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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신문 칼럼

[신문로] 정의는 패배하고 있을까

미국에서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가 백인 경찰의 무릎에 눌려 사망한 사건이 촉발한 항의시위는 미국을 넘어 전세계로 확산됐다. 한국 충남 천안에선 계모에 의해 7시간 넘게 여행용 가방에 갇혔다가 중태에 빠진 9살 초등학생이 끝내 숨졌다. 두 비극적 사건 사이에서 공통점을 찾을 수 있을까.

조지 플로이드 사건은 흑백분리와 차별을 규정한 짐크로법이 1965년 폐지됐음에도 아직도 상존하는 흑인에 대한 구조적 차별, 인종갈등의 필연적 결과란 성격이 있다. 플로이드가 백인 경관 무릎에 짓눌려 숨져간 시간 8분 46초는 이중의 상징성을 획득했다. 하나는 미국 사회에 여전한 인종차별이고 다른 하나는 그의 죽음에 대한 항의다.

초등학생 사망사건도 구조적 모순의 결과란 점은 똑같다. 지난해 9월 인천에서는 5살 남자아이가 손발이 묶인 채 계부에게 맞아 숨진 사건이 있었다. 아이는 2년여 동안 보육원에 있다가 계부와 친모 집으로 가 26일 만에 싸늘한 주검이 됐다. 지난 1월엔 경기도 여주에서 9살짜리 남아가 찬물이 담긴 욕조에 1시간 가량 앉아있다가 숨졌다. 사건의 성격이 단발성이 아니라 구조적 문제임을 알 수 있다.

 

미국 백인 경찰 데릭 쇼빈의 가혹 행위로 숨진 흑인 조지 플로이드의 추도식이 8일(현지시간) 텍사스 주 휴스턴의 파운틴 오브 프레이즈 교회에서 열리자 그의 관 앞에 조문객들이 줄지어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플로이드의 동생인 필로니즈 플로이드는 백인 경찰 폭력에 희생된 흑인들의 이름을 언급하며 “우리는 정의를 실현할 것”이라고 울먹였다. 휴스턴|AFP연합뉴스

‘정의’를 회의하게 만드는 사건들

이 사건들은 ‘정의’(Justice)란 관점에서 보면 더 분노를 치밀게 한다. 정의라고 하면 거창해 보이지만 ‘진리에 맞는 올바른 도리’나 ‘사회를 구성하고 유지하는 공정한 도리’라는 사전적 의미를 생각하면 두 사건은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두 사건이 ‘정의는 승리하고 있는가’라는 근본적 질문을 하게 한다는 점이다.

아니 더 솔직히 플로이드 사건이나 초등학생 사망사건이나 모두 정의가 패배한 사건이다. 일차적 감각으론 그렇다. 어디까지나 약자인 피해자들이 백인 경찰 무릎에, 계모의 폭력에 속절없이 희생당한 것이다.

플로이드 사건을 관찰하면 정의 문제가 자주 호출되는 것이 눈에 띈다. 가령 지난 3일 플로이드의 죽음에 항의하는 시위대가 뉴욕 시내에서 행진하는 뉴스 사진을 보면 한 사람이 ‘정의가 없으면, 평화도 없다’라는 손팻말을 들고 있다. 이날 워싱턴에서 열린 시위에서도 시민들은 같은 구호를 외쳤다. 한 흑인 대학생은 “결단코 정의가 실현되지 않으면 시위는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4일 그가 숨진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 노스센트럴대학교에서 열린 추도식에서 플로이드의 유족들도 정의를 거론했다. “우리는 플로이드를 위한 정의를 원하며, 그는 그것을 갖게 될 것이다.” 8일 텍사스주 휴스턴의 한 교회에서 엄수된 마지막 추도식에서도 플로이드의 동생은 백인 경찰의 폭력에 희생된 흑인들의 이름을 거명하며 “우리는 정의를 실현할 것”이라고 다시 한번 울먹였다.

필자는 경향신문 퇴직을 앞둔 2013년 12월 ‘희망은 잔인한 거다’란 마지막 칼럼을 썼다. 칼럼은 ‘서현이의 짧고 불행한 삶’에 대한 애도로 시작한다. 두달 전 ‘소풍을 가고 싶다’고 의붓엄마한테 말했다가 폭행을 당해 갈비뼈 16개가 부러지며 숨진 8살 이서현양 얘기다.

당시에도 아동복지법이 있었고, 아동학대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져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이 제정되기 직전이다. 그러나 제2, 제3의 서현이는 계속 나오고 있다.

아직 희망을 접지 말아야 할 이유

정말 정의는 패배한 것일까. 또 앞으로도 그럴 건가. 첫째 질문엔 대답이 궁하다. 때에 따라 그런 것 같다. 그러나 둘째 질문엔 단호하게 ‘아니다’라고 대답할 것이다. 현실이 어둡다고 해서 희망을 호출하는 것마저 단념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칼럼 제목을 그렇게 붙인 이유다.

미국에선 11월 대선에서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가 55%의 지지를 얻어 41%에 그친 트럼프 대통령을 14%p 앞섰다는 것이 며칠 전 CNN 방송 보도였다. 플로이드 사건 뒤 트럼프 대통령이 강경대응으로 일관한 데 따른 역풍이 작용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정의는 패배할 것인가. 아니다. 미국 프로야구계 전설적 감독 요기 베라는 이런 명언을 남겼다.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니다.”(It ain’t over till it’s over) 야구를 두고 한 말이지만 이런 낙관적 자세는 다른 분야에도 필요하다고 본다.  2020-06-11 12:30:32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