낸 그는 모스크바와 한국의 시차(한국―6시간)를 감안하면 러시아 대사관 차석무관이 유감을 표명한 시점은 러시아 측 공식 입장이 나오기 전이었다고 본다. 그래서 모스크바로부터 아무런 지시를 받지 못한 상태에서 외교적 용어로 ‘유감’을 표시하지 않았겠느냐는 것이다. 윤 수석은 그것을 러시아의 공식 입장으로 받아들여 덜컥 발표한 것이다. 그 뒤로도 러시아 정부 입장은 한결같이 ‘영공 침범 부정’이다.

러시아 정부는 한결같이 ‘영공 침범 부정’

러시아에서 나온 반응에는 ‘공중 난동’ 같은 과격 발언도 있었다. 러시아 공중우주군 장거리 항공대 사령관 세르게이 코빌라슈 중장은 타스 통신에 “분쟁 도서(독도)에서 가장 가까이 근접한 군용기와 도서간 거리는 25㎞였다”며 “한국 조종사들 행동은 공해 상공에서 벌인 ‘보즈두시노예 훌리간스트보(공중난동)’으로 간주해야 한다”고 말했다. 영공은 영토 및 12해리(22.2㎞) 영해의 상공을 말한다. 그는 경고사격 등을 수행한 우리 공군 차단 기동을 두고 ‘훌리건(무뢰한)’이란 표현을 사용했다.

“방귀 뀐 놈이 성낸다” 속담이 생각난다. 러시아는 잘못한 게 없다며 당당한 반면 영공을 침범당한 우리는 서둘러 문제를 매듭지으려는 분위기이다. 이렇게 조급한 이유로 이런 분석도 나왔다. 한국에서는 일본제품 불매운동 등 반일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지금은 일본에 화력을 집중할 때다. 러시아와 중국이 끼어들면 복잡해진다.

니콜라이 마르첸코(왼쪽) 주한 러시아 공군 무관과 세르게이 발라지기토프 해군 무관이 25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 청사에서 러시아 군용기의 독도 영공 침범과 관련한 한·러 국장급 실무협의를 마친 뒤 로비의 이순신 장군 흉상 앞을 지나가고 있다. 연합뉴스


국방부는 러시아 대사관 무관들을 다시 불러 영공 침범 증거자료를 제시하고 관련 내용을 설명했다. 자료에는 독도 영공을 침범한 조기경보통제기의 항적 자료와 사진이 포함됐다. 군 당국자는 “경고방송, 차단 기동, 경고 사격 등이 DVR 등 기록장치에 담겼다”며 “러시아 측이 부인하기 힘든 증거”라고 말했다. 그러나 러시아 측이 태도를 바꿀지는 회의적이다. 침범 사건이 나자 모스크바에서는 “러시아가 설령 한국 영공을 침범했다 하더라도 이를 인정하지는 않을 것”이란 관측이 나왔다. 그러면 진실 공방은 장기화할 공산이 크다.

태평양에서 미국과 맞선다는 구상

러시아의 독도 영공 침범은 치밀한 계산을 통해 시기와 장소를 선택한 전략적 도발일 가능성이 높다. 일본이 영유권을 주장하는 독도를 선택했고, 존 볼턴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방한한 첫날을 골랐다는 게 그렇다. 지금 동북아 정세는 중·미 대결이 본격화하는 가운데 한·일간 갈등이 심해지는 데다 남북관계나 북·미 관계도 유동적인 복잡한 상태다.

여기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2020년까지 러시아 전력을 현대화한다는 계획을 이행하고 있다. 이에 따라 극동을 관장하는 동부 군관구는 특히 해상 전력을 급격히 보강하고 있다. 육상세력을 자처하는 러시아가 태평양에서 미국과 그 동맹국들의 해상세력과 맞선다는 구상에서다. 이번 독도 영공 도발이 그런 큰 구도의 일환으로 이뤄진 게 아닌가 한다. 2019-07-29 05:00:15 게재

 

 

 

Posted by 김철웅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