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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신문 칼럼

[신문로] ‘진보정치 2세대’ 새 정의당 대표가 할 일

일부 언론은 새로 선출된 김종철 정의당 대표를 ‘구원투수’라고 표현했는데 꽤 적절한 은유다. 당 안팎으로 침체기이기 때문이다. 정의당은 가라앉은 분위기이며 시야를 진보진영으로 넓혀봐도 그렇다. 이런 상황을 타개하려면 구원투수가 필요하다. 

진보정당사를 돌아보면 2004년이 가장 빛나는 해였다. 2000년 창당한 민주노동당은 그해 4월 총선에서 처음 원내 진출한 데다 10석이나 얻었다. 정당 득표율도 13%를 넘었다. 그러나 이후 진보정당은 분열과 통합을 거듭하면서 지지율을 깎아먹는다. 분열과 분당이 퇴조의 큰 이유로 꼽힌다. 정의당 의석은 현재 6석, 지지율은 5%에 머물고 있다. 

 

김종철 신임 정의당 당대표(왼쪽)와 함께 경선에 나선 배진교 후보가 지난 9일 서울 영등포구 정의당 당사에서 꽃다발을 들고 손을 마주잡고 있다. /정의당 제공

뭔가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변화없이는 2004년 진보정당의 역동적 모습이 ‘좋았던 옛시절’로 추억될 뿐이다. 그 첫단추로 정의당 당원들이 선택한 것이 김 대표다. 그는 50세로 원내 주요 정당 중 최초로 1970년생 대표다. 권영길·노회찬·심상정은 진보정치 1세대, 지난 4.15 총선 때 당선된 장혜영·류호정 등 1980년대 후반~1990년대 초반 출생은 3세대라고 할 수 있다. 김 대표는 1세대가 진보정치의 꽃을 피우도록 뒷받침한 2세대에 속한다.

심상정 전 정의당 대표는 “김 대표가 정의당의 세대교체를 넘어 낡은 정치권 세대교체를 선도해 달라”며 “세상의 변화를 따라잡지 못하고 세상의 변화를 주도할 수는 없다”고 주문했다. 그를 선택한 당원들의 여론도 그랬다. 

확실한 변화 요구하는 당론 반영 

 

그는 당선 후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정의당에 확실한 변화가 필요하다는 당원 여론이 반영된 거라고 봅니다. 국민 여론도 비슷하다고 보는데요. 제가 무난하지 않았고, ‘금기를 깨야 한다’는 변화의 메시지를 세게 던져서 당원들의 표를 얻은 게 아닌가 싶어요. 선거 과정에서 ‘정의당이 뭔가 새롭고 과감한 걸 시도해야 하는 시대가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새 대표에게 변화를 주문하는 건 당연하다. 구원투수가 직구·변화구를 구사해야 하듯 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하고 새로운 어젠다도 제시해야 한다. 2020년 21대 총선에서 정의당은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위해 ‘민주당 2중대’란 비아냥까지 감수했지만, 결국 비례 위성정당을 앞세운 거대 양당의 배신으로 입지 위축을 자초했다. 

 

지역구에서는 심 전 대표만 당선됐고, 비례대표 후보 중 5명만 국회의원이 됐다. 정의당이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덕을 볼 것이라는 전망은 보기좋게 빗나갔다.

 

최근 집권여당의 경제정책은 우향우하고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정부·여당이 입법을 추진 중인 ‘공정경제 3법’(상법·공정거래법·금융그룹감독법) 가운데 상법 개정안에는 소액주주의 권한을 강화하는 핵심인 집중투표제가 빠져 있다. 이는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이기도 했다. 민주당 지도부는 이에 대해 재계 요구를 받아들인 것이라고 밝혔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당에 대한 독자노선을 앞세운 김 대표와 정의당 입장이 중요한데 아직은 이렇다 할 반응이 없다. 정의당이 새로운 것을 과감하게 시도해야 한다는 김 대표의 생각은 맞다. 새로운 의제로 떠오른 젠더·생태문제에 대해 그는 “반드시 안고 가야 하는 문제”라고 밝혔다. 정의당 위기의 원인을 의제 발굴 실패라고 진단하고 ‘진보의 금기’에 과감히 도전해야 한다고 공언하기도 했다. 이런 열린 자세는 바람직한 것이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낡은 의제’도 중요하다는 것이다. 

 

민주노동당은 창당 4년 만인 2004년 17대 총선에서 국회의원 10명을 배출하며 진보정당의 새 시대를 열었다. 17대 국회 막이 오르는 5월31일, 민주노동당 의원들이 걸어서 국회로 들어오고 있다. 왼쪽부터 최순영, 노회찬, 단병호, 권영길, 천영세, 심상정 의원.  /한겨레신문 김정효 기자


노동과 북한문제 외면해선 안돼

 

낡은 의제라고 한 것은 진보가 결코 외면해서는 안되는 항구성·숙명성이 있다는 의미에서다. 노동과 북한 문제가 그것이다. 이 두 의제에는 시효가 없다. 

 

김 대표도 취임사에서 두 어젠다와 관련한 구체적 제안을 내놓았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과 평화군축 제안이다. 그는 “하루에 6~7명이 산업재해로 사망하고 있다”며 과로·산재로 죽어가는 노동자들을 구하기 위한 법률이 하루빨리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는 “함께 평화군축을 향해 나아간다면 남북의 청년 모두에게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줄 수 있다”면서 김 위원장이 염원에 화답해주기 바란다고 제안했다. 세상은 넓고 진보가 할 일은 많다. 2020-10-20 12:1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