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계에 함정이 있듯 비교에도 함정이 있다. 한 가지 예를 살펴보자. 2009년 4월27일 존 루이스 미국 민주당 하원의원 등 의원 5명이 워싱턴 수단 대사관 앞에서 인권운동가들과 함께 시위를 벌이다 경찰에 체포됐다. 바시르 수단 대통령이 다르푸르 학살사태와 관련해 국제 구호단체들에 추방령을 내린 것에 항의하던 이들이 폴리스라인을 넘자 경찰이 수갑을 채워 연행했다고 한다.
복지국가 실현 연석회의 발족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 경향신문 DB
복지국가 실현 연석회의 발족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 경향신문 DB
이 사건을 한국에 보도한 한 신문은 루이스 의원이 민주당 하원 원내 서열 10위 안에 드는 여당 실세라며 그러나 경찰의 특별대접은 없었고 의원들도 반항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이어 등장하는 게 비교다. 한국 의원들이 국회에서 휘두르는 폭력이나 불법집회에 참석해 경찰에 보이는 고압적 행태와는 매우 대조적이라고 했다.
이 기사는 시위현장 비교를 통해 미국과 한국의 현격한 법치 수준 차를 보여주려 했지만 설득력이 적다. 단순 비교의 함정에 빠졌기 때문이다. 실세 정치인이 법을 어겨 체포됐다는 사실을 전하려는 데 정신이 팔려 다른 문제들을 균형 있게 보지 못했다. 이 집회의 평화적 성격, 두 나라 시위문화의 차이, 총기 소유가 합법화된 미국 현실을 감안하면 덮어놓고 감탄할 일도 아니다. 그러나 이 신문은 얼마 후 민노총의 과격시위를 비판하는 사설에 다시 이 사례를 등장시켰다.
日 퍼주기 복지로 재정위기 ‘왜곡’
다소 오래된 얘기를 꺼낸 것은 이것이 우리가 선진국과 우리를 비교하면서 흔히 저지르는 단순비교 오류의 전형이란 생각 때문이다. 먼저 그들과 우리가 다른 점들을 인식하고 그 바탕 위에서 비교하려 하기보다는 지나친 단순 비교로 본질적 접근에 실패하는 것이다. 우리 사회가 선진국이 돼야 한다는 강박증을 앓아 온 건 오래전부터거니와 이명박 정권 아래서 온갖 선진화 논의가 봇물을 이루고 있다. 이 대통령은 연초 신년사에서도 “국운융성의 기회를 놓치지 말고 선진국의 문턱을 단숨에 넘어가야 하겠다”고 말했다.
생각건대 선진화마저 4대강 속도전 하듯 빨리 해야 한다는 식의 조급증은 선진국과의 이런 단순 비교행태와 통하는 바가 있다. 이 조급증은 견강부회, 아전인수적 비교 심리를 발동시킨다. 그래서 이러이러하기 때문에 선진국이 못됐다거나, 반대로 저러저러하기 때문에 선진화가 멀었다는 단순논리가 판친다.
목하 정치권의 화두가 된 복지 논쟁에서 횡행하는 것도 이런 단순논리다. 야당이 주도하는 복지 의제에 끌려든 한나라당은 보편적 복지가 포퓰리즘이며 세금폭탄이며 망국론임을 증명하기 위해 선진국들과의 무리한 비교를 일삼고 있다. 최근 한 보수신문은 “퍼주기식 복지로 인해 일본 국가 재정이 한계에 도달하면서 아동수당, 고속도로 무료화 등 무상복지 정책으로 집권했던 민주당 정부가 위기에 빠졌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여기엔 의도적 왜곡이나 착각이 있다. 민주당 아래 일본 재정이 위기인 건 맞지만 그것은 퍼주기식 복지 탓이 아니다. 고령자 증가로 공적연금 지출이 국내총생산(GDP)의 10%를 넘은 것과 전임 정권의 증세 외면, 국채 남발이 원죄였다. 일본의 GDP 대비 사회복지지출 비율은 18.6%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20.6%보다 낮다. 미국과 함께 선진국 가운데 복지가 가장 취약한 일본이 퍼주기식 복지로 위기란 말은 이치에 안 닿는다. 그럼에도 이 때문에 복지위기가 왔다고 보는 것은 의도적 왜곡이다. 그리스 등 남유럽 재정위기 역시 일부 주장대로 과도한 복지지출 탓으로 보기 어렵다. 만성적 적자 속 유로화 편입으로 인한 혼란, 대규모 감세가 복합적 원인이었다.
그러나 여기엔 의도적 왜곡이나 착각이 있다. 민주당 아래 일본 재정이 위기인 건 맞지만 그것은 퍼주기식 복지 탓이 아니다. 고령자 증가로 공적연금 지출이 국내총생산(GDP)의 10%를 넘은 것과 전임 정권의 증세 외면, 국채 남발이 원죄였다. 일본의 GDP 대비 사회복지지출 비율은 18.6%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20.6%보다 낮다. 미국과 함께 선진국 가운데 복지가 가장 취약한 일본이 퍼주기식 복지로 위기란 말은 이치에 안 닿는다. 그럼에도 이 때문에 복지위기가 왔다고 보는 것은 의도적 왜곡이다. 그리스 등 남유럽 재정위기 역시 일부 주장대로 과도한 복지지출 탓으로 보기 어렵다. 만성적 적자 속 유로화 편입으로 인한 혼란, 대규모 감세가 복합적 원인이었다.
선진국과 비교 단순논리 벗어나야
한국의 GDP 대비 사회복지지출 비율은 8.3%로 OECD 최하위권이다. 복지에 관한 한 초보국가인 것이다. 고달픈 한국인들의 삶 속에서 모처럼 복지가 사회적 관심거리가 된 것은 반갑다. 선진 복지국가들의 사례를 면밀히 비교 검토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이 타산지석(他山之石)용이든 반면교사(反面敎師)용이든 실체를 있는 그대로 봐야 한다. 의도를 갖고 비틀어 보려면 아예 그만두는 게 낫다.
맹목적 감탄도 거부감도 버리고 자기 중심을 갖고 살펴야 한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이 동도서기(東道西器)나 중체서용(中體西用) 논리다. 선진국은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열었다거나 무슨 운동경기 하듯 뛰어넘어 단숨에 되는 게 아니다. 복지 확대에 대한 여야 공감대가 이뤄졌으면 천천히 가야 한다. 이때 외국과의 자의적 비교라는 함정을 조심해야 한다.
맹목적 감탄도 거부감도 버리고 자기 중심을 갖고 살펴야 한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이 동도서기(東道西器)나 중체서용(中體西用) 논리다. 선진국은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열었다거나 무슨 운동경기 하듯 뛰어넘어 단숨에 되는 게 아니다. 복지 확대에 대한 여야 공감대가 이뤄졌으면 천천히 가야 한다. 이때 외국과의 자의적 비교라는 함정을 조심해야 한다.
'김철웅 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위로받을 곳이 없구나 (0) | 2011.03.15 |
---|---|
속도전의 미망 (0) | 2011.02.22 |
분노의 격과 과녁 (0) | 2011.01.11 |
그들만의 언어 (1) | 2010.12.21 |
북한 상수(常數)론 (0) | 2010.11.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