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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철웅 칼럼

예속이냐 폭로냐

스피노자가 <신학정치론>에서 미신을 비판하며 던진 “다중은 왜 예속을 욕망하는가”란 질문은 현대에 와 파시즘에 대한 대중의 자발적 예속을 비판할 때 원용되곤 한다. 그렇다. 민중의 자발적 동의가 파시즘의 주요 자양분이다. 이 자발성이 현대의 권위주의 체제에서 발견되는 파시즘 현상의 동력이 된다. 그러나 자발적 예속과 정반대인 흐름도 존재한다. 조직 내부의 파시즘을 거부하고 불의를 고발·폭로하는 경우다. 

그런 사례들도 꽤 있다. 1990년 보안사의 민간인 불법사찰 기록을 공개한 윤석양 이병, 감사원과 재벌의 유착 비리를 고발한 이문옥 감사관, 1992년 군 부재자 투표 부정을 고발한 이지문 중위, 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여당이 단체장을 통해 선거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제기한 한준수 연기군수, 2000년 인천 국제공항 터미널 부실 시공을 폭로한 정태원 감리원, 2008년 4대강 정비의 실체는 대운하 계획이라고 양심선언을 한 김이태 박사, 군 납품 비리를 고발한 김영수 소령 등이 대표적인 ‘내부고발자’들이다.

그렇다면 이들의 용기있는 내부고발 덕분에 한국 사회가 맑아지고 있는가. 아니다. 그렇지 않다는 건 너도 알고 나도 안다. 고위공직자 청문회를 보면 안다. 부동산 투기, 병역비리, 탈세는 기본이다. 국제투명성기구가 발표한 지난해 한국의 부패인식지수 순위는 178개국 가운데 39위로 2009년과 같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순위는 22위로 바닥이다. 경제규모 세계 15위인 나라치곤 터무니없이 낮은 성적이다. 주요 이유는 공직자의 비리와 부정부패였다.

내부고발, 배신·고자질 아니다
 
지난해 11월 한국이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를 주최하며 정부는 선진국 반열에 다 오르기라도 한 것처럼 선전했지만 그 선진국이란 게 뜬구름 잡기처럼 공허하게 느껴진다. 경제력 하나만으로 선진국이 되는 게 아님을 알기 때문이다. 부정부패가 판치는 선진국은 명백한 형용모순이다. 한국의 국가 아젠다가 경제성장 일변도의 선진화가 아니라 부패 추방, 투명성 강화가 돼야 한다고 믿는 까닭이다. 이 정권이 입버릇처럼 말하는 국격의 우선순위가 그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G20
정상들이 정상회의에서 환율문제를 비롯한 의제들에 대해 토론하고 있다.| 경향신문DB
 
이를 위해선 효과적인 비리 억제 기제가 작동해야 한다. 우선 내부고발과 공익제보가 활발하게 이뤄지는 것이다. 한국의 청렴도가 낮은 일차적 이유는 선진국들과 비교해 이 분야의 역할이 미흡한 탓이다. 한국인은 지금도 내부고발을 조직 배신이나 고자질 행위로 간주하려는 성향이 있다. 그래서 똘똘 뭉쳐 감싸안으려 한다.

2007년 김용철 변호사가 삼성그룹 비자금 비리를 폭로했을 때 그를 배은망덕한 사람으로 비난하는 기류가 삼성 바깥에서도 폭넓게 형성됐다. 7년 동안 102억원을 받아 챙기고 배신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명백한 공적 영역의 비리와 사적 영역을 혼동하는 사고방식은 자본에 대한 자발적 예속 심리가 작용한 결과가 아닌가 한다. 

다른 문제는 법의 보완이다. 많은 내부고발자들이 파면, 승진 불이익 등 보복을 당해왔지만 법적 보호를 받지 못했다. 이 문제는 최근 공익신고자보호법이 통과돼 올 가을 발효됨에 따라 개선이 기대된다. 법은 공익신고자의 비밀보장, 신변보호조치 등을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법제만으론 충분치 않다.

궁극적으로 이른바 ‘휘슬 블로어’에 대해 공익을 위해 용기있는 행동을 한 것으로 평가하고 격려하는 풍토가 조성돼야 한다. 이것이 이 사회가 미성숙한 연고주의를 탈피해 근대화하는 중요 잣대가 될 것이다. 부패 추방은 시민성 제고와 표리를 이룬다. 냉철한 내부고발이 사회를 각박하게 만들고 공동체를 훼손할 것이라고 보는 것은 단견이다. 건강한 시민정신·의식으로 무장한 사회는 집단이기주의의 음습함과는 거리가 멀다. 

정의 바로 세우는 공익제보
 
경향신문은 지난달 말 공익 제보 사이트 ‘경향리크스’를 개설했다. 개설이 되자마자 많은 제보가 들어오고 있다. 전국 법원에서 인지대를 빼돌리는 범죄가 횡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도해 검찰 수사를 유도했다. 교육과학기술부 지침에 따라 초등학교들이 원전으로 현장 체험학습을 갈 것이란 기사도 반향을 일으켰다. 이 사이트에는 천안함 사건의 의문이나 4대강 사업 속도전의 문제점을 밝혀줄 제보도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권력기관 구석구석에도 진실 폭로에 목말라하는 사람들이 포진해 있을 것이다. 자발적 예속을 거부하나. 폭로하라.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사회를 원하나. 고발하라. 그리하여 모두가 모두에게 노예인 상황을 극복하고, 모두가 모두에게 주인이 되는 사회를 만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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