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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여적] 그라스의 고백

고백에는 여러가지가 있다. 그 중에도 삶을 뒤흔드는 고백은 남녀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사랑 고백, 죄를 참회하고 신에게 신종(信從)을 약속하는 신앙 고백이다.
그런데 사랑 고백이나 신앙 고백이 아무 때나 되는 게 아니다. 어느 순간에 이른바 ‘큐피드의 화살’이 심장에 꽂혀야 사랑 고백이 이뤄진다. 신앙 고백은 말할 것도 없다. 인생관과 세계관의 격동 없이 신앙 고백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여러

고백들 가운데 가장 어려운 것은 과거의 ‘역사적’ 과오에 대한 고백이 아닌가 한다. 그것이 사회적 지위와 학식, 덕망을 한 순간에 허물어 버리는 결과가 될 것이란 생각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나이가 들수록 자신의 과오를 고백하는 경우란 흔치 않은 일이고 따라서 더 돋보이는 법이다. 홍익대 총장을 지낸 이항녕 박사의 경우가 자주 소개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는 지난 1991년 일제 강점기 자신의 첫 부임지였던 경남 하동의 강연회에서 과거를 참회하는 솔직한 심경을 밝혔다.

“일제 말 27세로 하동군수를 지내면서 출세와 보신에 눈이 어두워 (군민들을) 죽창으로 위협까지 했던 저를 너그럽게 맞아주신 하동 군민들에게 진심으로 사죄드립니다.”

이 고백말고도 그는 4·19혁명 후 친일 과오를 참회하는 심경을 당시 논설위원으로 있던 경향신문에 ‘청산곡’이라는 소설로 연재하는 등 몇 차례나 과거에 대해 사과했다.

‘양철북’의 작가 귄터 그라스(78)가 2차대전 당시 히틀러의 경호대인 나치 친위대(SS)에서 복무한 사실을 고백했다. 지금까지는 17세에 징집돼 방공부대에서 근무한 것으로 알려져 있었으나 자신이 드레스덴 주둔 SS 기갑사단에서 복무한 사실을 61년 만에 밝힌 것이다.
그러자 레흐 바웬사 전 폴란드 대통령이 그라스에 대해 그의 고향인 그단스크(옛 단치히) 명예 시민 자격을 반납하라고 요구하는 등 파문이 일고 있다. 그러나 그라스가 이 비밀을 이제라도 털어놓은 것은 역시 보통 사람으로는 하기 힘든 용기있는 행동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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