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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신문 칼럼

[신문로] 촛불 혁명의 첫 단추는 정권교체

이 칼럼을 싣는 매체가 내일신문이지만, 가상의 '내일신문' 얘기로 시작해 보자. "다음날 세상에 일어날 일이 담긴 '내일신문'이 있었으면"하고 바랄 때가 있다. 그런 스토리의 영화나 만화도 있다. 이런 식이다.

여관에 묵고 있는 빈털터리 주인공에게 '내일신문'이 배달되기 시작한다. 그는 주식투자로 큰돈을 벌었고, 살인사건을 해결하기도 한다. 승승장구하던 어느 날 무심코 훑어보던 부고란에서 자기 이름을 발견한다….

필자가 '내일신문'을 상상하게 된 건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헌재의 탄핵심판 결과가 정말 궁금하기 때문이다. 어떻게 될까. 9명에서 8명 또는 7명으로 줄어든 재판관 체제에서 6명이 찬성해야 탄핵이 가결된다. 그게 가능할까. 심판 하루 전날 '내일신문'은 어떤 사실을 보도할까.

일반적 관측은 특별한 이변이 없는 한 가결될 것이란 쪽이다. 그러나 기각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 말은 예측이 빗나갈 경우에 대비한 면피용이 아니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수구세력의 탄핵에 대한 반격이 정점으로 치닫고 있다. 탄핵과 새정치를 요구하는 민심을 '촛불혁명'이라고 할 때 이에 대한 반동은 예상된 것이었지만, 그 정도가 극심하다.


 

박근혜 대통령 2월 탄핵과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사퇴, 공범세력 구속 등을 요구하는 14차 촛불집회가 4일 오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진행됐다./사진=김창현 기자

 

 

반동은 여러 형태다. 청와대는 특검의 적법한 압수수색영장 집행을 거부했다. 심상정 정의당 대표는 이를 두고 "어째 돌아가는 꼴이 심상치 않다"고 했다. 극우단체와 정치인들은 촛불을 조롱하며 터무니없는 색깔론을 유포한다. 계엄령을 선포하라거나 '특검은 빨갱이'란 막말이 탄핵반대집회에서 일상적으로 나온다.

지난 설 연휴 친박단체들은 신문형태의 '가짜뉴스'를 300만부나 제작해 전국 가정에 배포했다. 논증 없는 주장들로 가득하다. "언론이 보도한 촛불집회 참가자 수는 모두 거짓으로 밝혀졌다…."

수구세력 탄핵반격 정점 치달아

지난 주말 열린 14번째 촛불집회에서 "야당은 착각 마라, 대선보다 탄핵이다"란 구호가 나온 데는 이런 배경이 있다. 집회를 이끈 '박근혜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은 '2월에는 탄핵하라'란 주제를 내걸었다. 퇴진행동의 박병우 공동상황실장은 야당에 쓴소리를 했다. "야당의 정치 행보는 대선으로 모두 쏠려 있다. 박근혜 대통령 퇴진 없이 대선이 가능한가. 지금은 야당도 퇴진 투쟁에 집중해야 할 때다."


 

'대통령 탄핵기각을 위한 국민총궐기 운동본부(탄기국)' 회원들이 설 연휴를 하루 앞둔 지난 1월 26일 서울역 광장에서 귀성객을 상대로 탄핵 반대 입장을 알리려고 자체 제작한 신문을 배포하고 있다. 탄기국 관계자는 "신문을 300만부 인쇄했다. 조·중·동을 합친 것보다 많은 발행부수다"라며 "이 신문만 모두 배포돼도 우리의 '진실 알리기' 혁명은 성공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 연합뉴스

 


두말할 것 없이 그의 주장은 시민사회의 생각을 대변한 것이며 논쟁할 여지가 없다. "박근혜가 대통령 자리에서 내려오지 않으려고 모든 자원과 인력을 동원해 버티기에 들어간 매우 엄중한 시국"이라는 그의 현실인식에 대부분 공감할 것이기 때문이다. 광장에 촛불이 켜진 지 100여일, 그 동안 무엇이 달라졌던가. 국회에서 경제민주화법안 등 개혁입법은 단 한건도 통과된 게 없다. 야권은 "염불보다 잿밥에 정신이 팔려 있다"는 비판을 받아도 할 말 없게 됐다. 시급한 적폐청산보다 차기 정권을 쥐는 일에 몰입한 모습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이런 목소리에 동의하면서도 환기시키고 싶은 것이 있다. 탄핵과 정권교체는 대립되는 개념이 아니라는 점이다. 다시 말해 탄핵 성사가 정권교체의 전제나 필요조건일 수는 없다. 탄핵도 되고 정권교체도 되는 게 가장 바람직하다. 하지만 설사 탄핵이 기각되고 대통령이 직무에 복귀하는 사태가 일어나더라도 정권은 반드시 교체돼야 한다는 말이다. 그게 양보할 수 없는 마지노선이다.

"이런 막장드라마가 정권교체에 도움"

지난해 10월 말 JTBC가 최순실 태블릿PC를 발견해 보도하고 대통령 하야·탄핵여론이 막 끓어오르기 시작했을 때 나는 이런 넋두리를 페이스북에 올렸다.

"최순실 막장드라마를 보며 내가 분노하는 건 당연하다. 이런 함량 미달 대통령이 통치하는 곳에서 살고 있구나. 자괴감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분노, 자괴감과는 별개로 이 드라마를 즐기는 심리가 내게 있다. 이 막장드라마가 정권교체에 큰 도움이 될 거란 희망 때문이다. 박근혜가 당선됐을 때 울분의 술을 마시고 인사불성이 됐던 걸 기억한다. 유신공주가 대통령이라니. 난 정권교체만 된다면 이 정도, 이미 만성이 된 자괴감은 달게 받으련다."

이 정권을 심판해야 할 이유는 너무나 많다. 그중 제일은 뭐니 뭐니 해도 30~40년 전에나 가능했을 희대의 국정농단이 벌어졌다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