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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철웅 칼럼

분노의 격과 과녁

과거로의 역주행 비판도 정도껏 해야지, 또 그 타령이냐 소리나 듣기 십상이다. 듣는 이도 물리고 하는 이도 지친다. 그래 민주, 인권, 복지 역주행 타령은 그만두기로 하자. 그럼 이 4년차 정권이 잘 해냄직한 다른 분야는 어떤가. 

 

첫째 안보. 아니올시다다. 대통령이 “전쟁을 두려워해서는 결코 전쟁을 막을 수가 없다”며 전쟁불사론을 부추겼다가 “평화적 통일을 해야 한다”고 했다가 왔다갔다 하니 불안하다. 물가. 못 잡는다. 초저금리, 고환율은 그대로 놔두고 신임 공정거래위원장이란 사람이 나서 물가를 잡겠다며 조자룡 헌칼 휘두르듯 하니 보기 딱하다. 구제역. 무력하다. 사상 최대 규모로 소, 돼지들을 생매장 살처분까지 하며 축산농가들이 고통을 겪지만 이 아비규환이 언제나 끝날지 알 수 없다. 

인사. 엉망이다. 이 정권은 처음부터 ‘고소영’ ‘강부자’ 내각 논란이더니 끝까지 측근, 회전문, 보은 인사다. 이러니 레임덕이 안 오겠나. 안상수 한나라당 대표가 정동기 감사원장 후보자의 자진 사퇴를 촉구하자, 미묘한 정국 흐름을 재빨리 포착하는 데 탁월한 조선일보는 “감사원장 인사 실패가 ‘레임덕’ 재촉한다”란 사설로 화답했다. 대통령은 “임기 마지막 날까지 레임덕은 없다”고 해왔지만 정동기 건은 필시 이명박 레임덕의 신호탄이 될 것이다. 

이중적인 정권, 정말 혼좀 내야
 
단 하나, 이 정권이 능력을 보여준 건 속도전이다. 밤낮 없이 강바닥을 파헤치고 보를 쌓아 4대강 사업을 ‘돌이킬 수 없게’ 만들었다. 똥인지 된장인지 분간 없이 그저 돌격 앞으로만 외친 결과다. 그러지 말고 구제역 방역은 왜 4대강 속도전 하듯 못할까. 이 돌격정신은 미디어 산업 재편의 첫 작품이라는 종편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됐다.

이런 속도전 와중에 많은 복지 세목들이 뒷전으로 밀려났건만 대통령은 “우리가 복지국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천연덕스럽게 말한다.
그러면서 복지 포퓰리즘의 폐해를 비판한다. 어떤가. 지나치게 이중적인 이런 정권 혼 좀 내야 하지 않겠는가. 

천정배 민주당 의원이 그랬다가 설화 비슷한 걸 겪었다. 그는 지난해 말 수원역 앞 ‘이명박 독재심판 결의대회’에서 대통령이 군 고위장성 인사에 대해 “가장 공정하게 했다”고 평한 것과 우리가 복지국가라고 한 것을 강하게 비판했다. 그러면서 “친서민 다 죽이는 이명박 정권 여러분 어떻게 해야 되겠나. 응징해야 되지 않겠나. 끌어내려야 하지 않겠나. 죽여버려야 하지 않겠나”라고 했다.

이러자 청와대 핵심인사는 시정잡배·패륜아란 말로 비판했고, 김무성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국회의원 자격이 없다. 정계를 떠나야 한다”고 말했다. 한 시민은 이 발언이 정권을 불법으로 찬탈하려는 것이라며 천 의원을 국가내란죄(예비, 음모, 선동)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고 한다. 

하나의 소화(笑話), 에피소드 같지만 이 일은 20여년 전 서슬 퍼런 5공 때의 ‘국시(國是)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1986년 가을 신민당 유성환 의원은 국회에서 “이 나라의 국시는 반공이 아니라 통일”이라고 발언했다. 사흘 뒤 그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됐다. 당시 필자가 서울 방배동 유 의원 집 앞에서 밤 늦게 체포 상황을 취재했던 기억이 난다.

이것은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 얘기 같지만 꼭 그런 것도 아니다. 전속력으로 역주행하는 지금 세태가 국시사건의 기시감을 느끼게 만든다. 가령 얼마 전 위헌 결정이 났지만 미네르바 사건 같은 황당한 일이 이 시대에도 버젓이 벌어지고 있다. 

차갑고 투명한 이성으로 싸워야
 
천 의원이 겪은 일은, 좀 거창하지만, 진보 진영에 중요한 시사점과 과제를 제공한다고 본다. 그것은 잘 분노하기다. 진보에게는 분노해야 할 것들이 수없이 많다. 앞으로도 나타날 것이다. 따라서 분노의 격을 높이고 과녁을 잘 겨냥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분노를 낭비하면 안된다. “종교보다도 깊고 거룩한 분노”는 가슴 깊은 곳에 남겨두고 차갑고 투명한 이성으로 우상과 싸워야 한다. 이것이 내일이 오늘보다 나아지리라 믿는 이 시대 진보의 과제다. 

이 정권의 실력은 바닥이 드러났다. 이런 정권 끝내버려야 하지 않겠나라는 생각에는 공감한다. 그러나 분노와 레토릭만으로 그게 되는 게 절대 아니다. 김지하 시인이었던가, 누군가가 술회한 적이 있다. “독재자 박정희만 죽으면 모든 게 해결날 줄 알았다. 그러나 서울의 봄은 비극적으로 막을 내렸다….” 새 시야의 지평을 열려면 이명박에 대한 분노의 틀을 넘어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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