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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신문 칼럼

[신문로] 좀비냐 인간이냐, 한여름밤의 좀비 꿈

좀비는 떼를 지어 몰려다니며 인간 사냥을 한다. 비척거리고 느릿느릿하지만 좀처럼 물리치기 어렵다. 이미 죽었다 살아난 시체이기 때문이다. 걸어다니는 부패한 시체, 그것이 좀비다. 당연히 자기 생각도 없고 무기력하다.

지난주 독일 함부르크 시내에 이런 좀비 1000여명이 출몰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물론 실제 상황이 아니라 퍼포먼스였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회색 진흙을 바른 참가자들은 좀비처럼 걷거나 땅바닥을 기어 다녔다. 무표정하게 비척비척 거리를 걷던 이들은 중앙광장에 이르러 회색 옷을 벗어 던졌다. 그러자 빨강, 파랑 등 형형색색 색깔 있는 옷들이 드러났다. 좀비에서 인간으로 돌아온 것에 환희하듯 이들은 춤을 추었다. 지켜보던 시민들은 박수를 보냈다.

 

 

 그날 함부르크 거리는 좀비 영화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Night of the Living Dead)'의 한 장면 같았다. /더 선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이틀 앞두고 벌어진 행위극이었다. 이들은 무엇 때문에 이런 좀비극을 펼쳤을까? 메시지는 분명했다. '좀비가 아닌, 살아있는 인간이 되자'는 것이었다. 퍼포먼스를 주도한 카탈리나 로페즈는 이렇게 설명했다. "우리의 목표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 그들이 다시 정치적으로 참여하고자 하는 동기를 부여하는 것이다."

'정치적으로 참여…'란 그의 말을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 우리 식으로 쉽게 풀면 '정치적으로 깨어 있는 시민'이 되자는 말이었다. 다시 묻자. 무엇 때문에 그래야 하는가?

자본주의, 그리고 인류의 불화 때문이다. 좀 거창하게 들리는가. 개인이 먹고 사는 문제와 동떨어진 이야기로 느껴지는가. 아니다. 그런 것들은 실상 우리의 삶과 아주 가깝게 연결돼 있다.

 

 좀비에서 인간으로 돌아온 사람들이 형형색색 옷을 드러낸 채 춤추고 있다. /더 선

 


극우열풍에 자국이기주의 확산

G20 정상회의를 겨냥해 함부르크에는 각국에서 시민 수만명이 몰려들어 기후변화 공정무역 언론자유 등 다양한 주제로 시위를 벌였다. 시위 주최 측은 "우리를 결국 구원할 수 있는 것은 '통장 잔액'이 아니라 서로 손을 잡은 사람들"이라고 호소했다. 해결책은 개인적 노력이 아니라 연대(連帶)라는 말이다.

오늘의 세계는 어떤 상황인가. 세계적으로 극우 열풍이 불고, 자국이기주의가 확산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6월 초 파리 기후변화협정 탈퇴를 선언한 것은 자국이기주의의 극치였다. 자국 산업 보호가 지구온난화 방지보다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G20 폐막을 앞두고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세계가 이렇게 갈라진 적이 없었다"고 말했을 정도다.

그 점에서 이번 함부르크 퍼포먼스가 부각시킨 좀비 이미지는 내용과 시점이 절묘했다. 좀비는 생각 없고 무기력한 존재를 상징한다. 원래 삶과 죽음의 권리를 박탈당한 채 부두교 사제 '보커'의 명령에 복종해야 하는 영원한 노예가 좀비다.

현대 영화나 게임 등 대중문화 속에서 '좀비 물'이 인기를 얻는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반쯤 죽은 것 같은 무기력한 현대인, 스스로 그렇게 산다고 느끼는 현대인에게 좀비는 묘하게 끌릴 수밖에 없는 존재인 것이다.

사실 좀비 분장 시위는 '함부르크 좀비'가 원조는 아니었다. 2011년 10월 뉴욕 월가에서 불붙은 '점령하라' 시위에서도 좀비 분장을 한 시위대가 등장했다.

그때 '뉴욕 좀비'들은 가짜 달러 지폐를 뜯어먹으며 거리를 활보했다. 그렇게 월가의 탐욕을 풍자하면서, 재정적자를 줄이고 전쟁을 중단하고 부자들에게 세금을 더 물리라고 주장했다.

'뉴욕 좀비'와 '함부르크좀비'

그로부터 6년이 지났다. 유감스럽게도 현실은 전세계적 민주주의 악화와 권위주의 포퓰리즘의 득세를 보여주고 있다.

그럴 때 선택할 길은 무엇인가. 체념하고 아무 생각 없이, 좀비처럼 착하게 살 건가. 깨어 있는 인간으로서 강렬한 몸짓을 해야 할 건가.

3년 전 세월호 참사 뒤로 많은 사람들이 "가만히 있어라"란 말로 어린 학생들을 수장시킨 데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 나도 이런 참사를 허용한 이 국가, 사회가 사람이 아니라 좀비들이 우글거리는 곳 아닌가 하는 자괴감에 시달렸다.

함부르크 퍼포먼스를 접하면서 나는 그 심리에 정확한 이름을 붙일 수 있게 됐다. 바로 '좀비적 자괴감'이다.

그리하여 다시 생각을 가다듬는다. 이젠 그 '좀비적 자괴감'을 내던지고 인간으로 살아야 한다고.

2017-07-14 11:38:58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