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살고 있는 디지털 시대의 특징은 새로움의 일상화 아닐까. 불과 몇 년 또는 몇 달 전에는 상상하지 못했던 새로운 것들이 어느새 친숙한 것이 돼버린다.

예컨대 지금은 너나 할 것 없이 카카오톡을 쓰고 있지만 이게 생겨난 건 불과 6년 전이었다. 새 디지털 기술은 새 문화를 만들어내는 데, 그 속도도 매우 빠르다.

요즘 젊은 층 사이에서는 카톡으로 만남을 이어가다 카톡으로 결별하는 '카톡 연애'가 늘고 있다고 한다. 이게 편리한 건 특히 결별할 때다. 그냥 '읽씹(카톡 읽고도 답 안하기)'이나 '대화창 나가기'만 하면 끝이기 때문이다.

이런 풍조를 '참을 수 없는 디지털 시대 연애의 가벼움'으로 규정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허다한 현상들 가운데 이보다 훨씬 더 심각해 보이는 디지털 시대의 폐해를 문제 삼으려 한다. 그것은 스마트폰 사용이 늘면서 국어 실력이 뒷걸음치고 있다는 사실이다.

최근 고려대 교육학과 홍세희 교수 등 4명이 발표한 '학업성취도 변화의 원인 분석연구'를 보면 2015년 중3 학생의 국어 성취도는 35점 만점에 16.6점으로 2012년 중3 학생(18.17점)보다 1.57점 떨어졌다. 중3 학생의 교과서·참고서·만화책을 제외한 월평균 독서량을 수치화한 점수 역시 2012년 2.23에서 2015년 2.1로 줄었다.

이 연구의 의미는 디지털화에 따른 국어학력 저하를 처음으로 실증적으로 밝혔다는 점이다. 연구팀은 국어 성취도가 떨어진 원인으로 독서량 감소와 자극적인 정보 증가를 꼽았다. 눈길을 끄는 것은 3년 전까지만 해도 학생들 사이에 스마트폰이 거의 보급되지 않았지만, 최근 2~3년 사이 급속히 확산되면서 생활환경·학습패턴이 많이 달라졌다고 분석한 대목이다.

사고력 판단력 논리력 종합적으로 떨어져

연구팀은 또 학생들의 종합적인 사고력·판단력·논리력이 전반적으로 떨어졌다고 보았다. 이쯤 되면 디지털화, 더 정확히는 스마트폰화가 아이들의 국어 성적을 떨어뜨리고 있다고 결론지어도 무리가 아니다.



타자를 치고있는 손. 최초의 실용화된 타자기는 1867년 크리스토퍼 숄스 등에 의해 발명되었다. 기계화한 글쓰기의 출발점이었다.

이것은 국어가 '엎친 데 덮친 격' 처지가 된 것을 의미한다. '엎친 데'라 함은 세계화에 따른 영어 광풍이다. 그것은 세계화 논리와 결합해 쓰나미처럼 밀려왔다. 수많은 영어마을이 생겨났고 대학들은 경쟁적으로 영어로만 하는 강의를 늘려왔다. 한국인 교수가 한국인 학생들을 영어로 가르친다는 건 강의의 질 문제를 넘어 모국어로 하는 사유의 공간이 줄어드는 것을 뜻한다.

이 와중에 '덮친 격'이 된 게 디지털화라는 2차 쓰나미다. 위 연구팀은 "요즘 학생들은 장문의 텍스트를 읽고 해석할 기회가 많지 않다"고 했다. 이것은 디지털화의 필연적 결과다. 인터넷에서 쓰는 통신언어는 오로지 빠른 소통을 위해 줄임말을 쓴다. 약어, 은어, 축약, 생략, 숫자·알파벳 사용 등이 빈번하다.

서울대 이재현 교수(언론정보학과)는 디지털 시대 글쓰기의 주목할 만한 현상에 대해 말한다. "홈페이지에 이어 블로그를 거쳐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같은 SNS에 이르기까지 글의 길이가 지속적으로 짧아져왔다. 트위터는 영문 140자, 한글 70자밖에 쓰지 못한다."

필자도 가끔 페이스북에 글을 올리는데 200자 원고지로 5~6장이 넘어가면 '너무 길다'는 반응이 나온다. 그렇다면 짧은 글은 항상 나쁜 건가. 물론 그건 아니다. 이 교수는 "짧은 글 자체가 문제가 될 수는 없지만 짧은 글만 쓰이고 소비되는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니컬러스 카가 쓴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The Shallows)'이란 책 제목처럼 인터넷이 우리를 생각하지 못하는, 얄팍한 사람들로 만들어가고 있다고 경고한다.

"짧은 글만 쓰이고 소비되는 것이 문제"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이것이다. 우리는 갈수록 깊이 성찰하고 사유할 수 있는 내적 공간을 잃어가고 있다. 오래 전부터 인문학의 위기가 논의된 게 그 증거다. 목하 진행중인 디지털화는 이를 더욱 부추기고 있다.

철학자 하이데거는 19세기 타자기가 등장한 뒤로 글쓰기에서 손이 글로부터 소외됐다는 존재론적 진단을 내린 적이 있다. 타자기는 기계화한 글쓰기의 출발점이었다. 이제 스마트폰 시대가 도래한 지금 우리는 깊은 사유, 그리고 언어로부터 우리의 존재가 소외되는 것을 걱정해야 할 판이다.


2016-07-07 11:49:34 게재

Posted by 김철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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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Kitty 2016.07.08 14: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실 국어따위 못해도 사는 데 지장 없지 않나요?

    우리나라에서 살아가는 데, 국어 못하고 영어 능숙한 사람,
    영어 못하고 국어 능숙한 사람, 둘 중 누가 유리한가요?
    심지어는 한국 국적을 가진 사람, 미국 국적을 가진 사람
    누가 더 살기 좋은가요?

    원래 만들어진 의도 그대로 가여운 백성들이나 쓰는 언어가
    한국어와 한글의 운명일 겁니다.

    제가 알기론 역사 이래로 한국어가 외국어보다 더
    존중받았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습니다.

    • 김철웅 2016.07.08 14: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답변으로 투르게네프의 시를 소개합니다.
      “의혹의 날에도, 조국의 운명을 생각하며 괴로워하는 날에도 너만이 나의 안식처요, 의지였다. 강하고 참되며 자유로운 러시아어여! 네가 아니었다면 고국에서 벌어진 일들을 보며 어떻게 절망에 빠지지 않을 수 있었을까? 누군들 그런 언어가 위대한 민족에 대한 선물이 아니라고 생각할까!”
      모국어의 아름다움을 찬미한 ‘러시아어’란 시입니다. 이 정도 경지까지는 아니더라도 한국사람이 자기 말을 아름답게 가꾸는데 힘써야 하는 건 당연하지 않은가요. 그동안 홀대받았다면 더욱.

  2. Kitty 2016.07.08 17: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우리말을 사랑합니다.
    아마도 제가 유창하게 할 수 있는 유일한 언어라서요.
    하지만 미래를 밝게 보기는 어렵네요.

    우리말을 아름답게 가꾸는 데 힘쓸 지, 아니면
    외국어를 좀 더 잘 하는 데 힘쓸 지는 전적으로
    개인의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어느 쪽이 유리한 지는 우리 근 현대사가
    아주 잘 보여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