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 취향은 참으로 다양하다. 사람들의 애창곡을 보면 알 수 있다. 트로트 포크 발라드 록 댄스음악…. 한국음악저작권협회에 등록된 곡은 현재 83만9893곡인데 이중 절대다수가 대중음악이다. 하고많은 노래 가운데서 유독 그 노래를 고르는 이유는 뭘까. 중·노년층은 트로트, 젊은이들은 힙합이나 댄스음악, 이런 구분이 가능한가.

트로트 붐이 일고 있다. TV조선이 개최한 트로트 오디션 프로그램 ‘미스터 트롯’이 14일 끝났는데 11회 결승(12일 방송분)은 시청률이 35.7%였다. 방송계 꿈의 시청률이라는 30% 벽을 넘어선 것이다. 붐을 넘어 열풍이라고 할 만하다. 이를 계기로 음악취향과 세대차가 궁금해졌다.

'유산슬'이란 이름으로 가수로 나선 유재석과 송가인

미국의 인지심리학자이자 뇌과학자 대니얼 레비틴은 음악 선호도가 10대에 결정된다고 말한다. “열네살 무렵 음악적 뇌의 배선이 어른 수준으로 완성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요컨대 어릴 때 들은 노래의 기억과 취향이 평생 간다는 말이다. 이를 잘 증명하는 것이 구세대의 트로트 취향이다.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노년에 접어든 이들은 트로트 음악에 길든 반면 1970년대 이후 나온 포크 록 아이돌 음악에는 적응하기가 무척 어렵다.

역지사지하면 젊은세대도 마찬가지다. 이들도 트로트 노래가 ‘구식이어서 재미없다’는 반응을 보인다. 그러나 예외는 항상 있다. 대중예술평론가 이영미는 어릴 적 트로트에 대해 거의 혐오했다고 한다. 그는 “어린 시절 나는 송창식과 양희은을 좋아하면서도, TV에 나오는 남진과 나훈아의 노래에는 유치함과 천박함에 몸을 떨 정도였다”고 털어놓았다. 그러나 평론가로서 오래 노력한 결과 트로트에 대해 감동하고 눈물흘릴 정도가 되었다고 말한다.

K팝시대에 ‘왜색’ 시비는 안맞아

사실 이런 취향변화를 겪은 사람이 적지 않다. 지루하고 따분하게만 들리던 트로트가 나이가 들면서 점점 가슴에 와닿는 것이다. 트로트가 끈질긴 생명력을 유지하는 것은 이 때문인지 모른다. 트로트는 1932년 이애리수가 부른 ‘황성의 적’(일명 ‘황성 옛 터’)에서 시작해 고복수의 ‘타향’(1934), 이난영의 ‘목포의 눈물’(1935)에 이르러 장르가 확고하게 정착됐다.

이 과정에서 일본 엔카(演歌)의 영향을 받은 것은 사실이다. 서양음악 자체가 일본을 거쳐 한국에 이식된 것이다. 트로트의 단음계는 일본 요나누키 단음계와 같다. ‘요나누키(四七拔き)’는 일본어로 ‘4와 7이 빠진’이란 뜻이다. 라가 으뜸음인 단음계에서 4, 7음은 레와 솔이다. ‘라시도미파’, 우리 전통음악에는 이런 음계가 없다.

트로트 리듬은 ‘쿵짝 쿵짝’의 빠른 2박자가 기본이다. 여기서 비하적 어감의 명칭 ‘뽕짝’이 유래했다. 선율은 애상조가 특징이며 화성적으로도 주요 3화음을 벗어나지 못한다. 가사도 신파적이다. 신파극은 일제강점기에 유행한 연극이다. 등장인물들이 괴롭고 우울하고 습관적으로 울어댄다. 이런 왜색성 단순성 신파성은 트로트가 안고 있는 ‘내재적 한계’라 할 수 있다.

트로트 붐은 그런 점에서 숙제도 안겨줬다. 바로 세가지 한계를 극복하는 문제다. 1970년대에 한국에 온 일본 체육인들이 요정에서 흘러나오는 우리 가요를 듣고 “고도바다케 치가이마스네(가사만 다르군요)!”를 연발했다는 증언도 있기는 했다. 그러나 케이팝의 위력을 실감하는 21세기 이 시절에 왜색가요의 폐해를 말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란 생각이다.

젊은세대도 부끄러워하지 않아

트로트 취향의 세대차도 극복되는 조짐이다. 트로트는 송가인 등 젊은 가수들이 유입되면서 아이돌 못지않게 인기를 누린다. 대형스타로 떠오른 송가인 팬덤의 주 연령대는 50대 이상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미스터 트롯’ 서울 콘서트 예매상황으로 미루어 젊은세대의 트로트 실수요가 늘었다고 공연 관계자들은 보고 있다. 20대 비율이 43.3%나 됐는데 여기엔 부모 심부름으로 예매하는 사람과 실수요자가 섞여 있다는 것이다.

2007년 나온 영화 ‘복면달호’에서 주인공 달호는 트로트 가수가 된 처지가 부끄러워 가면을 썼다. 요즘 젊은이들은 과거와 달리 트로트에 대한 열광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 같다. 2020-03-17 12:30:23 게재

Posted by 김철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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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다양한 계기로 정치에 뛰어든다. 치과의사 출신 변호사 경력을 갖고 있는 전현희 의원은 2001년 혈우병 환자 중 20여명이 에이즈에 집단감염된 사건의 손해배상 소송을 맡은 것이 정치에 입문하는 계기였다. 긴 세월 소송을 하며 문제많은 이 사회를 정치를 통해 바로잡아야겠다고 마음먹게 됐다고 한다.

 

‘태호 엄마’ 이소현씨(37)는 평범한 주부이자 워킹맘으로 살다가 불행한 사건을 계기로 정치판에 뛰어든 경우다. 불행한 사건이란 지난해 5월 인천에서 발생한 사설 축구클럽 통학차량 사고다. 운전자가 과속 및 신호위반으로 교통사고를 내면서 이씨는 아들 김태호군(8)을 잃었다. 동승한 유찬군도 세상을 떠났다. 사고 후 대한항공 승무원 일을 쉬고 국회로 매일 출근하다시피 했다. 태호·유찬이가 탄 차량이 현행법의 사각지대에 있는 ‘노란 폭탄’이란 사실을 알게 됐다.

 

태호 등이 탄 차량은 노란색 승합차였고, 부모들은 그것이 어린이 통학차량인 줄 알았다. 하지만 사설 축구클럽은 법이 규정하는 어린이 통학버스 신고대상이 아니었다. 현재 이정미 정의당 의원 대표발의로 어린이가 탑승하는 모든 통학차량을 통학버스 신고대상에 포함시키는 내용의 도로교통법 개정안 등이 계류돼 있다.

 

이씨는 지난달 23일 더불어민주당 열두번째 영입인재로 입당했다. 입당식에서 그는 “국민의 생명을 지켜주지 못하는 정치, 아이들의 안전보다 정쟁이 먼저인 국회를 보면서 이대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정치에 직접 뛰어든 목적이 아이들이 안전한 세상을 만드는 것임을 분명히 밝힌 것이다.

태호, 해인이, 민식 군 부모들이 지난해 11월 27일 오전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장 앞에서 자유한국당 이채익 의원을 붙잡고 어린이생명안전법의 신속한 처리를 호소하고 있다. 영정사진을 든 사람이 태호 엄마 이소현씨다. /오마이뉴스 남소현 기자

태호·유찬이법 국회 행안위 문턱 못넘어

20대 국회에서 발의된 어린이생명안전법안은 태호·유찬이법을 비롯해 하준이법 민식이법 한음이법 해인이법 등 5개다. 공식 명칭은 아니지만 하나같이 희생된 어린 생명들의 이름을 딴 별칭으로 불린다. 이중 민식이법(어린이보호구역 관련)과 하준이법(주차 시 안전조치 관련)은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하지만 이씨가 직접 당사자인 태호·유찬이법과 해인이법, 한음이법은 국회 행안위 문턱도 넘지 못한 상태다.

아이들 안전에 관한 이씨의 생각은 이후 더욱 구체적이고 선명해졌다. 그는 최근 오마이뉴스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 “캠페인이라든가 사회활동이라든가, 아이들 안전을 위해서 할 일은 많은데 왜 하필 정치판에 가서 저러냐 같은 댓글을 보곤 해요. 그런데 제가 직접 겪어보니, 정치가 꼭 필요하더라고요. 법안이 있어야 정책이나 제도가 만들어진다는 것, 누군가의 안전이 위협받지 않게 하는 것이 가능하더라고요.”

‘정치가 꼭 필요하더라’ ‘정치 없이는 (세상이) 바뀌기 힘들다’는 생각은 뜻밖의 사고로 아들을 떠나보낸 엄마의 체험에서 우러나온 깨달음이었다. 물론 여기에는 반론도 있을 수 있다. 가령 ‘등대지기’ 같은 삶을 생각할 수 있다. 등대지기는 세상이 어지럽더라도 묵묵히 자기일에 충실하며, 이웃에 대한 배려를 잊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은유한다. 이 사회가 유지되는 건 이들 등대지기, 즉 평범한 민초와 장삼이사 덕택이지 정치인 덕이 아니라는 말이다.

사회 유지되는 건 정치인보다 민초 덕

또 정치적으로 어떤 지배 권력도 없는 사회, 경제적으로 만인이 풍요롭게 사는 사회를 지향하는 아나키즘 운동도 있다. 얼마 전에는 청년 정당인 브랜드뉴파티 조성은 대표(32)가 “진보진영에 환멸을 느낀다”며 미래통합당 합류를 선언하기도 했다. 정치적으로 어떤 이념을 선택하든, 진보에서 보수로 전향하든, 탈정치를 꿈꾸든 그건 각자의 자유다.

정치 신인 ‘태호 엄마’는 앞으로 숱한 고비를 넘어야 한다. 4.15총선에서 지역구 출마인지 비례대표 출마인지도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그에게 제기되는 회의론도 만만치않다. ‘사연 가진 분이 들어온다고 달라지는 건 아니다’라거나 ‘입문 동기는 이해하지만 전문성을 담보할 수 있는가’하는 지적이다. 그 대답도 그의 몫이다.

2020-02-24 13:59:54 게재

 

Posted by 김철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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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마라고 하면 필자는 미국의 전설적 기수 스티브 코슨 정도만 떠올리는 문외한이다. 그를 알게 된 것도 1980년 대학 ‘타임반’에서 기사를 읽은 덕분이다. 그는 18세 때인 1978년 최연소로 켄터키 더비를 비롯해 ‘트리플 크라운(3관 경주)’을 석권한 인물이다. 1977년 한해에 600만달러(약 70억원) 이상을 벌어들이기도 했다. 1992년 은퇴해 고향 켄터키에서 종마사육장을 운영하며 편안하게 살고 있다고 한다. 

장면을 바꿔보자. 지난달 2일 서울 광화문광장에는 ‘갑질과 부조리가 만든 타살, 마사회는 경마기수 문중원을 살려내라’는 플래카드가 내걸렸다. 한국마사회 부산경남경마공원 소속 기수인 문중원(40)씨는 지난해 11월 29일 경마공원 숙소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유가족과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관계자들은 문씨의 죽음이 억울하다며 장례를 거부한 채 지금까지 농성을 벌이고 있다.

한국마사회의 부조리한 운영을 비판하며 극단적 선택을 한 문중원 기수의 유족과 시민대책위가 13일 문제해결을 촉구하며 청와대로 행진하고 있다. /연합뉴스

무엇이 억울하다는 것인가. 한마디로 요약할 수 있다. 광화문 플래카드에도 등장한 ‘갑질’이다. 그는 극단적 선택을 하게 된 심정을 A4용지 3장의 유서에 담았다. “요즘에는 등급을 낮춰서 하위군으로 떨어뜨리기 위해 ‘대충 타라’고 작전 지시를 한다. 부당한 지시가 싫어서 마음대로 타면 다음엔 말도 안 태워 준다.” “일부 조교사들은 말 주행 습성에 맞지 않는 부당한 작전 지시를 내린다.” 부정경마 의혹을 제기한 것이다.

한달반째 장례도 거부한 채 농성

현역 기수는 서울 부산경남 제주경마장을 통틀어 125명에 불과할 정도로 희귀한 직업이다. 우리는 간호사 사회의 ‘태움’ 등 악명 높은 직장 내 갑질을 알고 있다. 그런데 기수와 경마 세계에도 심각한 갑질이 횡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갑질은 조교사의 부당한 작전 지시 등 다양하다. 그는 15년 동안 기수로 일하면서 2015년 조교사 면허도 땄다. 조교사는 마주와 계약해 말의 관리와 훈련을 책임지는 개인사업자로, 밑에 기수와 마필 관리사를 두고 있다.

그것도 돌파구가 될 수 없었다. 문씨는 “죽기살기로 조교사 면허를 땄지만, 마방(마구간)을 받지못하면 다 헛일이다. 면허 딴 지 7년이 된 사람도 안주는 마구간을 갓 면허 딴 사람에게 주는 경우도 있다”고 썼다. 조교사는 마사회의 심사를 거쳐 마방을 임대받아야 영업을 할 수 있다. 그런데 그러지 못했다. 마방 임대의 공정성도 문제라는 주장이다.

그는 경마를 사랑하는 기수였다. 23기 동기생 가운데 가장 먼저 100승을 올렸다. 2008년엔 6개월 동안 호주 연수도 다녀왔다. 2012년 한 인터뷰에서 ‘기수라는 직업 선택에 후회는 없나’란 질문에 이렇게 대답한다. “안 했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같이 동고동락했던 마필이 결승선을 통과할 때 이런 시름은 일순간에 눈 녹듯 사라진다.”

서울경마공원에서 펼쳐지고 있는 야간 경마경기. 열기가 뜨겁다.

그랬던 그가 “앞이 보이지 않는 미래에 답답하고 불안해서 살 수가 없다”는 글을 남기고 떠났다. 유족과 공공운수노조는 마사회 내부 상황에 대한 진상 규명, 갑질 당사자에 대한 처벌과 불평등한 계약관계 등 개선, 마사회의 공식 사과를 요구하고 있다. 문씨는 2005년 개장한 부산경남경마공원 원년 멤버였다. 이곳에선 그동안 그를 포함해 기수·마필 관리사 7명이 극단적 선택을 했다. 이번에도 진상 규명이 안 된다면 불행한 일은 재발할 개연성이 높다.

경마계 부조리는 한국사회 축소판

문씨가 숨진 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는 전국 기수 125명 가운데 75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다. 응답자의 58.5%가 ‘조교사로부터 부당한 지시를 받은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고작 125명이 뛰는 직종에서 벌어지는 갑질이라고 외면할 수 없는 것은 그것이 갑질이 만연한 한국 사회의 축도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산업적 측면에서 경마는 무시못할 존재다. 공기업인 한국마사회의 2018년 매출은 7조5753억원, 당기순이익은 1827억원이었다. 마사회는 2012년 법인세 납세실적이 삼성전자와 현대차에 이어 세번째로 많은 1조4650억원을 기록하기도 했다.

한 기수가 죽음으로써 경마 세계의 부조리를 고발했다. 경찰은 철저하게 수사하고 관련 부처는 치밀한 대책을 세울 일이다. 이 바닥에 어떤 갑질이 온존하고 있는지 확인하고 뿌리뽑아야 한다. 2020-01-15 13:01:30

Posted by 김철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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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담이란 건 ‘나누어서 맡는다’는 뜻이다. 그러나 미국이 한국에 요구하는 방위비 분담금 수준은 분담이 아니라 숫제 ‘전담’하라는 것이나 다름없다.

“한국과 미국은 지난 4일 워싱턴에서 열린 제11차 한·미 방위비분담특별협정(SMA) 체결을 위한 4차 회의를 마무리했다” 이 보도 문장에 겹따옴표를 씌운 이유는 설명이 필요해서다. 한·미는 주한미군 주둔 비용 분담에 관한 협상을 벌이고 있는데, 올해 협상은 유별나다. 미국이 터무니없이 많은 분담금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얼마나 많길래 그러나. 내년도 분담금으로 올해 분담금(1조389억원)의 5배가 넘는 50억달러(약 5조9천억원)를 요구 중이다. 두말할 것 없이 ‘거래의 달인’이라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작품이다.

양국은 1991년부터 2~5년 간격으로 방위비분담특별협정을 맺어왔다. 올 3월 체결된 제10차 협정에서는 분담금이 처음으로 1조원을 넘었다. 협정 유효기간도 처음으로 다년 계약이 아닌 1년으로 짧아져, 9월부터 다시 협상에 들어갔다. 지난달 서울에서 열린 3차 회의는 미국 협상팀이 일방적으로 자리를 박차고 나가는 바람에 결렬됐다. 이번에도 미국 측은 완강했다. 이달 중순 서울에서 5차 회의가 열린다.

‘터무니없이 많은’ 분담금이란 말은 맞나. 관측통들은 거의 이구동성으로 그렇다고 말한다. 뉴욕타임스는 지난 달 21일자 사설에서 트럼프가 ‘outrageous demand’를 한다고 비판했다. 번역하면 ‘터무니없는 요구’다. 신문은 트럼프의 과도한 방위비 요구가 동맹국을 모욕하고 해외 주둔 미군을 용병으로 격하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방위비분담금 인상 강요 미국 규탄 결의대회│11월 30일 서울 중구 미국대사관저 인근에서 열린 한미동맹 파기, 방위비 분담금 강요 미국 규탄 민중당 결의대회 민중당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윤동진 기자 

분담이 아니라 숫제 ‘전담’하라는 것

미국 내 한반도 전문가들도 비판 의견을 쏟아냈다. 프랭크 엄 미국평화연구소 선임연구원은 “분담금 산정을 위한 포뮬러(공식)에 대한 상호 양해도 없이 금액을 제시하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지적했다. 로버트 매닝 애틀랜틱카운슬 선임연구원은 “트럼프는 동맹을 부동산 거래처럼 본다. 모든 게 마피아 같은 거래관계다”라고 비판했다.

안규백 국회 국방위원장은 “미국 협상단도 자신들의 요구가 말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국방부가 3월 의회에 보고한 자료에 따르면 주한미군 전체 운영 유지비는 22억2000만여달러다. 주둔 비용을 절반씩 부담한다 손쳐도 우리는 11억달러(약 1조2875억원)만 내면 된다. 참고로 얼마 전 조정된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운영예산은 25억달러였다. 미국이 요구하는 50억달러는 나토 30개국이 공동 부담하는 액수의 2배나 된다.

우리 편도 성찰할 부분이 있다. 특히 주한미군 철수 가능성으로 인한 불안심리가 문제다. 리영희 교수는 생전에 “지난 수십년 간 남한은 주한미군의 존재 없이는 목숨을 부지할 수 없을 것이라는 자기최면에 빠져있었다”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한·미관계에 불협화음이 일 때마다 미국 측에서 ‘미군 철수’라고 한마디 외우기만 하면 한국 정부와 대중은 경기(驚氣)라도 하는 모습을 보였다는 것이다.

리 교수 이야기를 좀 더 하겠다. 미군 철수 논쟁이 그만큼 오래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는 주한미군과 한국의 안보는 한국의 국익이 아니라 미국의 국익에 따른 것이라고 단언했다. 여기서 국익이란 한반도 전쟁 억제를 통한 동북아 지역 안보·패권 유지란 사실은 미국 정부 당국자들도 공언해 온 바다. 이 정세분석은 지금도 유효하다.

미군 철수나 감축에 대해 의연한 모습

시대가 바뀐 걸까, 과거와 달리 여론은 미군 철수나 감축에 대해 의연한 모습이다. 지난 달 말 리얼미터 여론조사에서 국민의 66.8%가 ‘미군이 감축된다고 해도 미국의 방위비 대폭 인상 요구를 수용해서는 안 된다’고 응답했다. MBC는 여론조사 결과 주한미군은 미국이 필요해 주둔시킨 것이라 감축해도 상관없다는 답이 55.2%였다고 보도했다.

이봉수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교수는 한 칼럼에 이렇게 썼다. “연애든 협상이든 매달리는 쪽이 불리해진다. 두 나라가 협상할 때 국민의 반대가 큰 쪽이 협상력도 커진다. 국민의 반대 목소리를 내세우면 상대방의 양보를 더 받아낼 수 있다는 논리다” 요컨대 협상 준비는 치밀하게 하되, 임하는 자세는 느긋할 필요가 있다. 바로 호시우행(虎視牛行)의 전략이다. 2019-12-10 10:00:00 게재

Posted by 김철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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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대 대선을 1년 앞둔 2006년 11월 한국사회여론연구소가 여론조사를 했다. 후보로 거론되던 정치인 9명에 대해 “정치적 이념 성향에서 진보와 보수 중 어느 쪽에 가깝다고 보는지” 물었다. 가장 진보적인 대선주자로 꼽힌 인물은 누구였을까. 놀라지 마시라. 이명박이었다. 응답자의 54.7%가 그를 진보정치인이라고 간주했다. 응답자들은 김근태, 강금실, 정동영, 손학규, 한명숙보다 이명박이 더 진보적이라고 믿었다(좌우파사전·위즈덤하우스). 나중에 4대강 사업으로 이름만 바꾼 한반도 대운하 사업, 부자 감세, 복지축소를 주요 공약으로 내건 그를 가장 진보적 정치인이라고 평가한 것이다.

이 얘기를 꺼낸 것은 여론조사의 부정확성을 주장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상식과 사회적 통념으로 받아들이는 것들이 크고 작은 오해의 소산일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해 보기 위해서다. 그런 것으로 과거사에 대한 인식을 꼽고자 한다. 이것은 역사의식의 문제이기도 하다.

4·16 세월호참사 가족협의회와 시민들이 지난 2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 북측광장에서 세월호참사 전면재수사, 책임자·처벌, 검찰개혁, 적폐청산 위한 ‘국민 고소·고발인 대회’를 열고 있다. 4·16세월호참사 가족협의회 소속 어머니들이 촛불을 들고 있다. 한겨레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우리는 흔히 ‘나쁜 과거사는 잊어버리는 게 상책’이라거나, ‘미래가 중요한데 언제까지 과거사에 매달릴 거냐’ ‘현재에 만족하지 못한다면 미래에서 희망을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진보적 인사들 가운데도 이런 이들이 많다. 이 생각은 절반만 맞다. 나쁜 기억은 잊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다. 문제는 그럴 수 있느냐다. 과거의 나쁜 기억을 잊어버릴 수 있는가. 사람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대체로 어려운 일이다. 특히 사회·정치적 의미가 엄청난 비극적 사건을 기억에서 싹 지워버린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다 잊어버리자”고 강요하는 것은 또 다른 폭력이 될 수 있다.

‘기억하자’와 ‘잊어버리자’ 사이의 싸움

미국 작가 윌리엄 포크너는 소설 ‘어느 수녀를 위한 진혼곡’(1951)에서 명언을 남겼다. “과거는 죽지 않는다. 실은 아직 지나간 것도 아니다(The past is never dead. In fact, it’s not even past).” 이 말은 2008년 미국 대선 때 버락 오바마 후보가 인종문제를 제기하면서 인용해 더욱 유명해졌다. 스토리는 미국 남부가정의 고용주 백인 여성 템플과 흑인 유모 낸시 사이에 벌어지는 사건이다. 두 여자는 과거 창녀 생활을 한 공통점이 있다. 둘은 그런 과거의 끔찍한 환영에 시달리던 중 낸시가 템플의 갓난아이를 질식사시키는 범죄를 저지른다….

검찰이 ‘세월호참사 특별수사단’을 구성해 전면 재수사를 시작하자 언론 반응이 두 갈래다. 하나는 ‘유족들의 눈은 5년 7개월 전 그날에 멈춰져 있다. 꼬리 자르기로 일관했던 수사를 넘어 그간 제기된 의혹을 낱낱이 파헤쳐라’고 주문하는 흐름이다. 다른 하나는 ‘그간 검찰, 국회 국정조사, 세월호 특조위, 감사원 등 5개 기관을 거친 사건에 대한 6번째 수사다. 더 이상 무엇이 필요한가’라고 묻는다. 수사를 할 만큼 했고 처벌도 충분히 했다는 것이다.

돌이켜보면 세월호 참사 수습과정은 발생 초기부터 지금까지 ‘기억하자’는 쪽과 ‘잊어버리자’는 쪽 사이의 싸움이었다. 이 논란이 검찰 특수단 구성으로 재연되는 형국이다. 그러나 검경의 초동수사는 지금까지 부실·외압·축소 의혹에 쌓여 있는 것이 사실이다. 특조위(1·2기)-선체조사위-사회적참사특조위는 입을 닫거나 책임을 떠넘기는 관계자들 때문에 한계를 절감했다.

병원 이송까지 4시간 41분이나 지체

참사 당일 맥박이 뛰는 학생을 발견하고도 현장에 있던 헬기가 아닌 배로 옮기는 바람에 병원 이송까지 4시간 41분이나 지체됐고 결국 사망 처리됐다는 사실이 사회적참사특조위에서 최근 밝혀졌다. 아직도 밝혀야 할 진상이나 가려야 할 책임 소재가 많이 남아있다는 얘기다.

세월호 유족 ‘예은아빠’ 유경근씨는 “핵심은 참사 당일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제대로 밝히는 것”이라며 “핵심과제를 수사하면 나머지는 자연스레 따라오게 돼 있다”고 말한다. 대검 관계자가 했다는 말대로 “더 이상 규명이 필요하지 않을 때까지” 수사할 필요가 있다.

오늘도 일본 우익들은 잘못된 과거사에 대한 반성은커녕 그것을 부정하고 미화하고 정당화하는데 여념이 없다. 그들 위로 ‘아직도 지겨운 세월호 얘기냐’는 사람들이 겹쳐 보이는 건 어째서일까. 
2019-11-13 10:00:00 게재

 

Posted by 김철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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