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내일신문 칼럼

[신문로] 인명진의 운명은

대통령 탄핵 선고가 카운트다운에 들어간 상황에서 나는 별로 부각되지 않는 한 사람에 주목한다.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을 맡고 있는 인명진 목사(70)다. 그는 엄연한 '집권당'의 리더이자 탄핵 결과에 정치적 명운이 걸려 있는 중요 인물이다.

꼭 30년 전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1987년 그는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 대변인으로 활약했다. 필자가 5년차 기자로 동대문 경찰서에 출입할 때다.

관내 종로5가 기독교회관은 '재야단체의 본산'이었다. 그해 초 박종철 고문살인 사건이 터지고 결성된 국민운동본부도 여기 들어와 6월항쟁을 이끌었다. 수많은 회견과 성명서 발표가 그를 거쳤다.



새누리당 비대위원장으로 내정된 인명진 목사(오른쪽)와 정우택 원내대표가 지난해 12월 23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기자간담회를 하기 위해 들어서고 있다.



그는 '도산' 출신이기도 하다. 도산은 해방신학에 기초한 영등포 도시산업선교회의 약칭이다. 여기서 1972년부터 12년 동안 총무로 일했다. '손학규 김문수'도 젊은 시절 그곳이 활동 근거지였다. 인 목사는 1979년 YH사건 등으로 4차례 투옥됐다. 1981년 호주로 추방된 적도 있다.

민주화·노동 운동가로서 이 정도면 '화려한' 투쟁 경력이다. 그런 그가 작년 말 새누리당(자유한국당으로 개명) 비대위원장을 맡았다. 어쩌다 그런 파격적 선택을 하게 됐는지에 대해서는 명쾌한 설명이 없었다. 그는 "다 망한 당 뭐 하러 가나"는 질문에 "조문하러"라고 눙치는 식으로 말을 아꼈다.

당장 변절론이 제기됐다. 경실련은 공동대표였던 인 목사를 창립 후 처음으로 영구제명했다. 정치활동을 금하는 윤리행동강령을 위반했다는 이유였다. 그럴 만도 했다.

국회에서 탄핵소추 논의가 진행되던 시기에 경실련은 대통령의 직무를 즉각 정지해 달라는 가처분 청구를 헌재에 냈다.

1987년 국민운동본부 대변인

인 목사도 청구인으로 이름을 올렸다. 그러던 사람이 최순실 국정농단을 왜곡하고 비호하는 정당의 최고 당직을 덜컥 받은 것이다.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 대변인 시절 인명진 목사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친박은 친박대로 크게 반발했다. 박사모 공식 팬카페에는 그가 도시산업선교회를 이끌며 노동운동을 주도했던 것을 적시한 뒤 "이건 아니다. 차라리 당 해체가 낫다"는 글이 올라왔다. "대통령 탄핵을 완수하러 새누리당에 '침투'했느냐"는 힐난도 나왔다.

누구나 정치적 견해든 소신이든 어느 정도씩 바꾸며 살아간다. 엄밀하게 말해 초지일관한 삶이란 불가능하다. 따라서 젊은 시절 민주화 투사였던 그가 훗날 보수 정치인으로 신념을 바꿨다고 쳐도 그것만으로 '변절자'로 규정할 수는 없다. 나는 그것을 '변신' 정도로 이해하려 한다. 그런 조짐은 전부터 있었다.

그는 2006년 한나라당 윤리위원장이 돼 문제 의원을 가차 없이 처벌했다. 훗날 그는 "오해가 있더라도 한나라당이 잘 돼야 나라가 잘 된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했다"고 술회했다.

그는 "진보든 보수든 필요한 역할을 한다"는 게 평소 지론이었다. 또 여권에 남아 있는 이유를 "야당보다 여당 편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더 많다"고 밝혀왔다.

여러 점에서 그의 변신은 진보진영으로부터 대표적인 변절자로 지목되는 김문수와 비교할 때 조금은 윗길이라고 본다. 그러나 탄핵 정국에서 그는 심각한 딜레마에 빠졌다. 지난 6일 당 비대위에서 한 발언을 보라.

그는 "자유한국당은 탄핵 결정이 어떻게 나오든지 대한민국이 나아갈 방향을 고민하겠다"며 "극명하게 양 갈래로 갈라진 나라를 다시 하나가 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참으로 무기력하고 하나마나한 말이었다.

탄핵 이후엔 '용도폐기' 가능성

이미 당 내부에서는 탄핵 기각을 당론으로 정하자는 목소리까지 거세다. 다음날 김진태 의원 등 당 소속 의원 94명 중 56명이 탄핵을 각하 또는 기각해 달라는 탄원서를 헌재에 제출했다. 이우현 의원은 원내 대책회의에서 헌재 결정이 "5.18, 4.19, '광주사태'같은 더 큰 사태를 초래할 수 있다"는 협박 발언을 했다.

그의 자유한국당행은 친박 성향이 절대 다수인 당 분위기와는 어울리기 힘든 선택이었다. 난파 위기에 처한 당을 살리기 위해 그가 구원투수로 반짝 기용된 셈이다. 헌재가 탄핵을 인용하면 용도폐기될 공산이 매우 크고, 기각해도 적지 않다. 그렇게 되면 고뇌에 찬 결단의 끝은 '게도 구럭도 다 잃는다'는 속담처럼 된다. 


2017-03-09 11:32:05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