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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검증의 검증 스포츠에서 선수와 심판이 자기 역할을 혼동하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축구를 하던 선수가 주심으로 돌변해 파울 호각을 불어댄다면. 경기 진행이 엉망이 되는 것 정도가 아니라 게임 자체가 성립할 수 없다. 선수는 열심히 뛰고, 심판은 공정하게 판정을 하면 된다. 그게 이 바닥의 룰이다. 뜬금없이 선수와 심판 얘기를 꺼낸 것은 요즘 감사원의 4대강 사업 감사를 두고 선수와 심판을 혼동하는 것과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어서다. 감사원이 4대강 사업이 전반적으로 부실했다고 발표하자 엊그제 임종룡 국무총리실장이 “총리실이 중심이 되어 다시 한번 철저한 검증을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정부가 감사원의 감사 결과를 믿을 수 없다며 민간을 통해 재검증하겠다고 밝히고 나선 것이나 진배없다. 문제의 초점은 감사원 감사를.. 더보기
비판의 타이밍 엊그제 비가 오는 출근길 버스 정류장에서 나는 작은 공분(公憤)을 느꼈다. 정류장 지붕 몇 군데가 새 물이 뚝뚝 떨어지는데, 벌써 여러 달째 이 모양이다. 엄연한 공공시설을 날림 공사 해놓고 방치하고 있다니…. 은근히 울화가 치밀었다. 하지만 내 분노는 그것으로 끝이다. 나는 김수영의 시 ‘어느날 고궁을 나오면서’의 화자처럼 ‘(야경비) 20원을 받으러 세번째 네번째 찾아오는 야경꾼들만 증오하고 있는’ ‘조그만 일에만 분개하는’ 어쩔 수 없는 소시민이다. 지난주 4대강 공사가 부실투성이란 감사원의 발표가 있었다. 4년간 22조2000억원을 투입한 4대강 사업이 전반적으로 부실이라는 것이다. 보의 내구성, 수문의 안전성 등 주요 시설물부터 수질관리 기준, 수질 예측, 수질관리 방법 등 수질관리 분야, 준설.. 더보기
[여적] 미래부 조지 오웰이 1949년 쓴 소설 의 무대 오세아니아엔 정부부처가 네 개 있다. 역설적이게도 내건 이름과 하는 일이 백팔십도 다르다. 전쟁을 관장하는 부는 평화부(Ministry of Peace)이고, 사상범죄 처벌 등 법과 질서를 유지하는 부는 애정부(Ministry of Love)다. 경제문제를 책임지는 부엔 풍요부(Ministry of Plenty)란 이름이 붙었지만 실제론 매일 배급량 감소만 발표한다. 보도·연예·교육·예술을 관장한다는 진리부(Ministry of Truth)는 주요 업무가 모든 정보를 통제, 조작하는 일이다. 주인공 윈스턴이 근무하는 진리부의 거대한 벽엔 ‘전쟁은 평화, 자유는 예속, 무지는 힘’이란 당의 슬로건이 붙어 있다. 이 구호는 ‘빅 브러더’의 얼굴과 함께 25센트짜리 동.. 더보기
[여적] 노익장 청렴하면서 가난하다는 뜻의 청빈(淸貧)은 좋은 말이지만, 그게 강요에 의한 경우라면 얘기가 다르다. 강요된 청빈은 비참하다. 어쩔 수 없이 선택을 강요당한 청빈은 자발적으로 선택한 청빈과 뜻이 천양지차다. 그럴 땐 청빈이란 헷갈리는 말보다는 가난이라고 쓰는 게 더 정확할 거다. 자발적으로 가난을 택하는 일은 거의 없으므로. 노익장(老益壯)도 참 좋은 말이다. 늙어서 더욱 왕성하다는 뜻인 이 말은 중국의 에서 유래한다. “大丈夫爲者 窮當益堅 老當益壯(대장부위자 궁당익견 노당익장)”이란 말에서 나왔는데 “대장부라는 자는 뜻을 품었으면 어려울수록 굳세어야 하며 늙을수록 건장해야 한다”란 의미다. 후한 광무제 때 명장 마원은 만족의 반란이 터지자 왕에게 토벌 책임을 맡겨 달라고 간청한다. 왕이 그가 늙었다는 이.. 더보기
[여적] 무인도 필자는 가끔씩 경기·충남 서해안으로 바람을 쐬러 간다. 새로운 곳에 갈 때마다 신기하게 느껴지는 것이 있는데, 바로 지명이다. 가령 충남 안면도 꽃지해수욕장을 지나간다. 흥미를 끄는 것은 예외없이 한자 일색인 무슨 읍 무슨 리 다음에 나오는 마을 지명들이다. 기기묘묘한 순우리말 이름들이 넘쳐난다. 뛰밭머리, 큰바탕, 서륙개, 산내골, 그물목, 되네기, 빼미…. 이런 이름들이 언제 어떻게 지어졌으며, 어떤 사연들을 간직하고 있는지 자못 궁금해진다. 이건 이곳뿐 아니라 전국 어디를 가도 마찬가지다.향토색 짙은 민족문학을 추구한 작가 김정한 선생(1908~1996)은 생전에 우리말 구사에 대한 엄격한 신조로 유명했다. 한 번은 제자 최영철 시인을 이런 말로 꾸짖었다고 한다. “세상에 이름 없는 꽃이 어디 있..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