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거 3일 전 의사는 이 의거가 한민족 전체 의사의 대변이라는 점을 세계에 알리기 위해 백범 선생이 주도하던 한인애국단에 가입한다. 의사는 ‘나는 적성(赤誠)으로써 조국의 독립과 자유를 회복하기 위하여 한인애국단의 일원이 되어 중국을 침략하는 적의 장교를 도륙하기로 맹세하나이다’라는 선서를 하고 최후의 준비를 서둘렀다.”
쉽게 접할 수 있는 1932년 윤봉길 의사(1908~1932)의 상하이 훙커우 공원 거사 기록이다. “27일과 28일에는 공원을 답사하여 거사의 만전을 기하였다. 김홍일 장군의 주선으로 폭탄이 마련되었고 거사 장소는 눈이 시리도록 익혀두었다. 거사일인 4월29일 아침 백범 선생과 마지막 조반을 들고서도 시계를 바꾸어 갖는 여유를 잃지 않았다.”
천신만고 끝에 윤 의사는 거사에 성공했다. 세계가 깜짝 놀랐다. 장제스 중국 총통은 “중국 백만 대군도 못한 일을 일개 조선 청년이 해냈다”며 감격했다. 의사는 그해 12월19일 일본 가나자와 육군형무소 공병 작업장에서 총살당했다. 25세 젊디젊은 나이의 순국이었다.
1932년 윤봉길 의사가 한인애국단에 입단할 때 쓴 선언문과 함께 찍은 사진(왼쪽).
오른쪽은 선언문 사본이다.
갑자기 윤봉길 의사를 회고하는 까닭을 짐작할 것이다. 윤창중 대통령 당선인 수석대변인이 한 말 때문이다. 그는 엊그제 “사실 윤봉길 의사가 제 문중 할아버지”라며 “윤 의사가 대한민국 정부의 첫번째 인선에서 제안을 받았다면 애국심 때문에 거절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제가 판단해서 응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반대로 그 이틀 전엔 ‘박근혜 정부에 들어갈 생각이 있느냐’는 질문에 “저 개인에 대한 모욕이다. 윤 의사에게 독립이 됐다고 해서 문화관광부 장관을 하라고 하면 모독 아니겠느냐”고 했다.
윤봉길 의사가 그에게 얼마나 가까운 문중 어른인지는 모른다. 중요한 건 그게 아니라 뜬금없이 윤 의사를 끌어들인 사고구조다. 굳이 따지자면 묘한 관련성은 있다. 박근혜 후보가 당선된 12월19일은 윤 의사의 순국 80주기였다. 박 당선인은 일제에 충성을 맹세한 만주군관학교 다카키 마사오 생도의 소생이다.
윤 대변인은 ‘황위병 환각파티’ ‘정치적 창녀’ ‘시궁창 세력’ 등 거친 언사와 극단적 논리를 구사해왔다. 이번엔 윤봉길 의사를 언급했다. 견강부회적 논리를 위해 문중 어른까지 끌어들인 셈인데, 그게 도리어 조상을 욕되게 하는 짓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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