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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신문 칼럼

[신문로] 월드컵 시즌에 묻는 질문, 국가란 무엇일까

월드컵은 국가 간 경기이다. 2018러시아 월드컵도 지역예선을 뚫고 본선에 진출한 32개 국가대표팀들이 열전을 치르고 있다. 우리는 이것을 너무나 당연한 일로 받아들인다.

작가 유시민은 그의 책 ‘국가란 무엇인가’에서 말한다. “지구 행성에서 살아가는 70억 인류는 거의 다 ‘국민국가’(nation state)라는 정치적·경제적·역사적·문화적 공동체 안에서 삶을 영위한다. …좋든 싫든 국가와 관계를 맺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가 이 말을 한 건 ‘내 마음에 들도록 국가를 바꾸는 길은 무엇일까’란 문제를 설명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엄밀히 따지면 절반만 맞는 말이다. 국가나 국적과 상관없이 살아야 하는 사람들이 엄연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지금 얘기하려고 하는, 독립축구연맹(CONIFA·코니파) 월드컵에 참가한 선수와 회원들이 그렇다.

 

 

9일 영국 런던에서 열린 2018년 코니파 월드컵 결승전에서 헝가리어를 쓰는 우크라이나 소수민족 카르파탈랴 대표팀 공격수가 북키프로스 선수를 제치고 드리블하고 있다. /코니파 공식 트위터

코니파 월드컵이란 이름이 생소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러시아 월드컵 직전 폐막한 이 대회를 살펴보면 여러 모로 흥미롭다. 국제축구연맹(FIFA)이 주관하는 월드컵에 참가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만든 일종의 ‘대안 월드컵’이다. 물론 월드컵에 비해 경기력이야 떨어지지만 열기는 한없이 뜨겁다.

지난 9일 영국 런던 외곽 엔필드의 퀸엘리자베스 스타디움. 북키프로스와 카르파탈랴 대표팀 사이에 대회 결승전이 벌어졌다. 경기는 0대 0 무승부. 승부차기 끝에 카르파탈랴가 3대 2로 승리해 감격의 우승컵을 안았다. 그런데 카르파탈랴란 이름이 낯설다. 우크라이나 서부에 살고 있고 헝가리어를 사용하는 소수민족이다. 역사상 가장 단명한 국가다. 1939년 3월 15일 체코로부터 독립을 선언했다가 이튿날 헝가리에 합병되었다.

국가와 관계없이 살아가는 사람 있어

터키계가 다수인 북키프로스도 기구하다. 1983년 독립을 선언했지만 그리스계 남키프로스의 반발로 국제사회의 승인을 받지 못하고 있다. 이렇듯 코니파 월드컵은 정식 국가로 인정받지 못한 소수민족 등이 주축이 된 대회다. 2년마다 열리며 이번이 세 번째였다.

본부는 스웨덴 룰레오에 있고 회원 수는 48개이다. 모나코처럼 작지만 정식 국가로 승인받은 곳도 있으나, 대부분 국가 지위가 불안정하기 때문에 독립축구연맹은 ‘국가(country)’란 용어 대신 ‘회원(member)’이란 표현을 쓴다. 회원 하나하나가 애절한 사연을 간직하고 있다.

미얀마에서 박해받는 로힝야족도 회원인데 이들은 16팀이 겨루는 본선 진출은 못했다. 재일동포 팀도 ‘일본의 통일 코리언들’(United Koreans in Japan)이란 이름으로 참가했다. 이 팀은 ‘지정학적 실체’가 없는 팀이다. 한국·일본·북한에서 선수생활을 모두 경험한 안영학이 감독 겸 선수로 뛰었는데 결과는 11위였다.

 

 

5월 31일 벌어진 티베트-아브하지야의 경기에서 티베트기를 내걸고 응원하고 있는 사람들. /가디언

 

‘일본의 통일 코리언들’을 꺾고 10위를 차지한 팀은 티베트였다.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 달라이 라마는 출발인사를 하러 온 선수들에게 “어느 곳을 가든 티베트인으로서 명예와 존엄성을 갖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며 격려했다고 한다.

쿠르드족은 이란ㆍ이라크ㆍ터키ㆍ시리아에 거주하는 세계 최대의 유랑 민족이다. 약 3천만 명에 달한다. 이 지역에서 분쟁이 벌어질 때마다 국가 없는 민족의 설움을 겪고 있다. 그런데 이라크 쿠르드족(Iraqi Kurdistan)만 회원으로 올라 있다. 태평양의 수몰 위기 섬나라 투발루도 선수단을 보냈다. 회원 명단을 살펴보면 생전 듣도 보도 못한 이름들이 수두룩하다. 카스카디아는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와 미국 북서부 주에 걸쳐있는 지역이다.

코니파대회 정신도 기억했으면

독립축구연맹은 축구를 통해 사람과 사람, 국가, 소수자와 고립된 지역들 사이에 다리를 놓는 것이 목표라고 한다. 그래서 페어플레이 정신과 함께 인종주의(민족적 우월감) 소멸을 공약하고 있다. 인종이나 성별이 인간 차별의 이유가 될 수 없듯 국가·국적이 없다는 것도 차별의 구실이 될 수 없다. 그들이 선택할 수 있는 사항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제 밤 우리는 TV 앞에 모여 목청껏 한국 국가대표를 응원했다. 나는 국가가 소중하다는 깨달음과 함께 사람과 사람 사이에 다리를 놓는다는 코니파 대회의 정신도 한 번쯤 기억해보려 한다.  2018-06-19 08:16:11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