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렴하면서 가난하다는 뜻의 청빈(淸貧)은 좋은 말이지만, 그게 강요에 의한 경우라면 얘기가 다르다. 강요된 청빈은 비참하다. 어쩔 수 없이 선택을 강요당한 청빈은 자발적으로 선택한 청빈과 뜻이 천양지차다. 그럴 땐 청빈이란 헷갈리는 말보다는 가난이라고 쓰는 게 더 정확할 거다. 자발적으로 가난을 택하는 일은 거의 없으므로.
노익장(老益壯)도 참 좋은 말이다. 늙어서 더욱 왕성하다는 뜻인 이 말은 중국의 <후한서>에서 유래한다. “大丈夫爲者 窮當益堅 老當益壯(대장부위자 궁당익견 노당익장)”이란 말에서 나왔는데 “대장부라는 자는 뜻을 품었으면 어려울수록 굳세어야 하며 늙을수록 건장해야 한다”란 의미다.
후한 광무제 때 명장 마원은 만족의 반란이 터지자 왕에게 토벌 책임을 맡겨 달라고 간청한다. 왕이 그가 늙었다는 이유로 주저하자 마원은 “소신이 비록 예순두 살이나 두꺼운 갑옷을 명주처럼 걸치고 젊은이보다 말을 잘 타는데 어찌 늙었다고 하십니까”라며 말에 뛰어올라 종횡무진 기량을 뽐내 보였다. 결국 마원은 반란 토벌에 큰 공을 세웠다. 후세에 가령 70대 노인이 마라톤을 완주했을 때 ‘노익장을 과시했다’는 말을 흔히 쓰게 된 데는 이런 고사가 깔려 있다.
한국의 노인 고용률은 OECD 2위를 차지할 정도로 높은데, 노인들이 생계형 노동에 내몰린 측면이 강하다. 사진은 지난해 성남시가 연 고령자 취업알선 행사에 몰려든 사람들.
엊그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를 보니 2011년 한국의 65~69세 고용률은 41.0%로 34개국 평균(18.5%)을 크게 웃도는 2위였다. 1위는 아이슬란드로 46.7%였다. 이에 따라 한국 노인들이 일에서 놓여나는 평균연령도 남성 71.4세, 여성 69.9세로 멕시코에 이어 2위였다. 한국 남성 노인은 미국보다 6년, 독일보다 10년을 더 일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것이 만약 한국 노인들의 힘이 펄펄 살아있어서 이른바 노익장을 과시하는 모습이라면 더없이 바람직한 일일 거다. 바야흐로 청년실업과 조기퇴직이 심각한 이태백·사오정의 시대, 상시 고용불안에 시달려야 하는 비정규직의 시대 아니던가. 한데 속사정을 살펴보면 그렇게 반가운 일 같지 않다. 한국의 65세 이상 고령자 가구 소득에서 근로소득 비중이 58.4%로 가장 많았고, 국민연금 등 공적 이전소득은 15.2%에 그쳤다. 은퇴 후 생활이 막막하기 때문에 노인들이 생계형 노동을 계속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강요된 청렴’이 그러하듯 우리의 노익장에도 씁쓸함이 묻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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