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여적

[여적] 디지털 전사, 알바

옛 조선에 십만양병설이 있었다면 이 시대엔 ‘디지털 1만 전사 양성론’이 있다. 재작년 8월 안상수 한나라당 대표는 “디지털본부와 2030본부를 설치해 각각 1만명의 전사를 만들어내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당 사무처 신임 국·실장 임명장 수여식에서 다음 총선과 대선을 두고 한 말이다. 이른바 ‘디지털 전사 양성론’의 태동을 세상에 알리는 순간이다. 안 대표는 이런 말도 했다. “다음 선거에서는 젊은이들이 투표장에 안 나오기를 바라는 한나라당이 되지 않도록 하자. 앞으로 연수원을 마련해 연수를 강화할 예정이다.”

석 달 후 청년당원들과 만난 자리에서 안 대표의 어조는 더욱 비장했다. “청년지도자 1만명 모두 디지털도 인터넷도 그 세계에서 트위터로써 저쪽 세력들과 싸울 수 있도록 무장해 주실 것을 부탁드린다.” 양성 중인 디지털 전사들을 강하게 독려한 것이다. ‘저쪽 세력들과의 싸움’이란 표현에서 보듯 기본적으로 기존 트위터 여론을 나쁜 것으로 간주하고 있음도 보여줬다.


 

서울시선관위 직원들이 14일 미등록 선거사무실에서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 후보에게 유리한 인터넷 댓글 달기 등 불법 선거운동을 한 혐의로 윤정훈씨를 고발하기 위해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청사로 들어가고 있다. | 서성일 기자

 


하지만 이듬해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한나라당은 참패했다. 패인에 대한 진단이 나왔다. 반한나라당 정서인 2040세대의 마음을 잡지 못한 이유가 허술한 SNS 대책이란 것이었다. 다시 트위터 여론의 중요성을 절감한 한나라당은 SNS 전문가를 영입하고 디지털 위원이란 이름으로 대학생 등 젊은 유권자를 모집했다.

이런 노력이 성과를 거뒀나. 서울대 장덕진 교수가 지난 9월 트위터에 등장한 대선 관련 글들을 후보 지지 성향별로 나눠 보니 친박근혜 성향이 60% 이상을 차지했다. 2년 전만 해도 1 대 99로 정부 비판적 글이 많았다고 한다. 세상이 뒤집힌 건가. 아닌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수치를 접하면 곧바로 ‘알바’를 떠올린다. 집권당이 심혈을 기울여 양성했다는 디지털 전사란 게 실상은 이런 댓글 알바란 생각 때문이다. 인터넷 댓글 알바 논쟁은 지금도 수시로 벌어진다.

서울시선관위가 박근혜 후보를 위해 불법적 선거운동을 한 사무실을 적발해 검찰에 고발했다. 그 불법 선거운동이란 게 다름 아닌 박 후보에게 유리하고 문재인 후보에게 불리한 글을 트위터에 퍼뜨리는 것이었다고 한다. 새누리당이 조직적으로 개입한 정황도 드러났다. 디지털 전사 양성론, 애초 무리다 싶더니 끝내 동티가 났다.

'여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여적] 조상 모독  (0) 2012.12.27
[여적] 날씨와 선거  (0) 2012.12.18
[여적] 영상조작  (0) 2012.12.13
[여적] 저격수  (0) 2012.12.05
[여적] 추운 나라에서 온 여성 의원  (0) 2012.11.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