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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신문 칼럼

[신문로] 재벌개혁, 결코 쉽지 않다

촛불이 한참 타오르던 시절, 필자는 크게 두 가지가 선결과제라고 생각했다. 첫째는 정권교체이고 둘째는 재벌개혁이다. 누가 대통령이 되느냐는 '촛불혁명'의 성패를 가늠 할 중대 변수다. 정권교체는 이루어졌다. 그러나 그것으로 만사가 해결된 것은 아니다. 이 나라가 공정하고 평등한 사회로 가기 위해 반드시 해야 할 것이 재벌개혁이다.

그것만 되면 온갖 적폐의 절반은 해결된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것을 문재인, 안철수 후보가 집권하면 할 수 있을까? 당시 나는 이에 대해 회의적이었다. 재벌개혁이란 게 말처럼 쉽지 않은 것이다.

첫째는 구체제의 저항 때문이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에서 개혁이 어렵고 위험하며 성공하기 힘든 이유를 명쾌하게 설명한다. "변화에 반대하는 세력들은 혁신자를 전력을 다해 공격하는 데 반해, 그 지지자들은 오직 반신반의하며 행동할 뿐이다." 한 쪽은 죽기 살기로 개혁에 저항하는 반면, 지지자 쪽 처신은 미지근하다는 것이다. 여기에 널리 유포된 고정관념도 한몫을 한다. "재벌이 망하면 경제가 망한다"는 인식이다. 현재 10대 재벌 그룹의 시가총액은 1천조 원 안팎이다. 10대 그룹은 삼성, 현대차, SK, LG, 롯데, 포스코, GS, 한화, 현대중공업, 신세계 순이다. 특히 삼성그룹의 2017년 매출액은 239조6천억 원으로 포르투갈, 뉴질랜드 등 웬만한 국가의 국내총생산(GDP)보다 크다.

 

 

16일 오후 서울 마포구 저축은행중앙회에서 열린 저축은행 최고경영자 간담회에 참석한 김기식 원장이 굳은 표정을 보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시민들은 "재벌이 망하면 큰 일 난다"는 생각에 길들기 쉽다. 전우용 교수(한양대)는 "삼성의 '또 하나의 가족'이라는 광고 문구가 절묘하다"면서 "재벌이 만든 집, 차, 음식으로 생활하면서, 재벌이 우리 생활 전반에 너무 깊숙하게 들어와 있다"고 말한다.

'재벌 망하면 큰일난다' 길들여져

이것은 다분히 '공포 마케팅'적 측면이 있다. 1997년 외환위기 때 IMF(국제통화기금)는 "한국 경제위기는 재벌이 망하면서 온 것이며, 경제회복을 위해서는 강도 높은 재벌개혁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그러나 그 뒤로도 한국 경제의 재벌 의존도는 더욱 심화됐다.

김기식 신임 금융감독원장이 사의를 밝혔을 때 처음 든 생각은 "이래서 재벌개혁이란 게 어렵구나…"였다. 크게 문제 삼을 비리도 아니라고 볼 수도 있는데 그들의 저항, 나아가 총공세가 이렇게 거셀 줄은 몰랐다.

이 생각에는 그가 재벌개혁을 수행할 적임자란 전제가 깔려 있다. 그는 19대 국회 정무위에서 활동하며 재벌 총수 일감 몰아주기 규제를 위한 공정거래법 개정에 앞장섰다. 그래서 재벌 저격수, 금융권 저승사자란 별명을 얻었다.

김 금감원장에 대해 피감기관이 지원한 외유성 해외출장 등 의혹이 제기됐을 때 문재인 대통령이 발표한 서면 메시지가운데 이런 대목이 있다. "논란을 피하는 무난한 선택이 있을 것인데, 해당 분야의 관료 출신 등을 임명하는 것이다. 한편으로 근본적인 개혁이 필요한 분야는 과감한 외부 발탁으로 충격을 주어야 한다는 욕심이 생긴다. 하지만 과감한 선택일수록 비판과 저항이 두렵다." 그는 이것을 '인사 때마다 하게 되는 고민'이라고 했다.

기득권층 저항과 무관치 않아

김 금감원장 임명이 금융개혁 필요성에 따른 것이며, 이에 따라 불거진 논란이 보수언론·금융계 등 각계 기득권층의 저항과 무관치 않다고 보는 것 같다. 선관위 유권해석도 한편으론 의심쩍다는 생각도 든다. 선관위는 당초 관심사인 피감기관의 돈으로 해외출장을 가는 관행은 "정치자금법상 정치자금의 수수에 해당할 소지가 있다"며 비켜갔다. 그러면서 그가 '더좋은미래' 모임에 종전 범위를 현저히 초과하는 돈을 기부한 행위가 공직선거법을 위반했다고 답한 것이다. 그가 사퇴했다고 해서 재벌개혁이란 대의자체가 좌절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재벌개혁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확인시켜 주었다.  2018-04-18 11:32:41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