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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여적] 인간 

이동관 대통령 언론특보가 박지원 민주당 의원에게 보낸 문자메시지가 공개된 것은 무심코 써 온 ‘인간’이란 말의 의미를 따져보는 뜻밖의 계기가 되었다. 이 특보가 엊그제 박 의원에게 보낸 문제의 문자메시지는 이런 것이었다. “인간적으로 섭섭합니다. 그 정도밖에 안되는 인간인지 몰랐습니다.”
앞서 박 의원이 대검찰청 국정감사에서 “부산저축은행 로비스트 박태규씨가 당·정·청, 재계, 지방정부와 다 관련이 있다”며 이 특보의 이름을 거명한 데 대한 반응이었다. 

<경향신문DB>

문제는 ‘그 정도밖에 안되는 인간’ 운운하는 두 번째 메시지다. 이건 좀 심했다. 박 의원이 문자 내용을 공개하며 “국회를 무시한 처사로 이명박 대통령은 이 특보를 당장 해임하라”고 촉구하는 결정적 사유가 됐음직하다.
그러자 이 특보는 “문장에서 ‘내가’란 표현이 생략돼서 생긴 오해”라고 해명한 모양이다. ‘내가 그 정도밖에 안되는 사람이냐’고 한탄하는 뜻이었다는 것이다.


‘인간’은 가치중립적인 말이지만, 용례와 문맥에 따라 뜻이 백팔십도 달라진다. 뉴욕에서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 시위로 불붙어 목하 미국 전역과 유럽으로까지 확산되고 있는 항의운동이 요구하는 것은 한마디로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다.
여기서 인간은 끝없이 위기를 부르는 차가운 금융자본주의에 대비되는 따뜻함을 상징한다.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세계화도 비슷하게 쓰인다. 휴머니즘(인본주의)은 가치의 중심을 신에서 인간으로 옮겼다는 점에서 인간주의와 같은 뜻이다. 
 

한데 때론 몹시 고약한 뜻으로 사용된다. 누군가 내게 “인간이 되라”고 하면 아직 인간이 덜 됐다는 뜻으로 들리기 때문에 기분이 나쁘다. 같은 뜻인 사람과 인간도 문맥에 따라 어감이 다르다. ‘그런 사람’은 괜찮아도 ‘그런 인간’은 험담처럼 들린다. ‘사람들이 많이 모였네’라는 일상적 표현도 ‘인간들이 많이 모였네’로 바꾸면 몹시 어색하다. 
정치에서 매우 중요한 소통은 말을 통해 이뤄진다. 따라서 말을 잘해야 한다. 달변이 아니라 정확하고 진실한 말을 써야 한다는 뜻이다. 청와대 홍보수석을 지낸 이 특보에겐 이 점에 큰 문제가 있어 보인다. 오죽했으면 자유선진당이 “시정잡배도 이런 문자를 보내지 않는다”면서, 그의 해명에 대해서는 “욕설을 퍼부어놓고 ‘나한테 한 욕’이라고 우기는 것”이라고 논평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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