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권 3년을 압축 요약하는 핵심단어, 키워드는 ‘속도전’이라고 본다. 그만큼 이 정권 들어와 많은 분야에서 괄목할 만한 속도전이 펼쳐졌다. 신문기사 검색 사이트인 카인즈에 들어가 ‘속도전’을 쳐 보면 안다. 그 전까지는 드문드문 쓰이던 속도전이란 말이 이명박 정권에 와서는 봇물처럼 쏟아진다. 2008년 말 대통령과 박희태 당 대표는 현 정국에서 가장 필요한 것이 ‘속도’란 점에 의견을 같이했다. 그리하여 예산안과 미디어법 등 ‘MB법안’을 강행 처리한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속도전의 압권은 4대강 사업이다. 이 정권은 사전 환경성 검토도 안 끝난 상태에서 ‘4대강 살리기’ 기공식을 강행했다. 이후 속도전엔 가속도가 붙었다. 반대를 잠재우기 위해 되돌릴 수 없도록 만든다며 밤낮없이 공사를 강행했다. 공사현장엔 폐쇄회로(CC)TV가 설치돼 24시간 감시했다. 그야말로 총동원 체제였다. 야당은 “북한의 속도전을 방불케 한다”고 비판했다. 실제로 속도전이란 말은 북한에서 사회주의 건설에 비약과 기적을 이룬다는 뜻으로 쓰였다. 그게 무에 대순가. 정종환 국토해양부 장관은 재작년 말 “최대한 속도전으로 가 2011년 장마 전 4대강 사업을 거의 끝낼 것”이라고 말했다. 속도전은 그 저돌성을 문제삼아 주로 반대측에서 써온 말이지만 상관없었다. 고고학과 속도는 상극이건만 매장문화재 발굴조사도 속도전으로 진행됐다. 그렇게 해서 속도전이란 은유는 이 시대의 진부한 일상어로 자리잡았다.
MB정부, 성과 얽매여 밀어붙이기
그러고 보면 속도전만큼 이 토건정권의 속성을 잘 드러내는 말도 찾기 어렵다. 건설회사 최고경영자(CEO) 출신인 대통령은 속도 추구가 체질화된 인물이다. 토건업자는 원래 세계를 그대로 놔두는 게 아니라 개조하는 데서 기쁨을 느낀다. 파헤치고 부수고 다시 짓는 게 삶의 보람이다. 그런 가치관으로는 4대강 사업과 경부고속도로, 인천국제공항, 고속철도 사이의 차이점이 보이지 않는다. 경부고속도로 공사 때 그랬던 것처럼 4대강 사업이 끝나면 반대하던 사람들의 생각도 바뀔 것이라고 그가 말하는 이유다.
속도전은 성과주의의 다른 이름이다. 짧은 시간 안에 최대의 성과를 거두려는 심리의 소산이란 점에서 그렇다. 성과주의에는 다양한 버전이 있다. 그것은 경제에서의 성장·개발주의, 교육에서의 수월성주의, 게임에서의 승자독식주의로 나타난다. 이것들이 십중팔구 선진화란 화려한 외피를 둘러쓴다. 이렇게 되면 성과에 대한 조급증에 빠져 속단하기 쉽고 원칙과 절차는 쉽게 무시된다. 한국 사회는 급속도로 이 같은 속도전의 미망(迷妄)에 빠져들고 있다고 본다. 그리고 정치가 이를 제어하기는커녕 앞장서고 있다.
대통령의 선진화 논리는 성장주의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성장주의의 틀에 갇힌 채 선진화마저 속도전으로 달성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이렇게 눈높이를 고성장에 맞춰두고 수출대기업을 위한 고환율·저금리 정책을 유지하고 있으니 물가가 잡힐 리 없다. 방송에선 선진화를 한다며 원칙도 절차도 시장상황도 무시한 채 종합편성채널 승인 속도전을 펴고 있다. 구제역 재앙은 정작 신속 대응해야 할 발생 초기엔 그러지 않다가, 매몰 땐 대충대충 해버려 침출수 오염을 자초했다. 구제역 전 과정에서 작동한 속단과 근거없는 낙관론이 화를 키웠다. 나는 4대강 속도전과 이런 조급증 사이엔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다고 믿는다.
속도전으로 핑핑 돌아가는 세상에 대한 회의는 우리 시대의 것만은 아니다. 러시아의 아나키스트 크로포트킨은 자서전 <한 혁명가의 회상>(1899)에 이렇게 썼다. “우리는 정치적, 사회적으로 익숙한 억압에 쉽게 구속되는 경우가 많다. 바쁘게 사는 사람은 특히 그렇다. 인생이 어느 방향으로 가는지 생각할 시간이 없다. 나도 그랬다.” 이 부분에서 치열한 아나키스트였지만 삶을 성찰할 여유를 찾고 싶어한 그의 심정이 엿보인다. 빠르게 달리고 있으면서도 좀 더 빨리 가지 못해 안달하는 인간존재를 안타까워하는.
성찰하지 않으면 ‘방향’ 잃어
그럼에도 이명박 정권의 남은 2년에서 성찰하는 모습을 기대하긴 어려울 것 같다. 유감스럽게도 이 정권은 속도전을 간단없이 밀어붙일 것이다. 그것이 실패로 끝나면 고통은 온전히 국민 몫이 될 것임에도. 마침 피자업체인 피자헛과 도미노피자가 ‘30분 배달제’를 폐지키로 했다는 소식이 들린다. 배달원들의 안전을 배려했다고 한다. 잘한 일이다. 속도전의 미망을 벗어나지 못하면 진짜 선진화는 없다는 걸 이들은 알았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