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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여적] 사대주의

어릴 적부터 우리 역사가 사대주의로 얼룩졌으며 그것은 나쁘다고 배웠다. 그러던 것이 커서는 사대(事大)는 조선의 대 중국 평화유지 전략이었으며, 따라서 적절하고 필요한 것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일제가 통치 명분 확보를 위해 우리 역사를 늘 남에게 의지하는 외세의존적 사대주의 역사로 규정했다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한국인들이 주권 상실을 숙명으로 받아들이고 민족적 열등감에 빠지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런 설명을 듣고 어찌 일제의 역사조작에 치를 떨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사대주의는 결코 한국인의 국민성이나 민족성이 아니다. 그건 어디까지나 외교정책이라지 않나.

'위키리크스 문서공개로 드러난 한미FTA 협상과정의 진실에 대한 규탄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정부 정책을 규탄하고 있다.                                                                                                                     | 연합뉴스 | 경향신문 DB


그런데 이따금씩 들려오는 소식들이 기분을 영 찜찜하게 만든다. 가령 내부고발 사이트 위키리크스가 며칠 전 공개한 한국 외교 관련 전문들을 접할 때 그렇다. 거기 적나라하게 그려져 있는 한국 정치인 등 지도층의 체통 잃은 ‘친미행각’들을 보노라면 울컥 의심이 밀려든다. 혹시 내 시각교정이 틀린 거 아닌가. 일제 학자들이 제대로 본 게 아닌가. 

2008년 5월29일자 주한 미국대사관 외교전문에 등장한 이상득 당시 국회부의장은 버시바우 주한 미 대사에게 “이명박 대통령은 뼛속까지 친미·친일이니 의심할 필요가 없다”고 말하고 있다. “대통령은 친중국 성향이 아니다”라며 안심시키기도 했다.
그는 또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반미·친북 시대 잔재가 힘을 잃으면” 반미 문제도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2008년 1월 버시바우 전문을 보면 대통령직 인수위에 있던 최시중, 현인택씨는 4월 한·미 정상회담 전에 미국 쇠고기 수입을 재개하겠다고 약속했다. 2006년 7월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은 버시바우에게 전화로 정부가 추진하는 약제비 적정화와 관련해 미국 입장이 관철되도록 “죽도록 싸웠다”고 말했다. 

돌아보건대 위키리크스 사례들은 이 시대 거대한 친미 흐름의 극히 작은 부분일 뿐이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무조건 빨리 맺어야 한다는 조급증은 강자의 안온한 품에 안기겠다는 사회경제적 열망의 반영이라고 본다.
이 열망은 군사적으로는 미국의 따뜻한 품을 결코 떠나서는 안된다는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반대 심리로 나타난다. 이런 게 현대판 친미 사대주의의 모습 아닌가. 아니면 지나치게 도식적인 관찰인가. 혹시 필자가 일제의 사대주의론에 무의식적으로 세뇌된 탓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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