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권은 공식 이름을 정하지 않겠다고 한다.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정권을 각각 문민·국민·참여 정부로 불렀던 것과 비교된다.(나는 행정부라는 어감이 강한 정부보다는 정권이란 말을 쓰겠다. 그게 지금 우리네 강력한 대통령제 아래의 집권세력을 총칭하는 데 적합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잘 한 일이다. 국정 철학을 담아 정권 이름을 붙였다고 해서 실질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이명박 정권 때는 많은 구호가 명멸했다. 실용, 중도, 친서민, 법치, 공정…. 이런 것들이 과연 실현됐나. 취임 때 '국민행복시대'를 열겠다고 약속한 박근혜 정권은 어떻게 됐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문재인 정권이 '민주정권'으로 불리기를 희망한다. 그저 간판이 아니라 진짜 민주주의 가치를 실천하는 정권 말이다. 왜 그런가? 우리가 진짜 민주주의를 누리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음 달로 6월 항쟁은 30주년을 맞이하지만 나는 이 땅의 민주화가 미완의 상태라고 본다. 아직 갈 길이 멀다. 이번 정권교체는 이 미완의 민주화를 완성하는 일대 계기가 돼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18일 5.18 민주화운동 37주년 기념식에서 연설하고 있다. /SBS화면
이 땅의 민주화는 아직 미완 상태
'박정희 평전'이란 독보적 박정희 전기를 남긴 전인권 교수는 이렇게 썼다. "그는 성장과정과 생애에서 단 1년도 민주주의를 학습할 기회가 없었으며, 따라서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했고 이해하려고도 하지 않았다. 따라서 박정희는 민주주의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의미에서 몰(沒)민주주의자 또는 무(無)민주주의자였다."
그 딸의 정신세계도 비슷하다고 봐야 한다. 그도 민주주의를 고민하거나 학습할 기회가 없었다. 그는 대선 때 경제민주화 공약을 내걸었다가 당선 뒤 헌신짝처럼 폐기했다. 이것은 박정희가 유신 때 '한국적 민주주의'란 사기극을 편 것의 데자뷰였다. 그가 탄핵으로 파면된 것은 필연인 것 같다.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이 극도로 빈약한 지도자였기 때문이다.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은 "우리는 그냥 보수가 아니고 극보수다"라는 희한한 말을 했다고 한다. 최근 '블랙리스트' 사건 공판 과정에서 나온 증언이다. 자기 이념을 '극보수'로 못 박고, 그 왼쪽에 있는 모든 문화예술인을 좌파로 간주해 척결 대상으로 몰아 온 셈이다.
색깔론은 민주주의의 커다란 적이다. 지난 10년은 이 색깔론이 종북몰이로 진화하는 기회였다. 대선에서 시종 문재인 후보에게 종북 색깔론을 편 홍준표 후보는 24%를 득표해 2위를 차지했다.
내가 문재인 정권이 '민주정권'이 돼야 한다고 주장하는 데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이전 '이명박근혜 정권'이 대단히 반민주적 정권이었다는 것이다. '헬조선'과 이들 정권의 반민주성은 결코 별개의 것이 아니다. 또 하나는 새 정권에게 충분히 그럴 의지와 역량이 있다는 믿음이다. 문 대통령의 지난 5·18 기념사도 열쇳말은 민주주의였다. 그는 "새 정부는 5·18 민주화 운동과 촛불혁명의 정신을 받들어 이 땅의 민주주의를 온전히 복원할 것을 다짐한다"라고 말했다.
민주화 완성 동력은 국민에게서 나온다
새 정권에게 민주화 완성을 주문하는 것은 결코 먼지 쌓인 개념을 털어 꺼내드는 게 아니다. "민주주의만큼 인류의 창의력과 혁신적 사고가 빛나는 작품은 없다. 민주주의가 살아 있는 한 세상은 희망이 있다. 민주주의가 없는 세상은 암울하다." 로저 오스본이 '민주주의의 역사'에서 한 말이다.
민주화를 완성하는 힘은 당연히 국민에게서 나온다. 20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8주기 추모문화제에서 이재명 성남 시장은 이런 말을 했다. "기득권에 약간 손상되는 일을 하는 순간 저항이 엄청날 것인데 그때 국민이 (문 대통령에게) 힘을 합쳐줘야 한다." 나는 그의 말에 '민주주의 원칙을 지킨다면'이라는 전제를 붙이고 싶다. 2017-05-24 11:23:35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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