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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철웅 칼럼

전근대적인, 너무나 전근대적인 ‘스폰서 검사’ 사건은 비정상적인 사건이다. 비정상적인 사건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 천안함 사건은 안보불안을 야기한 비정상적 사건이다. 스폰서 검사 사건은 그 전근대성이 몹시 돋보이는 비정상적 사건이다. 쉽게 말해 이런 추문은 근대화하기 훨씬 전 옛날 옛적에나 들어보았음직한 것이란 뜻이다. 에서 장원급제해 암행어사가 돼 내려온 이몽룡은 남원부사 변학도의 학정을 이런 한시로 풍자한다. “金樽美酒 千人血 玉盤佳肴 萬姓膏(금준미주 천인혈 옥반가효 만성고). 燭淚落時 民淚落 歌聲高處 怨聲高(촉루락시 민루락 가성고처 원성고).” 뜻은 “금 술잔에 담긴 향기로운 술은 천 사람의 피요, 옥쟁반에 담긴 좋은 안주는 만백성의 기름이라. 촛대에 촛물 흐를 때 백성들의 눈물 떨어지고, 노랫소리 높은 곳에 원망 소리 높더라”.. 더보기
연결된 세상사 살다보면 세상사가 따로 떨어진 게 아니라 서로 ‘연결’돼 있다는 느낌이 들 때가 많다. 사회를 생물유기체에 비유해 설명한 사회유기체설도 이런 인식의 소산일 거다. 아무튼 인간이든 자연이든 사건이든 유기적으로, 또는 어떤 식으로든 연결돼 있다고 생각하고 보면 많은 현상들이 그럴 듯해 보인다. 그래서 영국 소설가 에드워드 모건 포스터는 대표작 「하워즈 엔드」에 ‘오직 연결하라(Only connect)’란 독특한 제사(題辭)를 붙인 게 아닌가 한다. 소설은 성격과 출신, 가치관이 판이하게 다른 두 집안 남녀의 대립과 ‘연결’을 정교한 필치로 그려냈다. 며칠 전 대학생 최태섭씨가 경향신문에 쓴 ‘2010년 3월, 넘치는 사건사고’란 칼럼을 읽으면서도 그런 느낌을 받았다. 필자에 따르면 한국사회는 글을 쓰는 사람.. 더보기
학벌이란 노비문서 현실에서 ‘역사는 반복된다’는 가설이 신통할 정도로 맞아떨어진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놀랄 때가 있다. 역사반복론은 단순화의 흠은 있지만 명쾌하게 현실을 설명해주는 힘이 있다는 게 미덕이다. 여기에 역사가 ‘처음은 비극으로, 두 번째는 희극으로’ 반복된다는 마르크스의 주석까지 곁들이면 역사반복론은 더욱 그럴듯한 설명력을 갖게 된다. 이제 “현대에도 조선시대와 비슷한 신분제도가 유지되고 있다. 그것은 바로 학벌주의다”라는 가설을 세워보자. 그것이 현실 사회 분석에 매우 유용한 관점을 제공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 가설의 검증은 어렵지 않다.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옛날 노비문서 또는 공명첩(空名帖) 구실을 하는 것이 대학 졸업장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좋은 대학 졸업장을 따기 위해 어려서부터 안간힘을 써야 한다.. 더보기
격양가(擊壤歌)를 부르고 싶지만 이명박 집권 2년에 대한 평가는 다양하지만 필자는 정치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확산됐음을 지적하고 싶다. 그리고 그 책임의 상당 부분은 정치인들, 그 중에서도 국정 최고지도자인 이명박 대통령에게 돌려야 한다고 본다. 예를 한 가지 들어 보자. 그는 일전에 충청도에 가 “모든 것을 정치적으로 판단하고 계산하고, 정치공학적으로 생각하면 그 지역이 발전할 수 없다”는 말을 했다. 이 말은 같은 자리에서 꺼낸 ‘강도론’에 묻혀 잊혀졌으나 음미해 봄직하다. 현직 대통령의 일그러진 정치관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첫째, 그는 정치는 믿을 게 못 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음을 보여줬다. 이것은 심각한 자기 부정이다. 정치를 업으로 하는 지도자가 정치적으로 판단·계산하고, 정치공학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지역 발전을 막는다는 말이.. 더보기
조중동에 묻는다 이명박 대통령에게 소박한 충고를 하나 하고 싶다. ‘보수신문’으로 불리는 조선·중앙·동아일보를 절대적으로 믿어선 안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진부하지만 여전히 유용한 일화를 소개한다. 1815년 나폴레옹이 유배지 엘바섬을 탈출했다. 당시 최대 일간지 ‘르 모니퇴르’는 ‘식인귀, 소굴을 빠져나가다’란 제목으로 보도했다. 이후 2주 동안 이 신문의 헤드라인 변화가 볼 만했다. 나폴레옹이 북상함에 따라 그 호칭은 아귀→호랑이→괴물→폭군→약탈자→보나파르트→나폴레옹→황제 보나파르트로 바뀌었다. 마침내 파리에 입성한 그에게는 ‘높고도 귀하신 황제 폐하’란 극존칭이 붙여졌다. 이 얘기를 꺼낸 이유는 얼마든지 그 역도 성립한다는 점을 상기시키기 위해서다. 나폴레옹은 극단적 사례일 뿐 권력의 이동에 따라 태도를 바꾸는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