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카네이션 특수가 시들해졌다는 소식이다. 어버이날과 스승의날(15일)이면 으레 카네이션을 선물하던 풍습이 퇴색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어버이날 카네이션 거래량은 2014년 20만9448속(1속은 20송이)에서 지난해 19만4367속, 올해는 18만7105속으로 감소했다. 2011년 28만443속에 비하면 5년 사이 33.3%나 줄어든 것이다.

원인은 세태 변화와 불황 탓으로 풀이된다. 요즘은 주고받는 쪽 모두 꽃보다는 건강식품이나 상품권 같은 실용적인 선물을 선호한다. 또 경제 위축으로 꽃 소비가 줄어든 것도 영향을 미쳤다.

카네이션 뿐 아니라 전체 꽃 판매량도 그렇다. 1인당 화훼 소비액은 2005년 2만870원이던 것이 2010년 1만6098원, 2014년 1만3867원으로 10년 사이 34%나 줄었다.

꽃과 비슷한 양상인 게 책 판매량이다. 2015년 가구당 월평균 서적 구입비는 1만6623원이었다. 이는 2014년에 비해 8.4% 감소한 것이자, 통계가 제공된 2003년 이후 최저치다.

또 하나 들 수 있는 통계는 갈수록 떨어지는 '독서율'이다. 지난해 성인 연평균 독서율은 65.3%를 기록했다. 이는 '1년 동안 1권 이상 책을 읽었다'는 비율로, 조사가 처음 실시된 1993년 이래 최저치였다.



'여성의 날'을 맞아 모스크바 꽃가게에서 한 남자가 꽃을 사고 있다. 러시아에서는 여성의 날이 아니더라도 길거리에서 꽃을 든 남자를 하루에 한 번은 볼 수 있다. 그만큼 꽃을 주고받는 게 생활화돼 있다. /'은나여인' 블로그에서 빌림



꽃이나 책은 대표적인 문화적·정서적 재화다. 그것은 마음을 윤택하게 해주는 것이지만 없다고 해서 당장 먹고 사는 데 지장을 주는 건 아니란 말도 된다. 따라서 삶이 정신적, 물질적으로 여유를 잃게 될 때 우선적으로 배제될 개연성이 높다.

그 점에서 카네이션 판매가 뚝 떨어졌다는 건 서글픈 소식이다. 우리 삶이 갈수록 팍팍해져 감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통계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어버이날 카네이션 선물 풍습도 퇴색

이 소식과 함께 생각나는 것이 러시아인들의 유별난 꽃사랑이다. 꽃을 애호하는 마음이 정말 지극하다. 필자는 1990년대 중반 모스크바 특파원을 지냈다. 소련이 붕괴된 직후로 경제상황은 엉망이었다. 치안도 매우 불안했다. 물가는 하루가 다르게 치솟는데 산업이 마비돼 생필품조차 구하기 힘든 시절이었다.

놀라웠던 건 그토록 생활고에 시달리던 시절에도 사람들이 꽃을 사랑하는 마음을 잃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때 러시아의 월평균소득은 100~200달러 선이었다. 그럼에도 당시 화폐 가치로 1만루블(약 2달러)이 넘는 생화 한다발을 선물로 주고받는 풍습은 유지됐다.

필자도 러시아 친구 가정을 방문할 때는 꽃 선물을 잊지 않았다. 친한 사람의 생일축하나 명절에 다른 선물은 빠져도 장미, 튤립 같은 꽃만큼은 필수였다. 당연히 꽃집은 어디에나 있었고 장사가 됐다.

 


                ‘미모사’ 이야기 삽화



러시아인들의 꽃사랑을 잘 보여주는 '미모사'란 '라스카스(이야기)'가 있다. 어느 날 안드레이는 아내 클라바로부터 "오늘 아침 가게를 지나다 예쁜 미모사 꽃을 봤는데 바빠서 미처 못 사고 말았다"는 말을 듣는다.

이튿날은 러시아 최대 경축일의 하나인 '여성의 날'(3월 8일)이었다. 안드레이는 아내에게 미모사를 선물하기 위해 여러 꽃집을 다니지만 가는 곳마다 '다 팔렸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간 꽃집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늙은 주인에게 "아내에게 미모사를 선물하기 위해 온 저녁을 돌아다녔다"고 하소연하고 힘없이 돌아선다. 그러자 노인이 그를 불러 세운다.

소통 도와주고 분위기 바꿔주는 '꽃'

"기다려요, 젊은이. 내게 딸한테 주려고 챙겨둔 미모사 한다발이 남아 있으니 가져가시오. 그 꽃 임자는 당신인 것 같소." 안드레이는 클라바가 원하던 미모사를 손에 들고 행복하게 집으로 향한다.


 

어버이날인 8일 서울 옛 주한일본대사관 앞 평화의 소녀상에 카네이션이 걸려있다. 【서울=뉴시스】 

 

어버이날 '평화의 소녀상' 가슴엔 초등학생들이 가져온 카네이션이 걸렸다. 이 사진을 보고 가슴이 찡했다. 이렇게 꽃은 단숨에 마음과 마음을 이어주는 힘이 있다. 꽃은 소통을 도우며 분위기를 확 바꿔준다. 꽃을 사랑한다는 건 자연의 아름다움을 안다는 말이다.

꽃을 사랑하는 사람은 창가에 날아와 지저귀는 새 소리에 하던 일을 멈추고 귀 기울일 수 있는 사람이다. 꽃을 감상하고 주고받는 여유, 그게 사람 사는 세상이다. 그렇다면 꽃에 대한 심미안을 잃어가는 삶은 어떤 의미가 있는 걸까. 미세먼지 농도가 짙다는 이 늦봄 날, 상념이 꼬리를 문다.


2016-05-16 11:36:35 게재

 


Posted by 김철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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