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들이 즐겨 쓰는 몇몇 표현이 있다. 가령 상대편의 공격을 방어할 때 적당한 구실이 안 떠오르면 ‘정치공세’란 말을 동원한다. 그 앞에는 대개 ‘소모적인’이란 수식어가 붙는다. 문제는 이 말이 지나치게 추상적이어서 효과가 제한적이란 점이다. 그래서 이 말을 남발하는 정치인들을 보면 “머리가 빈 게 아닌가”란 생각이 절로 들 때가 있다.
국가지도자급들이 자주 쓰는 것으로 “후세의 사가들이 평가할 것”이란 말이 있다. 자신의 우국충정에서 나온 결단이 지금은 반대가 많지만 먼 훗날엔 찬사를 받을 것이란 믿음의 표현이다. 10월유신을 단행한 박정희가 이 표현을 많이 썼다. 그것은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란 자못 비장한 말로 변용되기도 했다.
‘순교’란 표현도 꽤 쓰인다. 나라 밖 얘기지만 반군에 몰려 풍전등화 신세인 리비아의 카다피는 엊그제 “이 싸움에서 승리하든지 아니면 순교할 것”이라며 결사항전 의지를 다졌다. 순교 얘기는 이라크의 독재자 후세인도 했다. 그는 사형이 확정된 후 자필 서한에서 “나의 죽음은 순교가 될 것”이라며 단결만이 노예로의 전락을 막을 수 있다고 저항을 강조했다.
모르긴 몰라도 주민투표에서 패한 오세훈 서울시장의 머릿속에도 순교·순교자란 말이 맴돌고 있지 않을까 한다. 그 스스로 이 표현을 쓴 적은 없지만 하는 행태를 보면 영락없이 순교자적 풍모다. 왜 아니겠는가. 그의 눈빛은 예리했고 말도 좀 거칠어졌다. 시장직을 걸겠다는 기자회견을 하는 그는 참으로 비장했다. 눈물로 시작해 눈물로 끝났고 마지막엔 무릎까지 꿇고 호소했다.
지난해 말 “복지의 탈을 쓴 망국적 포퓰리즘 정책을 거부한다”며 무상급식과의 전쟁을 선포했을 때부터 그는 이미 전사이자 순교를 각오한 사람이었다. 이에 여권에선 “오 시장이야 무상복지를 막다 장렬하게 전사한 순교자가 되면 그만이지만 당은 어떻게 뒷수습을 하나”란 불만도 터져나왔다.
지난해 말 “복지의 탈을 쓴 망국적 포퓰리즘 정책을 거부한다”며 무상급식과의 전쟁을 선포했을 때부터 그는 이미 전사이자 순교를 각오한 사람이었다. 이에 여권에선 “오 시장이야 무상복지를 막다 장렬하게 전사한 순교자가 되면 그만이지만 당은 어떻게 뒷수습을 하나”란 불만도 터져나왔다.
그러나 오 시장은 결코 순교자가 아니다. 그건 권력을 위해 국민을 무차별 학살한 카다피가 순교자를 자처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는 그렇게 하지 말라는 주민투표 몽니를 부려 막대한 세금을 탕진한 부실 시장일 뿐이다. 그가 이젠 성찰을 통해 잘못을 깨달을까. 그랬으면 좋겠다만 아마도 그는 이 순교자적 이미지를 키워 훗날을 도모하는 데 써먹을 궁리에 골몰할 공산이 커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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